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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김 Sep 30. 2022

영국인들의 푸드 배틀

때론 사소한 차이가 가장 참을 수 없는 법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개인 취향이 있는, 참 쓸데없으면서도 양보하기 어려운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부먹이냐, 찍먹이냐.

물냉이냐, 비냉이냐.

양념이냐, 후라이드냐


먹는 데 진심인 사람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법인 걸까? 이곳 영국에도 음식에 관한 사소하며 치열한 논쟁들이 있었다. 오늘은 그간 내가 접한 영국 버전의 푸드 배틀을 소개해 볼까 한다.


영국인들에게 음식과 관련해서 가장 논쟁적인 영역은 대부분 애프터눈 티와 관련해서인 것 같다.



우선 스콘과 관련해서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오랜 논쟁, “클로티드 크림을 먼저 바를 것인가 혹은 잼 먼저 바를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크림 파’들은 ‘원래 버터 같은 유제품류를 먼저 바르고 그 위에 Fruit Preserve를 바르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잼 파’는 ‘데운 스콘 위에 클로티드 크림을 올리면 크림이 줄줄 흘러내린다. 누가 녹아내린 클로티드 크림을 먹고 싶어 하겠는가? 잼을 먼저 올려서 스콘을 식히는 것이 맞다.’라고 한다.


참으로 쓸데없는 논쟁 같지만 영국인들에게는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보다. 서로 애프터눈 티의 원조라고 자부하는 두 지역 – 데본(Devon)과 콘월(Conwall) 지역이 각각 크림 파와 잼 파를 대표하는데, 이 두 지역 간 자존심 싸움이 장난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수학자가 수학적으로 콘월 방식이 맞다고 증명을 했더니, 그 연구가 콘월을 기반으로 하는 코니쉬 클로티드 크림 회사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거라는 폭로를 하고...

참 쓸데없다.


참고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님도 살아생전 늘 잼 먼저 올리는 방식을 선호했다고 한다.

흠, 여왕님 등판이라니. 이 정도면 콘월의 판정승인가?


아무 생각 없이 늘 크림부터 얹고 있던 나는 “오?” 하며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크림이 아래를 받쳐주는 스타일이 좋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버렸다.




스콘과 관련한 또 다른 논쟁은 이것이다. “스트로베리 잼이냐, 라즈베리 잼이냐?”

캐주얼한 카페에서는 선택의 옵션이 없을 때가 많지만 조금 더 전문적인 티하우스에서 크림 티를 주문하면 “스트로베리 잼으로 할래, 라즈베리 잼으로 할래?”라고 곧잘 묻곤 했다.


한국인인 내게 ‘크림 티’는 확실히 새로운 영역이었지만 ‘잼’이라면 나도 40여 년 간 한가닥 하던(?) 영역이었다. 나의 엄마는 집에서 딸기잼과 포도잼을 집에서 만드셨고, 나도 사 먹는 잼의 퀄리티에 만족하지 못해서 딸기, 포도뿐 아니라 산딸기, 살구, 복숭아, 무화과, 블루베리 등 각종 제철 과일로 직접 잼을 끓이곤 했다. 한남동 패션 5 같은 곳에서 파는 비싸디 비싼 잼들도 먹어 봤다. 그런 나의 1순위 선호 취향은 확실하게, 전통의 스트로베리 잼이었다.

게다가, 영국의 딸기잼들은 정말 맛있다! 포트넘&메이슨 같은 고급 브랜드야 당연히 좋지만, 그냥 M&S에서 파는 1.5파운드짜리 딸기잼만 해도 너무 맛있다. (영국에 오셨던 친정엄마도 딸기잼 맛있다며 일부러 사 가실 정도였다.)


그런데 영국인들 중 단호한 표정으로 “아, 난 라즈베리야. 확실히.” 이런 경우를 몇 번 보았다. 다시 한번, “오?” 싶었던 나는 스콘에다 라즈베리 잼을 얹어 봤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라즈베리 잼으로 갈아탔다. 영원히. (여러분, 스콘에 딸기잼만 발라 드셨다면 라즈베리 잼 올려 보세요. 꼭이요.)



스콘과 관련한 마지막 논쟁은 발음에 관한 것이다.

Scone이라 쓰는 이 단어를 영국인들은 ‘skɒn’과 ‘skəʊn’의 두 가지 방식으로 발음한다. 처음 것은 ‘스껀’과 ‘스컨’의 중간쯤 느낌으로 짧게 끊어 하는 발음이고, 두 번째는 ‘스코운’이라고 살짝 더 길게 늘여 발음하는 것이다.

외국인인 나로서는 느낌이 잘 안 오는데, 영국인들에게 ‘스코운’은 약간 더 Posh 한 느낌인 것 같다. 좀 젠체하는, 있는 척하는, Snobbish 한, 닭살 돋는 것이랄까? 그에 비해 ‘스껀’은 좀 더 코크니 같은, 편한 느낌으로 다가가는 눈치다.

하지만 이 정도 미묘한 문화적 뉘앙스는 토종 영국인들 사이에서나 느낄 법한 차이일 뿐, 외국인인 나로서는 스껀이든 스코운이든 맛있으면 됐다(?)는 입장이다.



스콘과 관련해서는 플레인이냐 레이즌이냐, 데울 것이냐 말 것이냐 등 다른 이슈도 있지만 이제 이 정도로 넘어가 보자. 다음은, 티와 관련한 문제이다.

영국인들에게는 “우유를 언제 넣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 같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냐, 다즐링이냐, 얼그레이냐 이런 것은 뭐 그냥 ‘취향 따라’ 하면 되는 것이지만 티백을 건져내는 것과 우유를 넣는 시점 사이에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상당한 논쟁이 되고 있었다.

흠, 아주 가끔 티를 마시기는 해도 아직은 커피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저 논쟁에는 끼어들 자격이 없다. 언제가 됐든 찬 우유를 넣고 나면 좀 비려지는 느낌.


이렇게 상당히 많은 논쟁이 애프터눈 티(더 정확히 말하자면 애프터눈 티의 간단 버전인 크림 티)와 관련된 것은, 나른한 오후에 시간은 많고 친목을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이는 때라 그런 것 같다.





그 외에 대표적인 영국 음식 관련 논쟁들을 간단히 소개해 보면, 먼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와 관련해서 찍먹/부먹 논쟁처럼 “베이크드 빈을 따로 담을 것인가? 한 접시에 같이 담아 다 적셔 먹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선데이 로스트와 관련해서도 비슷하게 “그레이비 소스를 얼마나 질척하게 뿌릴 것인가? 특히 그중에서도 요크셔 푸딩을 얼마나 적실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피쉬 앤 칩스와 관련해서는 “몰트 비니거, 뿌릴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몰트 비니거는 맥아로 만든 식초인데, 뜨거운 피쉬 앤 칩스에 이걸 뿌리면 튀김옷은 좀 눅눅해지고 엄청나게 자극적인 식초 끓이는 냄새가 확 올라온다.

튀김에 식초라니, 처음 접하면 참 어색한 조합 같지만 영국에서는 모든 튀김 종류에 이걸 참 많이들 뿌려 먹는다. 대부분의 펍에서 케첩/마요보다 몰트 비니거를 더 필수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피쉬 바(포장이나 배달을 주로 하는, 우리나라 동네 치킨집 같은 곳)에서 주문을 하면 “비니거 뿌려 줄까?”를 항상 묻는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나 “뿌릴 것인가, 말 것인가”라고 고민할 뿐, 영국인들에게는 “언제 뿌릴 것인가?”의 문제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경험해 보니 먹기 직전에 뿌리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펍에서는 손님이 직접 뿌려 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에 구비해 두는 것이고, 피쉬 바에서는 나중에 뿌리는 것을 선호하나 싶어 항상 묻는 것 같다.






자, 이제부터는 TMI.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한 나의 ‘스코운’ 먹는 방식은 이런 것이다.

레이즌 스콘을 준비한다. 스콘은 데우지 않고 위아래로 나누어 슬라이스 한 다음, 먼저 아래쪽에 두껍게 클로티드 크림을 얹으면서 가운데를 살짝 옴폭 파이게 한다. 그리고 그 홈에 라즈베리 잼을 올린다. 스콘의 윗면을 덮고 냠냠, 먹는다. 나와 남편은 이걸 좋아하고, 우리 딸은 크림이 너무 많다며 좀 덜 두껍게 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스콘은 커피와 마시는 것이 제맛(?)이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베이크드 빈을 따로 작은 종지에 담아주는 식당이 좋다. 그리고 애초에 좀 덜 질척하게, 꾸덕하게 졸여낸 편을 선호한다. 그리고 선데이 로스트에 그레이비 소스는 요크셔 푸딩 위에 직접 뿌릴 수 있게 주는 것이 가장 좋다.


피쉬 앤 칩스는 갓 튀겨서 뜨거운 상태에서 살짝, 몰트 비니거를 뿌린다. 칩스(감자튀김)에는 말고 피쉬에만.


그리고 한국에서는 ‘짬뽕, 부먹, 물냉, 반반무많이’ 다.





음, 쓰다 보니 침이 고인다. 오늘은 금요일이니 피쉬앤칩스 먹기 참 좋겠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피쉬 바에 한 번 들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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