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특수교육 (SEND) 상황과 문제점
제가 근무하는 런던 외곽의 한 초등학교 2학년 학급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해요. 현재 제 반에는 자폐 스펙트럼(ASD) 진단을 받은 학생이 4명 있습니다. 그 외에도 ADHD, 언어 및 정서적 어려움을 보이는 학생들이 여럿이죠. 하지만 저희반 누구도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도와줄 수 있는 보조 교사는 없는 상태에요 (많은 학교들이 재정이 많지 않아 EHCP에 아이를 도와줄 인력을 구할 수 있는 금액이 포함되면 보조교사를 고용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자해를 하는 아이도 있어서 이 아이가 혹시라도 크게 다치지 않을까 싶어 노심초사하며 지켜봐야 하기도 했어요.
이 정도로만 봐도 일반 학교내 특수 교육 지원이 필요한 SEND(Special Educational Needs and Disabilities) 아동의 비율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는 "한 학급의 절반 가까이가 스펙트럼 특성을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영국의 특수 교육 시스템은 오랜 시간 동안 ‘분리에서 포용(Inclusion)으로’라는 이상을 향해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영국은 이 포용의 이상과 특수학교 부족, 현실적 재정 압박이라는 구조적 위기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국의 SEND 제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현재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특히 일반 교실에 놓인 절망적인 현실은 무엇이며, 정부의 개혁 계획은 이 위기를 어떻게 다루려 하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살펴보겠습니다.
영국의 특수 교육은 SEN(Special Educational Needs)으로 불리다가, 2001년 ‘장애(disabilities)’가 추가되어 SEND(Special Educational Needs and Disabilities)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SEND는 단순히 장애 학생만을 의미하지 않고, 언어, 인지, 정서, 사회성 등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모든 학생을 포괄합니다.
1978년 Warnock 보고서: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SEN children)"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며, 특수학교 중심의 분리 교육에서 통합 교육(integration)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4년 아동 및 가족법(Children and Families Act): 핵심은 EHCP(Education, Health and Care Plan) 제도의 도입입니다. EHCP는 교육뿐만 아니라 건강(Health), 복지(Care) 지원을 아우르는 포괄적 계획으로, 만 25세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수 교육 지원은 보통 학교에서의 관찰과 상담에서 시작됩니다. 학교는 내부적으로 SEN Support 학생에게 개별화된 지원(Intervention)을 제공합니다. 어려움이 지속되면 지원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지역 자치단체(Local Authority)에 EHCP를 신청하며, 승인까지 2년 이상 걸리는 사례도 많습니다.
EHCP가 승인되면 학생은 명확한 목표와 구체적인 지원 계획(언어 치료, 작업 치료, 보조 교사 배치 등)을 갖게 됩니다. 학교는 이에 따라 보조 교사(Teaching Assistant, TA)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EHCP를 받은 아이들 수가 증가하면서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재정 지원은 명시하지 않고 있는 경우도 많아 보조 교사를 구할 수 없어 교사가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유명 무실한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작년 저희반 아이 중 자해하는 아이도 EHCP를 갖고 있었지만 재정 지원이 없어서 보조 교사를 고용할 수 없어 아이가 화가 나거나 감정 조절이 안될 때 벽에 머리를 박거나 해서 제가 수업 중에도 수업을 중단하고 아이를 진정시키는 일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SEND 아동의 증가는 통계로도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6년 이후 EHCP를 가진 학생 수는 약 80% 이상 급증했으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가파른 상승세를 보입니다.
인식 개선 및 진단 확대
특히 자폐 스펙트럼(ASD), ADHD, 정서 및 정신 건강(Mental Health) 분야에서 진단 기준이 개선되고 인식이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단순히 '문제아'로 치부되던 아이들이 이제 정당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책 및 권리 강화
2014년 법 개정으로 EHCP 제도가 만 25세까지 지원을 확대하면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연령 폭이 넓어졌고, 부모들은 자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EHCP 획득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팬데믹의 영향
장기간의 봉쇄(Lockdown)와 원격 학습으로 인해 아동들은 사회성, 의사소통, 정서 발달 등에서 큰 어려움을 겪으며 발달 격차가 심화되었습니다. 학교 복귀 후 불안(Anxiety)과 행동 문제(Behavioural difficulties)가 폭증하면서 SEND 지원 요청이 크게 늘었습니다. 또한, 교사의 관찰을 통한 조기 발견 기회 상실도 아이들의 어려움을 심화시켰습니다.
영국 학교는 '교실 내 완전한 통합(Inclusive Classroom)'을 지향합니다. SEND 아동은 특수학급 없이 하루 종일 일반 학급에서 또래와 함께 배웁니다. 그러나 현재 이 시스템은 특수학교 부족과 재정 압박이라는 구조적 모순에 갇혀 있으며, 이는 현장 교직원에게 극심한 부담과 한계 상황을 경험하게 합니다.
특수학교의 부족과 일반 학교의 과부하
특수학교(Special School)의 수용 능력은 한계에 달했으며, 이로 인해 과거에는 특수학교에서 전문적인 지원을 받아야 했던 심각한 중증 아동들이 재정 및 인력 지원이 거의 없는 일반 학교(Mainstream School)의 교실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특수학교는 극최중증의 아이들만 간신히 수용하는 상황입니다.
교직원의 안전 위협과 심각한 폭력 사례
학교 운영 예산은 삭감되고 EHCP 지원마저 지연되면서, 전문적인 배경지식이나 충분한 인력 없이 중증 아이들을 담당하게 된 일반 교사들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폭력 노출 및 안전 위협: 특히 심각한 도전적 행동(Challenging Behaviour)을 보이는 아이들을 담당하는 교사와 보조 교사(TA)들은 매일 얻어 맞고 침 뱉음을 당하며 발길질을 당하는 등의 폭력에 빈번하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현장에서 1:1 보조교사가 1학년 어린 학생에게 목졸림을 당하는 등 교직원의 신체 안전이 위협받는 심각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심각한 부상 및 후유증: 영국 보조 교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53%)이 학생에게서 비롯된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으며, 이로 인해 신경 손상, 골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학생에게 교사가 칼로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구조적 절망 - 내 책임이지만 예산은 없다
이러한 위협적인 현실 속에서 교사들은 학교와 지방 정부로부터의 현실적인 보호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합니다. 교사들은 아이의 지원 부족이 시스템의 문제임을 알면서도, "내 반 아이니까 내가 도와야 한다"는 교육자로서의 책임감과 "예산도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나"라는 현실적 한계 사이에서 커다란 무력감을 느낍니다. 포용을 향한 교육적 신념이 개인의 안전과 생존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유능한 교사가 교직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영국 SEND 시스템은 완전 통합(Mainstream)과 분리된 특수학교(Special School)라는 양극단 외에, 일반 학교 내에 특수 교육을 위한 별도 시설을 운영하는 모델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흔히 'Base' 또는 'Resource Provision'이라고 불립니다.
운영 방식: 일반 학교 시설을 공유하지만, 전담 교사와 보조 교사가 상주하는 별도의 교실 공간(Base)을 두고, 소규모 집단으로 특화된 교육과 치료를 제공합니다.
통합의 정도: 학생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Base에서 보내지만, 자신의 수준과 필요에 따라 일부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는 일반 교실(Mainstream)의 또래와 통합하여 학습하고 교류합니다.
역할: 이 Base는 EHCP를 받은 학생들 중 일반 학교에 완전히 통합되기 어렵지만, 특수학교에 갈 정도의 중증은 아닌 아이들에게 전문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중요한 중간 고리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이 Base 시설 역시 지방 정부의 재정 압박을 받고 있으며, 충분한 수의 Base 시설이 확충되지 못하면서 여전히 많은 중증 아동이 Base가 아닌 일반 교실로 '일단' 배치되는 과부하 문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영국 시스템의 위기를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한국의 특수교육 시스템과 비교해보겠습니다. 양국 모두 통합 교육을 지향하지만, 그 방식과 지원 주체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영국 시스템은 교육, 건강, 복지를 통합하여 학생의 삶 전체를 지원한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지만, 현재 재정 위기로 인해 이 포괄적인 구조 자체가 흔들리며 일반 교실에 극도의 부담을 전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영국 정부는 현재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 SEND 및 대안 교육(AP) 개선 계획(Improvement Plan)을 발표하고, 이어서 2025년 가을에 학교 백서(Schools White Paper)를 통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 개혁의 목표는 '적절한 지원, 적절한 장소, 적절한 시기' 제공과 재정적 지속 가능성 확보입니다.
정부 개혁 계획의 핵심 내용
시스템 표준화: 모든 지방 정부가 제공해야 할 지원의 전국 표준(National Standards) 도입을 통해 지역별 격차를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하려 합니다.
EHCP 개선: EHCP 표준화 및 디지털화를 통해 행정 부담을 줄이고 발급 속도를 높일 계획입니다.
전문성 강화: SENCO(특수 교육 코디네이터) 자격증 과정을 신설하고 교사 교육에 투자하여 일반 교실의 포용 역량을 강화합니다.
특수 시설 확충: 2022~2025년 26억 파운드 투자를 통해 특수학교 및 대안 교육 시설(AP)의 정원을 늘리고 시설을 개선합니다.
현장의 반응: 기대와 깊은 우려
현장 교사들과 전문가들은 개혁의 '의지'는 환영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표합니다.
1) 재정 절감 중심의 개혁 우려
현장에서는 개혁의 궁극적인 목표가 '재정 절감'에 맞춰져 있다는 비판이 높습니다. 특히 EHCP 발급 대상 기준을 높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아동의 수를 줄이거나, EHCP를 특수학교 아동에게만 한정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문제점: 만약 법적 권리인 EHCP의 범위가 축소된다면,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이 공식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일반 학교의 책임만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2) 예산과 인력 부족의 근본적 문제
정부의 투자 금액이 발표되었음에도, SEND 아동 수의 폭발적 증가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입니다. 정부는 일반 학교가 더 포용적(Inclusive)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포용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한 핵심 인력(보조 교사, 치료사)의 공급은 여전히 부족하며, 재정난으로 지방 정부는 인력 고용을 꺼리고 있습니다. 결국 절망적인 상황은 일반 교사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장기적 변화의 지연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그것이 현장에 정착되어 효과를 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현장의 교직원들은 계속되는 폭력 노출, 지원 부족, 그리고 구조적 절망감을 감수해야 합니다.
영국의 SEND 시스템은 지금 심각한 재정적 위기와 구조적 모순 속에서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 정부의 개혁은 특수학교 확충, 재정 지원, 그리고 현장 교직원의 안전 확보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들의 태도는 영국 교육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모든 아이는 배울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교사 공동체의 문화가 이 시스템을 버티게 하는 힘입니다.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현장의 교사와 직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모든 아이가 존중받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포용적인 교실을 만들기 위해 묵묵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국의 SEND 교육이 흔들리면서도 그나마 붕괴되지 않고 명맥을 이어가는 배경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