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여든 이후, 삶이 이야기가 되다

4. 용선씨 이야기(3)

by 유정인

취미 활동으로 건강을 지키다


그녀의 하루는 배움으로 시작한다. 복지관에서 열리는 인문학 강좌와 한국사 강의를 듣는 시간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보다, 세상과의 소통이고 이웃과의 만남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여가 및 취미 활동을 제공하는 복지센터는 노후 생활의 질을 크게 높일 수 있는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용선씨에게 배우는 시간만큼이나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춤’봉사활동이다.

‘우리춤’은 한국의 전통적인 춤 동작을 바탕으로 개발된 노인 건강 운동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체조나 서양식 피트니스와 다르다. 이 춤은 몸의 리듬뿐 아니라 마음의 맥박까지 건드린다. 느린 곡선의 움직임 안에 숨은 전통의 결이 있고, 반복되는 동작 속에 고요한 집중이 있다. 이것은 정서 영역뿐만 아니라 인지 영역에서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노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함께 고려한 한국적인 건강 운동의 필요성에서 ‘우리춤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운동이 아니라, 감정을 따라 움직이고 기억을 되살리는 춤. 이 춤은 단순한 운동 그 이상이다. 리듬에 마음을 싣고 박자와 몸동작을 기억하여 맞추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몸의 건강은 물론 정서적 안정, 인지 기능의 자극까지 통합적으로 이끌어 준다.

이 춤과의 인연은, 그녀가 나이가 들면서 무뎌지고 약해지는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건강을 지탱하는 힘이자 삶의 활력을 일깨우는 숨결이다.

“춤을 추는 그 순간에는, 내가 살아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껴요. 지금, 이 나이에요.

전통 춤사위를 기본으로 하되 신체적인 향상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는 창작무를 보급하는 이지연 선생님과의

만남이 봉사활동을 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선생님은 춤사위 하나, 손짓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도록 지도해서

기본동작과 정신을 일깨워 주어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동작을 하며 기초 체력이 향상되고 부채, 수건, 꽃

바구니 등 간단한 도구를 활용하여 재미있게 하지요. 느리고 부드러운 동작을 하기에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

아서 좋고, 전통 장단에 맞춰 움직이면 모든 잡념이 사라져서 좋아요.”


우리 춤과 더불어 피어나다


그녀가 속한 봉사단은 노인복지관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며 형성된 팀이다. 그들은 취미생활로 출발한 팀으로, 우리춤이 좋아 지속해서 취미생활을 유지하다 보니 무용단이 구성되어 자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단원 일곱 명 중 여섯 명이 여든을 넘긴 나이로, 10여 년 세월을 함께 호흡하며 봉사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취미와 봉사활동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녀의 언어이며, 그녀가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다.

해마다 경연에도 참여하며 다양한 수상을 했고, 무엇보다 매달 빠지지 않고 요양원과 경로당, 양로원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전통의 가락과 우리춤을 선보이면, 관객들은 어느새 따라 웃고, 어깨 춤추며 함께 젖어 들었다. 무대는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만큼은 크고 환했다.

"우리 이 나이에 어디 가면 이렇게 귀하단 소리 듣겠어요. 근데 우리는 여기서 배우고, 춤추고, 나누잖아요.

그게 복이에요."


단원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늘 새로움을 향해 가는 마음, 열심히 배우는 자세, 그리고 타인을 향한 손길을 멈추지 않는 삶의 태도. 춤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행위는 단지 신체기능의 활성화에 그치지 않았다. 온몸으로 구성하는 춤은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뇌를 자극했다. 전통은 그렇게 몸으로 새겨지고, 삶의 한가운데서 다시 피어난다. 각자의 이야기가 녹아든 몸짓은 창조의 행위였고, 그 안에서 자율성과 공동체 의식은 더 깊어졌다. 고요한 일상 속, 봉사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은 오랜 기간 배움으로, 나눔으로, 창조로 엮어나갔다. 춤은 그들에게 상실을 이겨내는 방편이자, 봉사활동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다. 이들이 나누는 웃음과 땀방울, 그리고 무대 위의 진지한 모습은 ‘나이 들어 즐겁게 춤추며 봉사하며 살아가는 활기’보여준다.


노화의 진행 과정에서 겪는 주요한 전환기 또는 위기를 설명할 때 ‘세 번의 노화 경험’을 말한다. 이 개념은 노년기의 심리·사회적 변화 과정을 통합적으로 설명한다. 세 단계는 단절적이기보다는 연속적인 전환이며, 각 시기에는 신체적 변화뿐 아니라 심리적·정체성·사회적 역할 변화가 동반된다. 1차 노화는 신체적 변화의 시작이라면, 2차는 사회적 전환기의 충격, 3차는 존재적 통합과 죽음 수용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는 토른스탐의 노년초월(Gerotranscendence), 에릭슨의 후기 발달단계, 레빈슨의 생애구조 이론 등을 아우르는 통합적 발달 모델이다.



용선씨의 이야기로 본 3차 노화의 의미


여든 이후, 그녀는 몸의 변화를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예전 같지 않다”라는 감각은 손끝과 관절에서 먼저 신호를 보냈다. 노화는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지 않는다. 그녀는 서서히 몸과 마음이 조금씩 변화해가는 그 모든 과정을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인다. 여든 이후는, 바로 이처럼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시간’이다. 소소한 낙상, 균형을 잃은 순간의 무력감, 회복이 더딘 근육들. 몸이 보내오는 느린 답장은 때때로 서글픔을 느꼈지만, 그보다 더 큰 힘은 함께 하는 이들과의 웃음이었다. 서로의 변화와 아픔을 공유하며 건네는 위로와 지지가, 낯선 노화를 견딜만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느 날, 그녀는 집안에서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주저앉았다. 허리와 고관절에 깊은 통증이 남았고, 그 이후로 그녀는 더욱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해도 ‘중한 병이 아니면 혼자 다 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그녀는 일에 바쁜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자식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곧 자기 삶을 스스로 끝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남편과의 이별 후, 용선씨는 가끔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저세상에서도, 남편은 분명히 제가 재미있게 살다 오기를 바랄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배움을 즐기고, 배움을 봉사로 잇고, 삶의 리듬을 스스로 지키고 가꿔 간다. 지금의 그녀는 마치 오래된 필름을 찬찬히 편집하듯, 자신의 생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나가는 중이다. 그 끝자락에, 남편이 마지막으로 남긴 “사랑한다”는 말에 화답하듯, “재미있게 살다 간다”라는 그녀 삶의 무늬가 잔잔히 그려지고 있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저는 계속 춤출 거예요. 그게 제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이니까요.”

무대에 서기 전, 그녀는 천천히 매무새를 고친다. 소중한 것은, 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어르신들, 그리고 “고마워요”라는 한마디였다. 우리춤은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견디게 한, 마음의 언어요, 공동체 안에서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누군가에게 이 시간이 위로가 된다면, 그걸로 제 인생은 충분히 고마운 거예요.”

음악이 흐르면,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들고, 두 팔을 천천히 연다. 그 몸짓 속에서, 세월도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춤추는 노년의 몸에 실린 시간은 어쩌면, 조용히 익어가며 흐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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