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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김 Feb 16. 2022

일주일의 자가격리와 원격수업

주의 : 엄마의 분노조절장애와 알코올 의존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일요일 오전 처음으로 발열과 두통 등 코로나 증상을 보였다. 

아이가 가장 아팠던 첫날은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고, 컨디션이 회복된 2일 차부터 양성이 확인되었다. 영국의 코로나 확진자 격리 기준상 첫 양성 확인일로부터 D+5일까지는 자가격리를 해야 했고, 5일째부터 이틀 연속 음성이 확인되면 격리 해제가 가능했다.

마음 졸였던 첫날 이후 아이는 완전히 정상 컨디션을 회복했고 나와 남편은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지만 코로나 백신의 효과인지 전염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주일 간의 자가격리와 원격수업 상황에서 정신건강 유지가 더 큰 일이었다.


월요일 아침, 코로나 검사 키트의 두 줄을 확인하자마자 일단 같은 반 학부모들의 왓츠앱 대화방에 아이의 양성 사실을 알렸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지만 다른 엄마들의 도움으로 학교 결석 알림 메일 주소와 담임 선생님의 메일 주소를 전달받아 간단히 메일을 보냈다. 


하루치 수업 자료와 원격수업용 Teams 링크가 왔다. 

아이의 원격 수업은 오전 내내 대기했지만 연결이 안 되었다. 엄마들 대화방에서 물어보니 11시 수학 시간에 연결한단다. 오늘 담임선생님 두 분 중 주로 온라인 수업을 담당하시는 메인 선생님이 오늘 안 계시다고 한다. 그런데 11시 수업마저도 연결이 안 되었고 다음 12시 30분 수업도 연결이 안 되었다. 그다음에는 오후 2시 35분 과학시간에 된다고 한다. 


화를 꾹꾹 누르고 아이 담임에게 메일을 썼다. 이렇게 온라인 수업까지 동시에 진행해 주면서 등교할 수 없는 아이들을 배려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그런데 수업이 언제 시작하는지 미리 좀 알려달라고. 그랬더니 그날 이후부터는 수업 자료를 보내 주면서 다음 날의 수업 시작 시간들까지 써 주었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에 접속 대기를 하지만 또 아무 소식이 없다. 

교실에서도 수업을 병행하고 있는 선생님과 실시간으로 소통을 할 수가 없으니 약속된 시간에 연결이 되지 않아도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다. 혹시나 내가 조금이라도 늦었는지 계속 신경이 곤두선다. 

연결이 안 되어 수업을 못 듣는 상황, 아이에게 Worksheet라도 시키려 하니 간단한 것도 이해를 못 하고 하기 싫어서 몸을 배배 꼬았다. 속 터지는 시간이 지나고 겨우 연결이 되면, 좀 늦어서 미안하단다. Technical issue가 있었다나 뭐라나. 


겨우 연결을 시켜놓고 아이는 수업을 들으면 되겠거니 하고 잠깐 한숨 돌리려 하는데 또 그게 아니다. 영어로 하는 말이 말이 너무 빠르거나 어려워서 하나도 못 알아듣고 있다. 못 알아듣는 내용을 옆에서 설명을 하나하나 해 주는데 심지어 내 말에 집중도 안 한다. 집중해야 할 곳에는 집중하지 않고 계속 연필을 만지작거리고, 쓸데없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하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하루는 아침에 코러스 시간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예전에 배운 노래인지 가사도 없는데 다들 잘도 부른다. 우리 아이만 멍하게 있다.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에서 간간이 들리는 가사들을 메모하며 무슨 노래인지 검색하고 있다. (눈물) 

이어지는 영어 시간, 언어 수준이 가장 높다.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써야 하는데 우리 아이에겐 언감생심, 책이나 읽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눈물 한 번 더)

수학 시간에는 벌써 곱셈의 원리를 배우고 있다. 1~2년 정도 한국에서 꾸준히 연산을 시켜 왔으니 적어도 수학만큼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오판이었다. 우리 아이는 덧셈과 뺄셈은 비교적 잘 준비해 왔지만 아직 곱셈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 (곱셈은 한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이었는데!) 한국에서 평범한 수준인 아이도 영국에 오면 수학 천재 소리를 듣는다더니, 다 뻥이다. 

Music 시간이다. Tin whistle을 지난주에 집에 갖다 놔서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Tin whistle은 리코더처럼 생긴 피리인데 음악시간에 요즘 이걸 불고 있다. 그런데 이걸 하는 게 또 성에 안 찬다. 가르쳐 주는 코드를 제대로 연주하고 박자에 맞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냥 시끄럽게 불고만 있다. 이따 수업 끝나면 또 가르쳐 줘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었다…


간식시간, 빵과 과일 등을 챙겨 주면 세월아 네월아 준 양의 겨우 1/4 정도를 먹는다. 그러고는 잠시 후에 또 배가 고프다고 한다. 겨우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챙겨주는데, 먹는 태도나 양이나 정말 성에 안 찬다. 애 수업 봐주면서 점심시간 안에 밥 차려주고, 먹이고, 설거지까지 마무리하려니 나는 정신이 없다. 하지만 아이는 내 마음 같지 않아 밥 먹는 속도가 여유롭기 그지없다. 


너무 답답하다. 속이 터진다. 정말 화가 난다. 나에게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다. 아아…

아이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엄마들 방에서의 대화도 답답하고 학교와의 소통도 답답하기 짝이 없다. 

영국까지 비싼 돈 들여 와서, 학교도 못 가고, 말도 잘 안 통하고, 아이는 코로나에 걸리고, 엄청난 의료보험비도 일시불로 냈건만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제대로 안내도 못 받고 이렇게 집 안에 아이와 갇혀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 화가 났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다. 

아이가 아팠고 감사하게도 금세 회복되었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분명 며칠 전 생각했지만 그것은 또 그때뿐. 


아이에게도 화나고 이 나라에도 화나고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는 이 상황에도 화가 나고 엉망으로 운영되는 온라인 수업에 항의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나 자신에게도 정말 너무 화가 났다. 좁은 방에 갇혀 아이 수업 챙겨주고 밥 챙겨주다 보니 정말 내 정신건강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코로나로 원격수업을 오래 진행했던 지난 2년, 정말 대한민국의 수많은 엄마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정말 원격수업이라는 것은 엄마의 혈압을 오르게 하고 분노조절장애를 만드는 일이다. 


하루가 지나고 남편이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나니 와인 한 잔 생각이 간절해진다. 일주일에 한 번만 마시려고 하는데 그게 안 된다. 하루 종일 아이와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을 하고 나면 알코올이 아니고서는 편안하게 이완할 수가 없다. 알코올 의존증이 생기려는 것 같다. 




(드디어 일주일 후)

코로나 음성 결과를 확인하고 격리가 끝나 아이가 다시 학교에 가고 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특히나 나는 그중에서도 기억력이 나쁜 축에 속한다.

심지어는 원격 수업이 좋은 기회였다고까지 생각이 든다. 아이가 듣고 있던 수업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챙겨줘야 할 부분은 없는지, 어떤 부분을 짚어주면 초기 적응에 도움이 될지 알 수 있었던 기회라고. 


하지만 역시,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힘든 기간이었다. 아이와 잠시도 떨어지지 못하고 24시간 밀착되어 있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엄마에게도 숨 돌릴 틈이 필요하다. 





아이야, 별 일 없이 나아 줘서 정말 고마워.

학교에서 하는 수업을 100% 이해는 못 하겠지만, 점점 더 나아지겠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씩씩하게 즐겁게 학교에 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일주일 동안 엄마가 화를 많이 냈지만, 사실은 이 말이 진심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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