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복싱

쌀집막내

by ullia

여기부터 저기까지가 다 누구네 땅이여

부자도 삼대를 못 간 데잖아

예전에는 그런 말을 많이들 했다.

우리 집도 셋째 오빠가 떠나고 내가 오고 전국으로 배달하던 트럭들이 사고가 잦아지고, 그 시절 흔한 빚보증 등 복잡한 사건 사고가 꼬리를 물었다고 했다. 더하기 빼기, 정리해서 대전으로 이사 왔다.

아주 커서도, 아주 어려서도 아닌 어느 순간 내 태생이 우리 집에 도움이 안 되었나 책과 우울감을 앓은 적도 있다.


이사 온 첫날의 기억은 없지만 집의 넓이 구조등은 선하다.

집 정면으로 동○상회 간판아래 널찍한 가게,

가게 옆면으로 난 철 대문을 열면 좁다란 길 너머 널찍한 마당이 나왔다.

마당 너머에 방 서너 개가 줄줄이 사탕 마냥 연이어 있고 안쪽으로 마루와 아주 넓은 안방이 있었다. 안방에는 내가 머리를 수그려가며 열심히 오르내리며 혼자 놀던 다락이 붙어 있었다.

물론 거기는 누구의 방도 아니라 반이나 묵은 짐들이 여기저기 마음대로 놓여 있었고 마당 쪽으로 난 작은 창문 쪽이 내 비밀의 구역이었다

뿌연 한 창아래로 보이는 마당의 장독대,

학교 다녀오는 시간에 맞춰 엄마는 준비해 놓은 한약을 꼭 거기에서 먹였다.

엄마는 혼자 바쁘다.

해피였던가 강아지는 뭐라 뭐라 끄럽고

오목조목 새침한 언니는 어디 숨었는지 안 보인다.


안방의 윗목에는 큰 어항과 텔레비전이 있었다.

테레비래 키득키득

텔레비전, tv, テレビ (테레비)

무엇이 맞는지 사실 지금도 모르겠다.

우연찮게 내뱉은 테레비습다고 내 또래 자매들이 웃는다.

내가 띠(허리띠)라고 말했다고 낄거리던 반친구들이 생각났다. 심지어 다시 말해보라고 했다.

사투리 쓰는 걸 보니 너 시골 왔구나!

그런데 시골에 가면 나보고 변했다고 했다.

말끝에 무심코 뱉은 그랬니? 저랬니? 가 도시말이란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놀림을 받았다.

몇 년 후 자연스레 도시인이 되었지만 대학 때 내 별명은 촌년이었다.

이래저래 사연 많은 텔레비전!

갈색 미닫이문이 있던 텔레비전은 돈을 떼먹고도 그 시대에 텔레비전을 놓고 사는 사람 집에서 아버지가 들고 다고 했다.

그때는 하춘화와 창이 좋았던 아, 누구였더라, 두 여자가수가 우리 어린이들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있어 두 파로 갈라졌다. 나는 하춘화 파고, 같이 놀던 아이는 그 가수 파였다.

서로 좋아하는 가수 편을 들다 화를 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대단했던 드라마 여로가 있었다.

저녁이면 넓은 안방 텔레비전 앞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텔레비전 맨 앞은 세 들어 살던 아주머니 자리였다

두껍고 까만 안경에 툭 불거진 눈이 생각난다.

같이 웃고, 울고, 기뻐했다.


지금으로 보자면 천지개벽할 일이다.

예전에는 기술로 천지개벽을 외쳤지만

지금 보면 사람 살던 예전모습이 더 천지개벽할 일인 거 같다.

.

우리는 그렇게 단란하게 살았다.

아니 부모는 자식으로 속 끓이고

아이들은 부모 눈을 열심히 속였다.

결국 켜서 맞고 나거나, 또 되풀이!

만화책에 빠져 살던 둘째 오빠는 결국 회초리들은 엄마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만화책방으로 향했다.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첫째 오빠는 싱을 우다 들켰다.

분명 아버지한테 맞고 코피 한 대접 쏟고 그렇게 그렇게 그만두었을 것이다.

몸이 약해 애지중지 노심초사 키우는 큰아들이 복싱을 한다니, 어린 내게도 충격적이었다.

결국 복싱의 태풍은 지나갔지만,

다른 이름의 태풍들이 줄지어 준비하고 있었다.


클수록 산너머 산이여

엄마의 한숨이었다.


엄마 화채 먹고 싶어

양키시장에서 사 온 귀한 바나나가 들어간 화채!

나는 맛있어 웃고

엄마는 소중해 웃었으리라.

그렇게 하루하루가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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