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와 매복사랑니

영화 <파묘>_리무 고도근시안경

by 리무

리무 고도근시안경

그렇다. 파묘 3번 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다. 남들이 들으면 놀란다지. 근데 나도 3번 볼 줄은 몰랐다.

그 이유는 내가 어떤 배우를 파서도 아니고, 덕질 포인트를 파서도 아니고, 장재현 감독 영화를 파서는... 그건 좀 파는 것 같다. 인정.


그냥 어쩌다 보니 같이 보게 된 이들이 3팀이나 나뉘었다. 상대가 보고 싶어 하는데 내가 이미 봤다고 하면

그 상대가 얼마나 서운해하겠나. 난 고작 공감형 인간이란 쓰잘데기 없는 이유로 파묘를 3번 봤다.


한번 볼 때는 겨울이라 얼어있던 공포라디오 매니아의 도파민을 깨어 내고자 보았다. 두 번 볼 때는 독도는 우리 땅을 속으로 삼세창 외치며 보았다. 세 번째로 볼 때는 약속 3시간 전에 매복사랑니를 무려 동시에 두 개나 발치한 나라와 보았다. 나라는 왼쪽 매복 사랑니가 뒤틀려 박혀 있었어서 그걸 깨 부수어 꺼내느라 의사도 나라도 애를 썼다고 한다. 의사는 나라에게 "오 이름이 나라~ 애국자네요?"라고 시답지 않은 농을 건네었다고 한다.


나라는 사실 영화 약속 일주일 전에 도쿄를 다녀왔다. 지독히도 일에 시달리다 퇴사기념으로 다녀온 곳이었는데 텅 비어버린 매복사랑니 발치 자리를 이미 피가 흥건하게 젖은 거즈로 앙 다물어 지혈하면서 어떤 죄책감이 살짝 적셔 들었다고 한다.


나라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피가 고인 거즈를 내뱉고 입을 헹구어 내느라 한참을 화장실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 사이에 화장실 문 앞에서 나는 나라에게 내가 이 영화를 3번 봤다고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수십 번 했다. 왜냐면 나라랑 제일 먼저 파묘를 보기로 약속을 1월에 했었거든.


두 번째라고 구라를 쳤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찝찝함과 죄책감을 내내 달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나라의 매복사랑니 발치기를 푸라닭을 조심조심 씹으며 들었다. 공감형 인간이라 그녀의 컨디션 템포에 맞춰 씹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그녀는 치킨을 잘 씹어 먹었다.


듣다 보니 나의 3년 전 사랑니 발치기가 떠올랐다. 왼편 아래 매복사랑니를 뽑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심히 뒤틀려 있어서 신경을 누르고 음식물이 쌓여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뽑지 않으면 옆의 멀쩡한 어금니까지 썩을 수 있고, 또 잘못 뽑으면 턱 신경을 건드려 당분간 미약한 마비 증상이 올 수도 있다 했다. 그리고 나머지 멀쩡하게 박혀있는 윗 사랑니는 후에 어금니로도 사용이 가능하지만 내버려두면 아래 잇몸을 누를 수도 있다고 했다. 의사는 나보고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다.


치과베드에 누워서 강렬한 조명 아래 나는 겁나게 쫄렸다.


'어쩌란 거야. 그래서 뽑으란 거야, 말라는 거야. 당장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어떡해 간호사님이 기다리고 있어... 뽑아? 말아? 다음에 오겠다고 해...???'


난 간호사님의 너의 대답이 3초 이내로 튀어나왔으면 좋겠다는 눈동자를 발견하고, 바로 답했다.


"뽑을게요!"


의사는 거의 내 턱에 매달려서 매복사랑니를 발치하는데 오후 진료에 쓰셔야 할 남은 힘을 다 쏟았다. 아니 팔근육이 약간은 모자라셨는지 약간 더 젊은 부원장과 바통 터치해서 뽑았다


확실히 뽑고 나니 개운하긴 하더라.


뽑기는 힘들고 당장은 어떤 찝찝함이 고여 있어도 금방 차오르더라고 피도 하루 지나면 거의 안 나고... 매복사랑니 선배와 후배는 화림이의 소금대신 나트륨 폭발인 반반치킨을 열심히 씹어 먹어댔다. 나라의 퇴사 이후 계획과 나의 백수 무계획은 반반치킨 맛과 적절히 어울렸다. 오늘 본 파묘와 우리의 뽑혀 나간 매복사랑니도 뭔가 오묘하게 어울린다는 찰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니의 은어 대신 치킨무도 서로 남은 어금니로 오도독오도독 씹어가며 남의 뒷담도 열심히 해댔다.


나라는 내 방에서 부어오른 잇몸으로 막차가 끊기기 직전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겨우 막차에 올라 나에게 오늘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다음에는 야채곱창을 먹으러 오겠다고 했다. 쟤 입에서 오늘 재밌었다는 말은 처음 듣는 것 같은데? 뭔가 좀 개운하고 뿌듯한 기분.


구멍 난 건 시간이 걸려도 차오르는 것 같다. 나라와 내 매복사랑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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