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코로나 확진
이렇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주말 계획을 열심히 미리 세워놓는 편이 아니다 보니 항상 닥치고서야 “오늘은 뭘 할까?” 고민을 한다. 영국은 아직 춥고 흐려서 야외활동은 본격적으로 하기가 어려우니 선택지가 좁다.
어느 한 일요일, 집 근처의 Market에 가 보기로 했다. 일요일마다 장터가 열리는데 어떤 날은 Farmer’s market이, 어떤 날은 Flower market이, 어떤 날은 Cheese market이 번갈아가며 열린다고 한다. 게다가 그 동네에는 멋진 공원과 구경할 수 있는 오래된 저택도 있다고 하니 시장도 구경하고 간단하게 공원을 산책하고 오면 될 듯했다. 어른 걸음으로 30분 정도 되는 거리고 가는 길도 템즈강을 끼고 걸을 수 있어 멋지다고 하니 아이도 킥보드를 타고 가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출발할 때는 좋았다. 템즈강을 따라 걸었다. West London의 템즈강 상류 풍경은 어디에서건 참 멋지다. 아직은 흐린 날씨에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밖에 없지만 고즈넉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난다. 그 위에서 10대 아이들이 조정 연습을 하는 모습도 이국적이고,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도 작지만 고풍스럽다. 강 바로 옆으로 가정집들이 있고, 집 앞에 좁게 강을 따라 길이 이어져 있었다.
20분가량 걸었을까? 약간 쌀쌀한 것 같기도 하고 아침도 너무 간단히 먹은 터라 가는 길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잠깐 몸을 녹이고 커피도 한잔 하기로 했다. 그 카페는 작고 아늑했는데, 일요일을 맞아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즐기려는 동네 주민들로 북적북적했다. 카페라테 두 잔과 간단한 Breakfast 메뉴를 주문하고 느긋한 분위기를 좀 즐기려 했다.
그런데 아이 눈치가 영 이상하다. 아까부터 다리가 아프다는 둥 조금씩 짜증을 내기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주스든 스무디든 달콤한 디저트든 원하는 게 있으면 사 주겠다는데 고개만 젓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계속 달래 가며 이것저것 권해 보다가, 항상 어디 나갈 때마다 아이 눈치만 보고 비위를 맞춰 줘야 하는 상황에 너무 화가 났다. 나도 굳은 표정으로 커피만 마셨다. 그랬더니 아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종업원과 사장님도 무슨 일인가 싶어 괜찮냐고 물었다. 아이에게 왜 그러냐고 했더니, 머리가 아프단다. 이마에 손을 대 보니 조금 뜨끈했다.
지난 한 주 내내 Year1 아이들이 연쇄적으로 코로나에 걸려 상당수가 등교를 못 하고 원격수업을 하고 있던 차였다. 여기 아이들은 학교에서 마스크를 안 쓴다. 아이에게 확진자가 많아지기 시작한 지난주부터는 수업 시간 중에도 가능한 한 마스크를 쓰라고 일러두었지만 하교할 때 보면 또 마스크를 벗고 있곤 했다. 한국 어린이집에서는 지난 2년 동안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도 (잘) 지냈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안 쓰고 있으니 혼자 쓰고 있기가 더 힘든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코로나인 것 같았다. 일요일 계획은 취소하고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 남편에게는 약국에서 키즈용 해열진통제를 사 오라고 했다. 다행히 지난주에 Lateral Flow test kit는 여유 있게 받아 두었더랬다. (여기서는 신청만 하면 NHS에서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무료로 배포한다. 물론 근처 약국에 재고가 없을 때도 많지만.)
집에 와서 열을 재어 보니 39.8도, 40도를 왔다 갔다 한다. 코로나 검사는 음성으로 나왔다. 아이는 머리가 아프다며 눈물을 보였다.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해열진통제를 5ml 먹이고 열을 식혀주려고 물수건으로 닦아주며 쉬게 했다. 겉으로야 아이를 달래주며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혹시나 코로나가 아니라면 도대체 뭘까 싶어 더 혼란스러웠다. 좀 검색해 보니 너무 무서운 병들이 많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응급실에라도 가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코로나가 거의 확실했다. 모든 예방접종을 제때 다 맞혔고, 지난 한 주 내내 코로나가 창궐하는 교실에서 하루하루 계속 확진이 되어 가는 아이들과 마스크를 벗고 놀지 않았나.
약을 먹이면 약효가 약 5시간쯤 지속되다가 다시 열이 오르고 두통을 호소했다. 약은 최대 하루 4번까지, 간격은 최소 4시간 간격을 유지하라고 되어 있었다. 12시 40분, 18시 30분 두 번 약을 먹이고 재웠다. 다행히 약을 먹이기 시작한 후로는 40도 이상으로 열이 오르지는 않았다. 밤 12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열을 재었더니 39.4도, 다시 약을 먹이고 재웠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38~39도 사이였다. 살짝 다시 열이 오르는 것 같길래 오전 8:30에 다시 약을 먹였다.
아이가 건강한 편이어서 병원에 갈 일이 많지는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한 번 아플 때마다 더 겁이 난다. 새삼스럽게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하는 마음이 든다. 지난주 반 아이들이 다들 한 번씩 코로나에 걸리고 있을 때, 한편으로는 (증상도 경미하다는데) 어차피 한 번은 겪을 일 같기도 하고 빨리 겪고 넘어갔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다들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각자 이렇게 마음 졸이는 시간들이 있었던 거겠지.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니고 아무리 객관적 수준에서 ‘경미’하다고 할 만한 것이라 한들,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픈 그 순간에 부모 된 입장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그럭저럭 평범한 일상들을 살아내는 날들이 감사한 것이라는 것을, 항상 이렇게 그 일상성이 깨어지고 나서야 깨닫는다.
"오늘 두 번이나 검사를 하기는 싫어요!"
아이가 이날 저녁 테스트를 또 하는 건 거부해서,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두 번째 검사를 해 볼 수 있었다. 역시나, 두 줄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