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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김 Feb 03. 2022

코로나를 대하는 영국인의 태도

잘 나가던 영국은 어쩌다 코로나 후진국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평화롭던 시간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의외의 계기로 깨지곤 한다.


주말을 앞둔 느긋한 금요일,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시작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걱정하던 것에 비해서는 아이가 잘 적응해 주는 것 같았다. 아이를 등교시킨 후 커피를 마시며 평화로운 시간을 잠시 즐기려는 찰나였다. 

학교 교장으로부터 메일이 한 통 왔다. 우리 아이 반에서 COVID-19 Positive case가 나왔다는 것이다. 


Oh, my goodness!


언젠가는 맞닥뜨릴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너무 이르잖아. 아직 우린 영국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교장선생님은 ‘원한다면’ 아이들이 검사를 받게 하고, 결과를 학교에 알려 달라고 했다. 학교는 그대로 수업을 진행할 것이며, 정부가 권고하는 방역 수칙도 지키고 소독도 잘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은 학교에 있는 시간 내내 거의 마스크도 쓰지 않는다. 아이들은 같이 떠들고 놀고 수업을 듣고 Snack과 Lunch를 먹는다. 

그런데 그중 한 아이가 확진이 되어도 나머지 아이들은 검사조차 필수가 아니라니! 정말이지 너무 쏘 쿨한 학교다. 


한국에서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작년에 같은 팀 초등학생 아들을 둔 워킹맘 동료의 케이스를 옆에서 지켜본 경험으로 예상해 보자면, 일단 누군가 확진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학교는 문을 닫고 아이들을 집에 보냈을 것이고, 대대적인 소독을 실시하고, 같은 반(심지어는 옆반) 아이들이 모두 필수적으로 PCR 검사를 받고, 적어도 며칠간 모든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이곳 영국에서는 학교뿐 아니라 부모들의 반응도 쿨하기 그지없다. 하굣길에 만난 같은 반 다른 엄마에게 코로나 이야길 꺼내 봤더니, 그저 "뭐, 그래. 또 생겼다고 하더라고. 근데 알다시피, 약하게 넘어가잖아. 우리 남편도 얼마 전에 걸렸었어. 다행히 Mild symptom으로 끝났지." 이러고 넘겼다.


영국 정부도 국민들에게 백신 접종을 권장하기는 하지만, 백신 패스 같은 것을 운영하지도 않을뿐더러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개인정보를 남겨야 하는 일도 없다. 개인의 동선을 국가가 관리하거나 체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은 정부의 백신 접종 정책에 반발하면서 시위를 하고 목소리를 낸다. 

만약 영국에서 한국처럼 모든 식당과 공공장소에서 QR체크를 하거나 동선을 공개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부분의 사람이 아마도 그런 규정은 지키지도 않겠지만, 애당초 도입하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반발에 부딪쳐 시행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를 대하는 영국인들의 이런 무심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코로나가 휩쓴 지난 2년, 대한민국은 한 단계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이 분명하게 한 단계 올라가는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초반 코로나 대응의 모범사례로 여러 선진국들 사이에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었고, 다른 선진국들 대비 훨씬 낮은 감염률과 치명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마스크 부족 상황에서 국가 의료 시스템을 활용한 마스크 판매, 사재기 없는 안정적인 생필품 공급, 정부의 정책을 대체로 믿고 따라 주었던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것을 ‘성숙’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한 번 고민해 봐야겠지만), 이를 통한 전면 락다운 사태 방지, 뒤늦게 시작했지만 비교적 높은 백신 접종률 등 여러 모범 사례가 있었다. 

또 우리나라는 UN 산하 UNCTAD로부터 ‘선진국’으로 지위가 인정받는 일이 있기도 했고(찾아보니 '21년 7월이다), 우리나라의 영화와 드라마가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우리나라 배우가 권위 있는 어워드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반면, 국제 뉴스에서 등장하는 영국과 관련된 뉴스는 온통 브렉시트로 인한 분열과 혼란, 어마어마한 코로나 감염 확산, 온갖 변이 바이러스가 가장 먼저 창궐하는 곳, 보건체계의 붕괴 위험과 락다운 소식, 이에 불응하는 시민들의 소요사태, 사재기로 인한 생필품 부족과 휘발유 공급 차질 등 온갖 부정적인 것뿐이었다. 

선진국의 대명사였던, 소위 말하는  신사의 나라 ‘영국’이, 이제는 혼란과 소요의 대명사가 된 것만 같았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아래 내용들은 짧은 영국 경험 및 영국 생활을 준비하면서 본 관련된 책이나 자료를 통한 나만의 해석이다.


영국은 ‘영국’이라고 불릴 만한 역사가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그들의 영토인 Great Britain 섬을 빼앗겨 본 적이 없다. 이들은 그 부모의 할머니의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어머니 시절에도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왔다.

물론 그것은 이들의 유능함 때문이 아니라 상당 부분 섬나라라는 지리적 이점에 힘입은 바 크지만, 하여튼 이들은 이런 천혜의 지리적 조건과 이로 말미암은 역사적 배경 때문에 생존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이 나라는 16세기 이후의 근현대에 걸쳐 수많은 전쟁에 관여했고 1차 대전이나 2차 대전처럼 때로는 국가 역량을 총동원한 전면전도 수행했지만, 한 번도 이 영국 땅 위에서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물론 테러나 소규모 독립전쟁, 국지적 공습 같은 것은 예외다.)


반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삶의 터전이 폭삭 무너져 내리고 생명이 위협당하는 경험은 아직 한 세기가 채 지나지 않은 살아 있는 역사이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6.25를 직접 겪어내셨고, 나의 부모는 전쟁 직후 태어나 독재정부 하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1980년대에 태어난 나보다 더 젊은 친구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국가가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전쟁의 기억은 아직도 많은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혹은 1~2세대 안에 가까이 살아 있는 역사이다.


그러다 보니, 영국인들이 갖고 있는 국가에 대한 원형적인 관념은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개념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애국심’이라는 것은, 흔히 외세의 침략에 맞서 반만 년 유구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지키거나, 공산주의 적화 세력에 죽음을 불사하여 대항하는 것이 아니던가. 

또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5대 국경일은 직접적으로 외세의 침입에 저항하거나 거기에서 해방된 날(광복절, 3.1절)이거나, 우리 민족만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날(한글날, 제헌절, 개천절)이 아닌가. 


그렇다면, 영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국경일은 무엇일까? 

재미있게도, 영국에는 국경일이 없다. 한 번도 외세의 침입을 받아 본 적이 없고, 국가 존재가 위태로운 상황까지 내몰린 적이 없고, 그 정도로 국민들이 단결해야 할 계기가 없었던 이 축복받은 나라는,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기뻐하며 기념할 만한 국가적인 날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에도 전 국민이 쉬는 '공휴일'은 있다. 새해 첫날/크리스마스/부활절 등 크리스트교와 관련된 휴일과 은행들이 일괄적으로 쉬어 공무를 보기 어려운 Bank holiday들이 국가 공휴일이다.) 


다만 이들에게도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엄숙해지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11월 11일에 있는 ‘Remembrance day’ 다. 이 즈음 영국인들은 거의 한 달 내내 빨간 양귀비꽃 모양 뱃지를 달고 1차, 2차 대전에서 희생당한 군인들을 애도하고 감사하는 기간을 가진다. 

참고로 빨간 양귀비는 유명한 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데, 큰 전투가 있었던 전장에서 많은 시간이 흐른 후, 흐드러지게 핀 빨간 Poppy를 보고 감명받아 쓴 시라고 한다. 많은 영미권 국가에서 빨간 양귀비꽃의 의미가 동일하게 통용된다. 


하지만 우리의 현충일과는 다르게, 이들의 Remembrance day는 공휴일이 아니다. 

우리의 남편과 아들들이 전쟁에 참전하여 죽어 나갔다는 점은 같아도, 바다 건너 이국 땅에서 벌어지는 라디오로 듣는 전쟁과, 눈앞에서 내 삶의 터전이 모조리 파괴되고 모든 국민들이 예외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는 것은 그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들이 국가적인 기념일에 갖는 감정 또한 우리와 다르다. 

이들이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은, 나치의 도전에 맞서 Western World의 가장 빛나는 가치인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자긍심’이다. 

영국인들에게는 ‘자유 민주주의’라는 서구 세계의 가장 발전된 방식의 정치체계를 가장 먼저 발명하고 정착시켰다는 자부심과, 이를 전복시킬 수 있었던 현대사의 각종 위협(나치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에 맞서 이를 지켜냈다는 자긍심이 어마어마하다. 

이 자긍심은 왕실 인사들이나 사회 지도층을 이루는 귀족 계층부터 못 배우고 가난한 Working Class까지 모든 영국인이 공유한 것이며 그들의 정체성 그 자체이고, 정부도 국민도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성스러운 영역이다. 



이 자유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인가? 

모든 개인은 (타인의 생명과 재산에 해를 가하지 않는 한) 생명과 재산을 지킬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삶의 방식을 결정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더없이 개인주의적이고, 타인의 삶의 방식을 터치하지 않으며 나의 삶의 방식도 간섭받지 않기를 원한다. 다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결과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이 나라 사람들은 스스로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는 전면적이며 강압적인 방역 조치, 전면 락다운 같은 사태에 대한 반발심이 엄청나다. 또한 총리나 정부도 웬만한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니고서는, 감히 ‘자유’라는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정책을 몰아붙이지 못한다. 

그 결과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바로 하루 40만 명(!)이라는 확진자 수, 알파/베타/델타 변이부터 오미크론까지 온갖 변이 바이러스가 가장 먼저 창궐하는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스크는 대충 내킬 때만 쓰면서 툭하면 시위를 하는 국민들, 계속 완화하는 방역조치, (독일 같은) 주변국들의 불만 등인 것이다.



여하튼, 이런 곳에서 아이와 같은 반 친구가 확진되었다고 하는 이 상황에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우선은 NHS(국립의료시스템)에서 자가진단키트를 신청해 두고, GP(보건소) 등록을 서둘러 진행하고, 아이에게 수업시간에도 가능한 한 마스크를 쓰라고 주의를 준 다음 일단은 학교를 계속 보내기로 했다. 


과연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한숨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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