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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LC Press Feb 23. 2021

[트라우마의 경관 #1] 여는 글

손은신 / thegracee@gmail.com



1980년대, 프랑스의 사학자인 피에르 노라(Pierre Nora)가 많은 사학자들을 모아 집대성한 총서 『기억의 장소(Les Lieux de Mémoire)』에 따르면, 근대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역사의 가속(acceleration of history)”과 이에 따른 역사와 사람들의 기억 간의 단절, 즉 “기억의 상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기억의 장소”들이 형성되었다.[1] 그리고 2000년대, 노라의 연구에 영향을 받은 독일의 학자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은 점차 사라져 가는 경험 기억이 “문화 기억(cultural memory)”으로 번역되어 저장되는 매체로서 기억의 공간에 주목하였다.[2]


아스만의 연구는 노라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어떤 지점에서 분명히 구분되는 특징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아스만의 사례 대상지인 독일의 장소들의 경우 노라의 관점으로는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노라는 근대화로 인한 급속한 변화 및 쇠퇴에 주목했으며 전통의 단절과 역사주의라는 패러다임으로 기억의 장소를 다루었는데, 이는 프랑스를 대상으로 한 민족학 계열의 연구다. 그러나 독일의 기억의 장소들 중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나치에 의한 유태인 및 유럽인의 집단 학살, 즉 홀로코스트(holocaust)라는 범죄와 관련된 장소들은 기억의 상실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3] 즉, 홀로코스트와 같이 잊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기억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거나 직접 체험하거나 피해자가 이를 설명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만큼 폭력적인 기억으로서 ‘트라우마 기억’을 간직한 독일의 기억의 장소들은 노라가 언급한 것처럼 근대화로 인한 전통의 단절 혹은 기억의 망각을 막기 위한 장소라는 관점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보여주는 가장 널리 알려진 장소로 폴란드 남부의 아우슈비츠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Aushwitz-Birkenau German Nazi Concentration and Extermination Camp)를 들 수 있다. 이 곳에는 1940-1945년에 유대인과 폴란드인, 구 소련 포로 등 400만 명이 수용되었으며 이 중 유대인 희생자는 약 150만 명으로, 이들은 강제수용소에서 체계적으로 굶주림과 고문을 당한 뒤 살해당한 것으로[4] 알려져 있다. 아우슈비츠에 대하여 20세기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1949년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5] 라고 썼는데, 그의 이 유명한 인용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당시 독일의 예술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당시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홀로코스트를 직접 다룬 소설이나 연극, 영화는 거의 전무하였는데, 기쁨과 미를 주로 표현하던 예술 분야에서 다루기에 홀로코스트는 지나치게 야만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이를 표현하기에 무리였다고 판단한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6] 기억의 공간을 만드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는데, 박물관과 기념관 등은 대체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독일의 예술가 및 설계가들이 홀로코스트를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와 메모리얼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80-1990년대였는데, 당시 이들이 마주한 가장 큰 딜레마이자 회의론자들이 가장 비판적으로 지적한 점은 메모리얼과 추모를 통한 가해자의 구원(redemption)에 대한 우려였다.[7] ‘구원’에 대한 우려는 예술 행위와 추모 공간이 과거 역사의 과실을 극복하고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될지도 모른다는 비판에서 출발했는데, 이 지점에서 트라우마 경관이 지닌 양가적 성격을 살펴볼 수 있다. 트라우마 경관의 기억은 추모를 통해 보상되고 회복되어야 하는 기억인 동시에, 역사적으로 잊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보존되고 전달되어야 하는 기억인 셈이다. 즉, 트라우마 기억은 극복되어야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기억인 것이다. 


트라우마 기억이란 무엇인가? 20세기 초 정신과 의사 피에르 자네(Pierre Janet)는 인간의 기억을 습관적 기억, 내러티브 기억, 트라우마 기억으로 분류했다.[8] 습관적 기억은 몸에 체화된 기억을, 내러티브 기억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의미의 기억으로서 경험을 통해 얻어지며 의미를 생성하는 기억을 지칭하는 반면, 트라우마 기억은 극도로 충격적인 체험이 무의식에 고착된 기억으로 내러티브 기억과 대비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피에르 자네의 동료이자 20세기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트라우마 기억은 무의식에까지 저장되어 시시때때로 생생한 광경 그 자체로 재연되며, 지속적인 삶의 위협에 직면하게 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9] 


이처럼 트라우마 기억은 개인에게 큰 심리적 손상을 가져올 수 있는 기억이다. 그렇다면 도시 공간으로, 경관에 옮겨진 트라우마 기억은 어떠한가? 우리는 이미 트라우마 기억이 저장된 여러 도시 공간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일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Denkmal fu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과 유태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뉴욕의 9.11 메모리얼(9.11 Memorial and Museum), 일본의 고베 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 등이 널리 알려진 사례들이다. 한국에도 트라우마 경관의 사례가 있다. 서울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남영동 대공분실은 일제 강점기와 민주화 시기 아픔의 역사와 기억을 담은 대표적 공간이며,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조성된 여러 세월호 추모 공간 또한 트라우마 경관의 사례에 속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구성하고자 한다. 먼저 도시 공간에 옮겨지고 저장된 트라우마 기억은 어떻게 트라우마 손상으로 인한 위협을 완화하며, 장소에 저장된 트라우마 기억은 어떻게 잊히지 않고 지속되면서도 정서적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탐색한다. 중반부에서는 실제 공간 사례들을 통해 경관에서 트라우마 기억이 어떻게 경험되고 인식되는지를 검토한다. 마지막으로는 트라우마 경관 논의 시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는 비판적 지점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는 개념과 연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Pierre Nora. and others, Les Lieux de memoire. 1. Le Republique, Paris: Gallimard. 1984. 김인중 옮김, 피에르 노라 외. “기억과 역사 사이에서: 기억의 장소들에 관한 문제제기,” 기억의 장소. 1. 공화국, 파주: 나남, 2010, 31-67쪽.

[2] Aleida Assmann, Erinnerungsraume: Fromen und Wandlungen des kulturellen Gedachtnisses, 4th ed. C. H. Beck oHG, 2009. 변학수․채연숙 옮김, 기억의 공간, 서울: 그린비, 2011. 15쪽.

[3] 위의 책, 468쪽.

[4]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홈페이지, 유네스코와 유산,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독일 나치 강제 수용소 및 집단 학살 수용소(1940~1945)”

[5] Theodor W. Adorno, “Cultural Criticism and Society.” Prisms, 17–34. Cambridge, MA: MIT Press. 1983. 34쪽.

[6] Ian Buruma, The Wages of Guilt: Memories of War in Germany and Japan, London: Jonathan Cape;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1994. 정용환 옮김, 이안 부루마,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독일인과 일본인의 전쟁 기억, 서울: 한겨레신문사. 2002. 105쪽.

[7] James E. Young, The Stages of Memory: Reflections on Memorial Art, Loss, and the Spaces Between, Amherst: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2016. 6쪽.

[8] 전진성, “서론: 트라우마의 귀환,” 전진성․이재원 엮음, 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 서울: 휴머니스트, 2009. 24쪽.

[9] Sigmund Freud,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박찬부 옮김, 지그문트 프로이트, 쾌락 원칙을 넘어서. 서울: 열린책들, 1997. (전진성, 위의 책, 24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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