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_리무 고도근시안경
네모의 꿈은 1996년에 나온 노래라고 한다. 이 노래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부르던 당시 어린이들 중,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라는 가사에 충실한 삶을 사는 이는 과연 몇 있을까. 아마 동그란 접시에 탐스럽게 담겨 나온 둥그런 참깨 베이글을 식전 기도보다 먼저 네모난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네모난 인생샷을 찍고 네모난 SNS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느라 둥글 넓적한 엄지손가락을 열심히 놀리고 있을 것이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말도 있다던데 먹기 전에 인생샷, 기도하기 전에 인생샷, 사랑하는 모습까지도 인생샷을 남긴다. 그리고 아예 네모난 상자에 들어가 인생샷 네 장을 연달아 찍는다.
이쯤 되면 사실 인생은, 아니 지구는 네모라는 설이 참이 아닐까도 싶다.
이처럼 무수한 참을 쌓아 올린 네모의 꿈을 어느 날은 문득 자각몽으로 인지할 때가 있다. 우리는 이를 허물어 버리려 무진장 애를 쓴다. 발을 구르고 맨살을 꼬집어봐도 네모의 꿈은 그간 견고히 쌓아 올려진 탓인지 쉽게 밖을 내어주지 않는다.
이럴 때 특효약은 바로 ‘여행’과 ‘상상’이다. 여행은 값이 든다. 상상은 값이 들지 않는다. 값도 안 드는데 심지어 무한하다.
하지만 상상의 약효 시간은 용기의 소비량과 비례하다. 길고 무한한 만큼 용기를 앗아간다는 부작용이 있다. 그 부작용의 사례를 들자면 ‘월터’라는 뉴욕에 사는 한 남자를 들 수 있다. 월터는 ‘라이프’ 잡지사의 16년 경력, 네거티브 필름 관리자이다. 한마디로 그는 16년 동안 온 만물의 인생샷을 감별해왔다.
“특별한 사람이 돼서 특별한 일을 하는 게 꿈”이었던 그는 만물의 특별함이 담긴 무수한 인생샷들에 치인 탓인지, 반짝반짝 왁스 칠을 먹인 스케이트보드 같았던 자신의 인생 모토가 이제는 그저 그런 다락방 한구석에 방치된 널빤지 같은 것이라 여긴다.
가끔 그 널빤지가 안쓰러워질 때면 월터는 얼른 ‘상상’이라는 특효약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너무 남용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어느 날, 자신이 몸담던 ‘라이프’ 잡지사의 폐간을 앞두고 마지막 표지를 장식할 ‘25번째 필름’을 분실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당장 이를 찾지 못하게 된다면 그는 ‘라이프’에서 내쳐질 것이다.
‘라이프’의 마지막 표지가 인생의 어떤 마지막으로 와닿았던 걸까. 상상을 들이켤 시간도 없이 일단 몸부터 내던져본 그는 어느새 삶의 용기가 아이슬란드 활화산처럼 폭발함을 느낀다. 또 하나 그는 느낀다. 나를 온전히 내던진 삶은 그간 들이켰던 상상 속의 삶보다 생생하다. 이를 마주한 내 두 눈동자는 히말라야 설산보다 푸르다.
이것이 참이다. 나는 참이었다. 삶은 나였으며, 인생도 곧 나다.
뉴욕부터 숨이 차게 찾아 헤매던 그 ‘25번째 필름’이 곧 나 자신이었음을 깨달은 순간 월터, 그리고 우리는 감히 프레임을 들이밀 수 없다. 그저 눈동자에 맺힌 지독히도 푸르른 그 어떤 상을 오랫동안 고요히 바라볼 뿐이다.
히말라야를 품은 나라 네팔에는 이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스와얌부나트 사원’이 있다. 사원의 꼭대기에 자리한 황금빛 석탑, 스투파에는 ‘지혜의 눈’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그 눈은 “스스로 존재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이천년 동안 스스로 존재해온 그것을 제 눈으로 마주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은 오늘도 385개의 계단을 오른다. 허리춤에 특효약 두어 병을 대롱대롱 매달은 채.
그들은 지혜의 눈을 마주한 그날 저녁, 무엇을 되새기며 낯선 곳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할까. 여행에서 건진 인생샷을 정리하려나 아니면, 상상 속에서 그리던 곳을 드디어 만났음에 경의를 베개 삼아 품으며 잠이 들려나.
분명한 것은 그들 또한 참을 마주했다는 것. 무수한 이들이 쌓아 올린 황금빛 참을.
하루의 시작 전 들러 기도를 드리는 네팔인들의 일상, 트레킹의 안전을 기원하는 어느 사진작가의 일주일,
요란함 속 평화에 감명 깊어 한 달 살기를 결심하는 푸른 눈의 서양인, 이곳의 단 며칠 기억으로 일 년을 살아가는 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직장인.
그 황금빛 참은 이 모든 이들의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들이 쌓여 천년이 넘는 세월을 스스로 존재해온 것이다.
그리고 385번째 계단을 다 올라 헉헉 숨이 차오른 또 다른 ‘월터’가 고개를 들어 드디어 자신을 마주할 때,
그들의 삶이 담긴 푸르른 눈동자로 지긋이 눈인사를 건넬 것이다.
“나마스떼, 삶의 정수를 찾아 헤맨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