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남은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려는 의지
4. 남은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려는 의지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도종환, '담쟁이' 중 일부-
죽음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거울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죽음을 향해갑니다. 삶은 유한하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우리를 지금 여기에 묶어두고, 또 동시에 저 너머를 사유하게 만듭니다. 여든 이후의 시간은, 인생이라는 무대의 막이 서서히 내려오는 그 마지막 장과도 같습니다. 빛은 희미해지고, 조용히 울리는 현악의 여운 속에서 그들은 묻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까?”
죽음이 더 이상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기에, 그들은 오히려 삶을 더욱 또렷이 바라봅니다. 쇠약해지는 몸, 반복되는 병원 방문, 떠나간 벗들의 이름이 점점 늘어가지만, 그 모든 체험이 바로 ‘살아 있음’의 징표가 됩니다.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지금 순간의 빛을 한층 더 선명하게 비추는 일입니다. 삶은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오히려 그 본질의 색을 되찾습니다.
청자씨는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안부를 나눕니다. 그녀의 하루는 작지만 반짝이는 기쁨들로 채워집니다. 차 한 잔의 온기, 이웃의 짧은 인사, 창가의 햇살 한 줄기.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이미 품은 삶이야말로 가장 고요하고 가장 충만하다는 것을.
학산씨는 병으로 삶의 궤도를 바꾼 뒤, 자연의 숨결 속에서 자기의 무늬를 새로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무의 고요한 성장에서, 물의 흐름에서, 자기 남은 생을 보는 듯했습니다. 삶은 더디지만, 여전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자기 방식의 무늬를 직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수씨는 암을 두 차례나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결코 절망의 기색이 없습니다. “지금의 나로 끝까지 살다 가고 싶습니다.” 남겨진 시간이 소중하기에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영미씨는 자신의 통증과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삶의 매 순간을 선물처럼 여깁니다. 그녀는 매일 말합니다. “오늘은 죽음을 준비하는 날이지만, 그건 삶을 가장 충실히 사는 날이에요.”
그들의 봉사활동은 죽음을 준비하는 덕행으로, 삶을 사랑하는 가장 강렬한 방식이었습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존재의 본향으로 돌아가는 길, 천국으로 귀환(歸還)입니다.
정자씨는 병든 남편을 홀로 돌보며,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서 조용히 서 일상을 완수합니다. 환자임에도 그녀는 하루를 성실히 살며 마지막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고, 그 단정한 자세 속에서 삶과 죽음을 완성하는 방법, ‘지금 여기에 충실히 사는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위협이 아니라 스승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의 강물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죽음이 가까울수록 그들은 더 단단히, 더 따뜻하게 지금을 껴안았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Kübler-Ross, 2006)는 말합니다. “죽음은 성장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마지막 단계다.” 그리고 이치로(Ichiro, 2015)는 덧붙입니다. “죽음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완성하는 마지막 기회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다는 것은 종말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를 완성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이제 압니다 - 삶이란 ‘얼마나 오래’가 아니라 ‘어떻게 충실히’의 문제임을. 여든 이후의 시간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사랑과 연결, 나눔의 흔적으로 세상에 자취를 남기는 일입니다. 그것은 담쟁이의 길 - 절망의 벽 앞에서도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