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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김 Feb 19. 2022

국민성에도 MBTI가 있다면 영국인은 극 T형

영국인들이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단상


유럽인들에 관한 꽤나 고전적인 농담이 하나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더니, 경찰은 영국인이고 연인은 프랑스인이고 기계들은 독일산이고 요리사는 이탈리아인이며 이 모든 것은 스위스인이 관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옥엘 갔더니 경찰이 독일인이고 연인은 스위스인이고 기계는 프랑스산, 요리사는 영국인, 그리고 이탈리아인이 관리를 하고 있더란다. 

출처에 따라 조금씩 변주는 있지만 영국인이 지옥에서 맡는 역할이 요리사이고 천국에서 맡는 역할은 경찰인 점은 예외 없이 동일하다. 영국의 요리가 유난히 맛이 없고 ‘경찰’로 대변되는 행정 영역에서 우수하다는 데 전 세계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영국을 경험해 보자면, 확실히 이 나라 사람들은 감각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시각, 청각, 미각 등 각종 감각을 통한 극상의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 곳도 없다. 대체로 이 곳 사람들과 이 사람들이 만든 시스템들은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며 경제적이다.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는 것이 대체로 ‘예술’의 영역이라고 할 때, 영국인은 유럽인들 중 가장 ‘덜 예술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예술이라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이므로, 등 따뜻하고 배부른 다음에야 비로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그러니 따뜻한 기후에 먹거리가 풍부한 남쪽 지방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더 낙천적이고 예술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낙천성과 예술적 감각은 상당 부분 그런 기후적 이점에 말미암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반면, 춥고 농사짓기 힘든 북쪽 지역 사람들은 겨울을 대비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 정도 위도에서는 여름 한 철 즐기고 놀았던 베짱이들은 겨울을 못 버티고 일찌감치 굶어 죽거나 얼어 죽었을 것이고, 부지런히 식량을 모아 두었던 개미들만 살아남아 후손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내일도 잘 곳이 있고 어디서든 먹을 것이 생겨날 거라는 낙천성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함이 미덕이었을 것이고 심지어는 비관주의가 생존율을 더 높여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도상 큰 차이가 없는 프랑스나 혹은 독일과 비교해 보아도 영국인의 현실주의, 실용주의는 특이한 부분이 있다. 프랑스에는 수없이 많은 훌륭한 미술가들이 있고 세계에서 제일로 치는 미식문화와 최고급의 명품 브랜드들, 고급 화장품과 향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독일은 게르만족 특유의 투박하고 검소한 습성 때문에 그런 문화적 풍부함은 없지만 그래도 위대한 음악가들이 있다. 

대체로 역사 속에서 예술가는 돈 많은 왕족이나 귀족, 혹은 국가 차원의 후원을 받아야 생계 걱정 없이 예술혼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서 특정 시기, 장소에서 예술의 발달은 경제력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근대 유럽 예술의 중심이 경제력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스페인과 프랑스, 플랑드르(네덜란드)로 넘어온 것처럼. 

하지만 대항해시대의 개막 및 산업혁명 이후 해가 지지 않는 제국까지 이루어낸 영국인들은 왜 좀더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취향을 계발하지 않았을까? 영국 상류층은 성(sex), 미식, 미술, 음악 등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감각적 경험에 탐닉하기보다는 추가적인 식민지의 개척, 지속가능한 시스템의 운영 등 상대적으로 실용적, 경제적인 부분을 파고들었다. 

(영국에서도 퇴폐 향락적인 귀족문화가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일탈은 똑똑한 모범생이 어디까지 안전한지 미리 계산한 다음 딱 거기까지 일탈해 보는 느낌이랄까.)


진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영국이 섬나라이기 때문에 대륙에서 유행하는 최첨단의 상류층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가톨릭이 영향력을 유지했던 이탈리아/프랑스나 (가톨릭 교리와 거의 비슷한)루터파 신교가 대세였던 독일에 비해 청빈함을 미덕으로 삼는 칼뱅파 신교의 영향을 비교적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이곳 영국의 시스템에서는 특정인이 흥청망청할 수 있을 만큼 부와 권력을 독점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왕실은 끊임없이 의회의 견제와 감시를 받았고 의회를 구성하는 상류층과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능력과 명분을 증명해야만 자신의 위치를 지켜낼 수 있었을 테니. 그렇다면 이것도 근본적으로는 지리적 이유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영국은 섬나라여서 외국의 침입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고 이에 따라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 절대왕권이 들어설 수 없었다고 하니.

혹은 앵글로색슨인의 유전자에는 뇌의 감성적인 영역보다는 이성적인 영역이 조금 더 발달해 있을 수도 있겠다. 먼 옛날 켈트인을 밀어내고 이 땅의 주류 세력이 된 앵글로족과 색슨족은 게르만 종족에서 갈라진 인종으로 크게 봐서 독일 게르만족과 뿌리가 같다. 독일의 이성주의이든 영국의 경험주의이든 근대 철학이 모두 여기서 탄생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이들 게르만 종족이 이탈리아나 중남부 프랑스의 라틴계 인종보다 확실히 ‘생각이 많은’ 인종 같기는 하다. 

여튼,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얽혀서 영국이 시각, 청각, 미각적 예술에는 썩 대단한 실적을 못 보이는 것 같다. 반면 영국인들이 이야기(내러티브) 혹은 언어의 사용과 관련해서는 굉장히 앞서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생각도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 번에 따로 한 번 정리해 봐야겠다.


길게 돌아 왔지만, 결론적으로 영국인의 가장 큰 미덕과 가치는 이 세상을 운영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합리적이며 실용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고안하고 굴리는 부분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류가 지금껏 발명하고 운영해 본 체제 중 가장 성공적이고 발전된 형태라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영국의 가장 큰 가치는 사진으로 찍을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맛보거나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영국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짧은 시간 맛보거나 즐길 수 없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며 감각적 재미가 없는 것 같다.

물론 영국에서도 관광상품으로 내세우는 대표적인 Meme들이 있다. 짧게 영국 여행을 한다고 할 때 필수 코스라면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과 테이트 모던 등이 있고, 웨스터민스터 사원과 국회의사당, 버킹엄 궁전과 근위병 교대식, 아름다운 시내 공원들이 있고, 밀레니엄 브릿지와 런던 아이, 뮤지컬, 모던 락과 브릿팝 등이 있다. 사실은 이들 또한 하나하나 따져 보면 모두 이성과 실용주의에 근간한 것들이다.

우선 박물관과 갤러리의 풍부한 전시품은 잘 알려진 것처럼 영국인들이 만들어낸 것들이 아니다. 감성에 근거해 순수한 예술혼을 태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성적 호기심과 경제적 판단에서 말미암은 ‘수집욕’을 불살라 모아들인(약탈하고, 사들인) 것이다. 

다음으로 궁전과 웨스터민스터, 시내의 공원들은 현대에 남아 있는 군주제와 신분제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또한 과거의 권력이 철저한 이성적 계산을 통해 체제를 전복시키는 혁명을 예방하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에 성공한 ‘살아 있는 화석’ 이다. (영국의 수많은 공원은 대부분 과거 왕족과 귀족들의 정원 혹은 사냥터였던 사유지를 일반 대중에게 오픈한 것들이다.) 의회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마지막으로 런던의 현대 미술과 음악은 이렇게 절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전통에 대한 자성적인 반성(밀레니엄 프로젝트) 혹은 젊은이들의 반항(대중문화 그리고 현대미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불 같은 감성을 가진 한국인들 사이에서, “나는 어릴 때 무슨 외상을 입어서 감정 중추인 대뇌변연계에 손상이 간 것은 아닐까?” 라고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 이성만 쓰는 인간인 나는 이 곳 사람들의 성향과 분위기가 상당히 편하다. 

아, 다른 점이 있구나. 나는 실용적인 부분 빼고, 돈 안되는 것들에만 참 관심이 많구나.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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