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_리무 고도근시안경
소연이는 봄이 좋다고 했다.
아마 그건 공무원 연하남을 만나고 있어서 마음이 살랑살랑해서 그런걸껄?라고 덧붙여 말하진 않았다. 네가 봄이라는데 괜히 내가 그래 식목일인데 우린 나무 한그루도 심지 못했다. 옛날이었으면 휴일이었는데 그치? 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너는 꽃밭인데 나는 아직 버석해서 미안했다. 모르겠다. 요즘 난 그냥 이 시기가 모든지 다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건조한 말만 자꾸 쩍 갈라진 입술 사이로 돌멩이 마냥 튀어나오고 얇은 눈가는 너무 건조해서 숏폼의 아무 감동 영상이라도 찾아보고 인스턴트 눈물이라도 간절히 필요할 지경이야.라고도 덧붙여 말하지 않았다.
그냥 실없는 나이 얘기나 떼구루루 내뱉었다. 아무도 감흥 없을 그런 얘기.
"나 어제 친구한테 끌려 나와서 걔 졸업한 학교 가서 외부인 출입금지 불가인데 대학생인 척하고 들어갔다 왔잖아~ 자기네 학교에 1억짜리 벚꽃나무를 보러 가재나 뭐래나~ 친구가 나보고 넌 등만 봐도 피곤한 대학원생 같아서 출입 괜찮다고 그랬다? 큭큭. 하긴 맞는 말인 게 불과 몇 년 전인데도 20살은 너무 생기가 넘치고 어리더라고 흑흑."
버석한 낙엽과 같은 주저리들을 흘렸고 소연이는 그걸 잘도 피해 총총 뛰어갔다.
"야~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제일 어릴 때야~"
아 요즘 왜 이렇게 분위기 초치는 말을 눈치 없는 곰탱이처럼 나불댈까. 나는 버석해진 내가 꽤나 우울했다. 곰탱이도 털에 윤기가 흘러야 다큐에 나오는 법인데 기름기가 말라버린 나라는 버석한 곰탱이는 당장이라도 동물농장 긴급구호를 기다릴법한 곰탱이었다.
꽃밭의 소연이는 꿀처럼 마음 촉촉한 말을 예쁘게도 내뱉었다. 네가 그래서 연애를 하나보다. 그녀의 잠깐의 수분은 버석한 나에게 금방 기화돼서 날아갔다. 벚꽃이 이쁜 지도 뭔지도 난 모르겠다. 난 그냥 피어난 모든 것들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싫다는 마음도 안 들어서 이거 꽤나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초조하지도 않고 곰탱이처럼 벚꽃이 뭐 벚꽃이지 뭐니 내년에도 어차피 와.
꽃을 보러 동네 앞산을 가자는 혜원의 꼬임도 나는 별 감흥이 들지 않았다. 산을 왜 정복하려 드니... 친구의 마음에 괜히 건조한 미세먼지를 한 줌 던진 것 같았다.
사실 너희 마음속의 봄바람은 나에게는 그저 건조해 미칠 것 같은 바람일 뿐이야. 그러니까 그만 나가서 놀자고 그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목구멍을 맥주 500으로 꽉 틀어막았다. 대신 난 그냥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소연이의 남자친구 연애담 버튼을 돌려보기나 했다. 가습기처럼 turn ON.
퐁퐁 핑크빛 가습기가 효과가 있는 건가 맥주 500이 효과가 있는 걸까. 미련 곰탱이는 이런 걸 그다지 구분하지 못하는 편이다. 내 안이 고였는지 메말랐는지 구별하려 노력하다가 결국 올해 봄은 다 갔다.
벚꽃도 갔고
개나리도 갔고
진달래도 갔고
목련도 갔다.
나는 소연이와 혜원이처럼 마음에 드는 꽃이름을 골라 꽃놀이 장소를 설레며 찾아가 본 적이 있나? 아니. 그전에 꽃시절들은 다 가고 말았다. 이제 여름이 온다. 여름 가고 가을 온다 가을 가고 겨울 올 거라는 매미의 경고음이 짜증의 데시벨을 울릴 것이다. 미련 곰탱이는 그때야 알아채려나. 내 마음 수분 측정도를 관찰하기 전에 이미 좋은 시절 다 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