귀국을 4일 남기고 여행의 종착지인 마드리드에 왔다
스페인 북부와 달리 이곳은 날씨가 한결 따뜻했다
도시로 돌아와서 느낀 것은 역시 풍요로움과 상실감 이었다
어째서 이 두 가지 감정은 항상 같이 오는 것일까?
자신의 이름을 에디라고 밝힌 중년의 독일인은 어떤 신념을 되찾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도 무언가 잃어버렸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현대인은 상실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오만함에 취해
만족 대신 중독을, 풍요로움 대신 과잉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남은 며칠 동안 별다른 계획 없이 돌아다녔다
마침 미술관에서 램브란트의 전시가 하고 있었지만 입장료가 비싸 가보지는 못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시내 중심의 레티로 공원이었다
온종일 공원 이곳저곳을 거닐며 음악을 듣거나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냈다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호수 옆 잔디밭에 누워있을 때였다
거기서 배를 타는 사람들, 저글링 연습을 하는 어린 친구들
아이를 돌보고 있는 아빠의 모습등을 바라보다
문득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꼈었다
나는 매우 당황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 가져보는 느낌이었는데
그전까지는 내가 '행복'이라는 기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은 어쩌면
어슴프레 뒤섞인 간접경험들로 막연히 추측해야 했던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몰랐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저글링하는 친구들과 아이를 돌보는 아빠가 있던 순간
그동안의 모호함에서 벗어나 나에게 뚜렷한 감정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소중해서
이 느낌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어느 곳에서 누구와 함께 있던
이 느낌을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시간은 지나가고 기억은 남겨진다
인생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순간들이 있고
어떤 순간들은 자신의 기대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때로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 변화는 매우 본질적이고 묘연해서
무언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즈음이면
그 이유는 아마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여겨질 것이다
어쨌든 모든것은 재처럼 흩어진다
우리가 움켜잡으려 노력하며 살 뿐이다
하지만 인생에 진실했던 몇몇 순간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무언가에 헌신하도록 자신을 이끌었다면
모든것이 흩어지고 난 뒤에도 그 순간들만큼은
여전히 빛을 내며 그곳에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