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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김 Feb 10. 2022

영국 아이들이 그리핀도르에서 배우는 것들

영국 사립학교의 하우스 시스템

해리포터 1편에서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날 아이들은 하우스(기숙사) 배정을 받는다.

마법 모자는 아이마다 특성을 파악하여 적절한 하우스로 배정해 주는데, 해리를 두고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 중 고민을 하다가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그리핀도르로 배정해 준다.


20년 전 영화로 처음 해리 포터를 볼 때에는 이런 내용들도 조앤 롤링의 작가적 상상력에 의한 허구의 내용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영국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 보고는 이것이 영국 사립학교의 오랜 전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국 학교 아이들은 입학과 함께 특정 하우스에 배정받는다. 학교의 규모에 따라 하우스의 개수가 달라지지만, 보통 4개인 경우가 많다. 각각의 하우스는 추구하는 가치가 있고 상징하는 색깔과 심벌이 있다. 배정되는 방식은 보통 랜덤이나 학교에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 대체로 같은 하우스에 배정해 준다고 한다.

(자, 마법 모자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하우스 시스템의 유래가 이튼스쿨 같은 정통 세컨더리(중/고등학교) 기숙학교에서의 기숙사 배정과 관련이 있었으므로 ‘House’라는 이름을 가지지만, 지금은 기숙학교 외에 통학 기반의 주간 사립학교와 일부 공립학교까지도 퍼져 있고 더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프라이머리 스쿨(초등학교)에서도 이런 제도를 운영하므로 하우스는 기숙사의 개념과는 다를 뿐더러, 우리말로는 번역할 만한 말이 마땅히 없다. 이런 하우스 시스템은 영국 및 일부 미국학교와 영연방 국가들에서만 공유되는 전통이다 보니 가까운 프랑스와 독일 같은 유럽 국가에서조차도 하우스를 번역할 말이 없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매체의 특성상 갈등의 주축이 되는 하우스 간 시각적 차이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교복부터 달랐지만 현실에서는 대체로 각각의 하우스 뱃지를 다는 수준이다.

우리 아이는 등교 첫날 파란 뱃지를 하고 왔길래 “이게 뭐니?” 했더니 “몰라요. 선생님이 줬어요.” 라고… 흠.

내가 다음날 등교시키면서 교문에서 인사를 해주고 계신 교장선생님께 물었더니 이게 바로 하우스 뱃지란다.


하우스 시스템의 핵심은 하우스 내에서의 협동, 리더십, 공동체 정신의 함양과 하우스 간의 경쟁 체제를 통한 노력, 공정, 매너 있는 스포츠맨십을 익히는 데 있다.


아이들은 보통 졸업할 때까지 하우스가 그대로 유지되므로 일반적으로 같은 하우스 안에서 매우 돈독한 유대관계가 형성된다. 또한 하우스 단위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많아 자연스럽게 선후배 간 상호작용이 많이 생긴다. 한 하우스 내에서 상급학년 선배들은 더 어린 동생들을 지도하거나 돌봐 주고, 더 어린 동생들은 선배를 따르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본인 스스로가 선배가 되어 동생들을 돌본다.

개중에 두드러지게 뛰어난 아이들은 상급학년이 되어서 하우스 전체의 반장(prefect)이 된다. 이는 오랜 기간 동안 하우스에 대한 기여와 리더십을 인정받은 것이므로 매우 영예로운 일이다. 하지만 평범한 아이들도 후배들을 보살피고 이끌어주는 경험을 골고루 하게 되고, 아무리 뛰어난 아이일지라도 처음에는 선배의 보살핌과 지도를 받는다.

해리포터에서는 주인공의 비범함을 강조해 주어야 하니 해리가 1학년으로 들어가자마자 퀴디치 수색꾼(Seeker)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만, 기껏해야 6~15살 정도인 아이들에게 1년의 차이라는 것은 신체조건과 정신능력, 경험치 측면에서 매우 큰 것이라서 그런 역전 상황은 현실적이지는 않다.


1학년인 우리 아이의 경우, 매주 금요일 수영시간에 2학년의 같은 하우스 언니와 짝을 이루어 다닌다. 스쿨버스를 타고 동네 수영장으로 이동할 때 선배 아이들은 동생의 벨트를 채워 주고, 락커룸에서 동생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조금 도와준다. 아이는 매번 바뀌는 이 언니들이 친절하고 좋다며 이런 활동이 있는 날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크리켓, 축구, 조정, 럭비 등 스포츠의 항목이 다양해지고 그때에도 같은 하우스 선배들이 후배들을 지도해 줄 것이다.


해리포터에서 보는 것처럼 하우스 간에는 경쟁 관계가 성립한다. 학교에서의 스포츠들은 대체로 하우스 간 대항전으로 이루어지며 바른 행동, 학업, 토론대회, 자선행사 등도 하우스 간 경쟁을 한다. 이 모든 점수가 하우스별로 합산되어 학년 말 하우스 챔피언 어워드를 받는다.

단 한 번의 기회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이벤트들이 누적되고, 전체 과정 또한 매년 반복되는 것이므로 성공과 실패를 고루 경험하고,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경험도 하게 된다. 같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하므로 평판이 중요하며 모든 경쟁에서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 정신이 강조된다.


영국의 시스템, 그중에서도 교육과 관련된 부분은 이들의 오랜 역사에서 비롯된 지혜와 내공을 엿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바로 이 하우스 시스템 또한 아이들이 협업과 경쟁, 리더를 따르는 경험과 리딩을 해 보는 경험을 어린 나이부터 확실하게 심어 준다는 면에서 그런 것 같다.



대상관계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린 시절 경험해 본 관계를 나이가 들어서도 비슷하게 반복한다고 한다. 대체로 가장 먼저 형성되는 관계인 가정 내에서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지만, 아이가 만 6세가 되어 학교생활을 하게 되면서 새롭게 겪는 관계 또한 이후에 경험할 더 다양한 인간관계의 원형적 모습이 될 수 있다.


한국 교육 시스템 안에서 경험하는 인간관계의 방식이란, 나이(학년) 별로 구분되어 일괄 통솔을 받고 학년 내에서 개인 간 무한 경쟁을 벌이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자기 학년 내에서 개인 단위로 경쟁을 하고, 각자의 타고난 실력 혹은 부모의 투자에 따라 우열이 구분된다. 똘똘한 아이들은 선생님의 인정을 받고 뒤처지는 아이들은 추가적인 케어를 받거나 도태된다.

만약 아이가 각고의 노력으로 뒷줄에서 앞줄로 전진했거나 무슨 계기로 삐끗하여 앞줄에서 뒷줄로 밀리는 것 같은 우열 이동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수한 아이들은 한 번도 열등함을 경험해 볼 수 없고 열등반 아이들은 우등함의 경험을 해 볼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평범한 아이들이 열패감만을 내재화한다는 부분도 슬프지만, 향후 사회 지도층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우수한 아이들이 겸손을 경험해 보지 못한다는 부분도 참 심각한 문제이다.


같은 단위로 관리되는 한 학년 아이들은 같은 년도 대입 입시(혹은 취업경쟁)를 치르는 직접적인 경쟁 상대이므로 태생적으로 진정한 협력관계가 되기 어렵다. 물론 한국의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도 그룹 활동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극히 일회적인 이벤트일 뿐이라 의도와는 다르게 대체로 프리라이더를 발생시키고 기여도에 대한 내부 갈등만 키울 뿐 좋은 방식의 리더십 발휘나 협업의 경험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또한 대체로 그 경쟁은 대입(혹은 취업)이라는 최종 결과 하나만을 위한 것이므로 절박하고 치열하다. 다음의 기회는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확실하고 비용이 크다. 아이들에게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경험이 일상적이지 않다.


반면, 사회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관계를 생각해 보자. 이렇게 나이와 조건이 같은 집단이 “요잇, 땅!” 하면 함께 같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경쟁관계가 있는지? 그나마 옛날 공무원 사회나 대기업 사회는 기수와 연차를 중시하고 동기들 간 승진 경쟁을 하는 방식이라 비슷한 면이 있었겠다. 하지만 요즈음은 그런 대기업들조차도 공채 위주의 채용방식을 버리고 있다. 연공서열이 무너진 지는 한참 됐다. 직급도 파괴하고 통일하는 것이 현재의 트렌드이다.

대체로 사회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경험과 나이, 실력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고 협업하고 그룹 단위로 경쟁을 하는 것이다. 신참자로서 배워야 할 때도 있고, 지시에 따라야 할 때도 있다. 동등한 입장에서 같이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누군가를 부려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25년에서 30년에 이르는 학생 시절 내내 선배의 지도에 따른 적도, 후배를 이끌어 본 경험도 없고 동기들 간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업 경험도 없이 개인 단위에서 철저히 파편화되어 경쟁만을 해 보았던 경험으로 그런 사회생활을 바로 잘해 낼 수 있을까? 당장의 모든 사회생활이 괴로움 그 자체이다. 그러니 힘들게 입사를 하고서도 사표를 내버리는 것이다.


학생 때의 성적(혹은 대학교 타이틀)이라는 것이 대체로 사회에서 그 사람이 수행할 여러 과업의 성공률을 가늠하기 위한 척도로서 손쉽게 이용하기 위한 것이고, 학생에게 요구되는 여러 가지 과업들이 대체로 성인이 되어 필요한 여러 가지 활동들의 연습 과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때, 요즘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이 ‘예측 기능’과 ‘훈련 기능’ 모두 철저히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리핀도르가 필요하다.



(+) 덧붙이는 말

하우스 시스템이라는 단편적인 면을 보고 떠올린 생각이라 많은 반박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영국도 입시 위주의 치열한 경쟁 체제인 것은 매한가지이며, 특히 계층 간 차이가 매우 커서 Upper class와 Working class의 상황이나 형편은 매우 다르기도 하고 이것이 큰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또 기회가 되면 사립 기숙학교 중심의 영국의 문제점과 그 이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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