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사건

쌀집막내

by ullia

첫째 오빠는 56년생 잔나비띠

둘째 오빠는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아는 58년 개띠이다.

한 뱃속에서 나왔어도 참 다르고 했다.


첫째와 부모의 관계는 어느 정도 불가사의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도 큰아이, 작은아이가 있.

첫째 아이에 대한 마음은 단순하지가 않다.

신비감과 소중함으로 시작한 마음이 부담으로 변한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항상 동반한다.

둘째는 냥 예쁘다.

그래서일까

첫째는 좀 더 보수적면서 _ 이 말에는 장점도 단점도 아닌 온갖 색깔이 있다._ 나름 진지한

책임감이 있다. 다들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래도 "맏이는 맏이야" 한다.

둘째는 첫째를 키울 때의 긴장을 풀어놓는 마법이

작동한 것인가, 아프지 않고 커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도 눈치 빠르고 귀여움 받을 지점을 확실히 안다. 그래서 둘째는 저절로 크는 면이 있다. 그래서 낳아놓으면 알아서 잘 큰다는 말들을 예전에는 많이들 했.

지금 세상은 큰일날소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나를 비롯한 주변의 첫째와 둘째에 대한 대략적인 소감이다.


첫째 오빠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이모들이 서로 업어가며 키웠다고 한다.

여든 넘은 이모가 아직도 매해 김장김치를 보낸다고 하니 사랑이 끝이 없다.

두 살 터울의 둘째 오빠는 그 사랑에서 밀렸다.

개구쟁이 기질이 명랑하다.

도망치는 것도 최고다.

큰 놈은 무릎 꿇고 앉아 끝까지 매를 맞으니 답하고, 가 타고.

작은놈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태풍이 지난 후 슬그머니 들어오니 그래 네가 효자다!


가난해서, 먹고살아야 하니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아버지는 아들 둘을 열심히 가르쳤다.

일찍 돌아가신 친구분의 아들이 우리 집 숙식 가정교사로 들어왔다.

물론 아들 둘의 선생님이었만 거의 큰아들 단독선생님이라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았다.

첫째 오빠는 머리가 좋아서일까, 타고난 귀염성일까, 인덕이 있다 했다.

학교선생님, 과외 선생님 모두 첫째 오빠를 우선 예뻐해 주었다.

비교의 대상이 옆에 있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공부를 못하는 축은 아니었지만 잡기에 능하다고 할까? 삭삭하고 눈치가 빠른 덕에 심부름은 모두 둘째 오빠차지였다.

머리 좋은 큰아들은 공부 하면 된다는 생각도 있었으리라.

그렇게 하나는 공부로, 하나는 집의 살림꾼으로 자리 잡아갔다.


현재 우리 집에는 크지 않은 어항이 있다.

몇 년 전부터 구피로 시작해, 베타, 다시 구피가 산다.

작은 어항도 손이 많이 간다. 그 아이들 세계를 지켜주기가 만만치 않다.

하물며 70년대 초반에 어항집에나 있을만한 큰 어항이 있었다. 금붕어였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오빠 둘의 싸움은 항상 천둥과 번개를 동반했다.

제우스 이하 신화의 신들도 아닌 평범한 인간 둘이 지치도록 싸웠다.

지금은 형님, 아우 하며 서로를 향 건강걱정이며, 눈물 나는 사랑을 하는 사이지만, 그때는 둘이 그렇게 치고받고 싸웠다.

그 정도면 원수?!

둘이 싸우거나

아빠한테 혼나거나 하는 시점에는

항상 내가 등장했다. 내 원의 따위는 필요 없다.

싸움을 막거나 가라앉히기만 하면 된다.

그날은 하필이면 안방에서 싸움이 시작되어 어느 순간 어항이 퍽하니 터졌다.

순식간, 부지불식간이었다.

어항덕에 서로 놀라 싸움이 멈추고!

하이고...

엄마의 울음 섞인 한숨이 걸레를 따라갔다.

그 뒤로 우리 집에서 어항은 사라졌다.


첫째는 화장하라 하고

둘째는 화장 안 해도 이쁘다 한다고

그렇게 다르다고 했다.

그래도 만면에 미소가 가득인 걸 보면 엄마는 기분이 좋은 거다.

부부동반 계모임이 있는 날은 고기반찬 진수성찬이었다.

나도 나가서 고기 먹는데

우리 새끼들도 먹여야지!

사람마다의 생각도 다르다.

바쁘니 김밥 몇 줄 사다 놓을까?

뭐 배달시킬까?

나는 천성의 한계를 느껴가며 반성도 하고, 노력도 하고 있다.

계모임날에는 뽀글뽀글 지진 머리가 그루프라는 것으로 둥글게 둥글게 말리고 뽀얀 분을 바르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면

하아... 세상에서 제일 우아하고 예쁜 순열 씨다.

엄마가 예쁘니 자식 넷 모두 기분이 좋았다.

자신만만이었다.


잔나비띠 오빠는 그때말로 샤프한 맛에 여자들이 무척 따른다고 그것도 걱정이었다.

집에 놀러 온 그냥 여자 사람 친구도 있었고 여자 동생도 있었고 그 시절 펜팔 여자친구도 있 화려한 인간이었다.

개띠오빠는 둥글둥글한 얼굴에 상냥하 착해서 동네 쌀 배달은 도맡아 하고 가끔 마가린으로 김치볶음밥을 만들 환상의 맛을 선물하는 가족형 인간이었다.


부모품에서는 걱정 없던 오빠들은 한 발 한 발 쉽지 않은 입시로, 군대로, 사회로 옮겨갔다.

공부를 잘 한 첫째 오빠는 입시에서 연이어 낙방했다. 시험운이 없다고도 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하숙을 시켰는데 며칠 만에 돌아왔다.

막내가 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마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키도 크고 늘씬해서일까 (우리는 그렇게 짐작했었다) 훈련소를 마치고 공수부대로 착출 되었다. 그러더니 결핵으로 국군병원에 입원했다는 편지가 날아왔다. 첫째한테 유독 엄하던 아버지는 먼 마산까지 다녀오고 또 다녀오고... 버지의 진심이 보였던 순간었다.

아버지의 손발이 되어 도와주던 둘째 오빠는 집에 자주오기 위해 공군으로 지원했다.

그때는 몰랐다.

부모님께는 도움이었지만 오빠의 인생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오빠의 길이려니 생각 없이 수긍했다.

전공과는 다른 길을 몇 번 갔다 왔다 하며 엄마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오빠를 착하다고 표현한다.

오랜 시간 실패와 좌절을 겪어서일까.

천성일까.

밝다.

지금은 본업으로 돌아와 현장에서 하고 있으며, 가족을 위해 애쓰는 평범한 가장이다.


어른말 잘 들어야 착하다 한다.

착한 어린이라는 액자에 가둔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가 시작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착한 것이 아니라 착하다는 소리에 스스로 붙잡아 두려는 사람들을 본다.

그이들은 함을 이용한 무리함을 넘는 무례한,

부탁이 아닌 력을 거부 용기를 내지 못한다.

너 착하잖아...

성장하지 못한 채 세상을 향해 인정을 구한다.

가족을 뒤로 두고 타인을 섬기는 쓸쓸한 인간이 되어버기도 한다.

슬픈 일이다.


막내랑 고기 먹는다~

지네끼리! 맛있게 먹어~

첫째 오빠가 고기먹이고 싶다며 호출했다.

맛있다.

☆다방에 앉아 노인 둘의 수다가 길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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