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청춘

쌀집막내

by ullia

엄마는 옛날사람 치고 키가 컸다.

쉴틈이 없던 단한 삶이었어도

작은 얼굴에 쌍꺼풀이 고운 눈, 단정한 입매의 예고 호리호리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아버지와 혼인하게 된 縁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녀에게도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을 텐데 마라서 묻지도 듣지도 않았.


너희,

작은아버지가 나한테 참 험하게 했지.

고모, 다 해서 시집보냈더니 뭐 해줘라, 뭐 내놔라,

즘 세상이면 살겠냐.

근데 미운맘도 안 들더라.

맏며느리서 감내한 까.

엄마는 바보다.

억울했다.


일꾼들 밥을 한 가마니씩 했어.

돈을 포대에 담았어.

엄마는 원더우먼다.

아프면 낫게 해 주고,

맛있는 밥 주고,

주기만 하면서도 이쁘다, 이쁘다 했다.

내 의기양양함의 원천이었다.


부모는 열심히 일하고 돈 벌고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스스럼없이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 울타리 안에서 그 편견 안에서 고요히 살 것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항상 그렇게 있어주리라 꿈을 꾸었다.


인생은 천 가지 만 가지 다른 듯 닮았다.

나 또한 많은 것을 감내하는 인생을 맞이할 줄은 랐다.

좋아도 별 수없고

싫어도 별수 없라.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엄마는 외할머니 살 집 마련해 주고 시집온 뒤에도 동생들 단속해 가며 살았다.

엄마가 아버지 식구를 거둔 것처럼

아버지도 엄마 식구를 도와주었다.

법이 필요할 때는 변호사 쫓아다니며 해결해 주고

돈이 필요할 때는 융통해 주고

집을 지을 때는 국수를 실어 날랐다


대전으로 이사 온 후,

우리 집은 친척들의 숙소가 되었다.

친가, 외가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모두 일만 있으면 우리 집으로 왔다.

좋은 일보다는 궂은일이 대부분이었다.

병원을 가도 우리 집을 거쳐서 가고

대학을 가도 우리 집을 거쳐서 갔다.

언젠가는 외종사촌 오빠가 꽤 오래 산적이 있다.

오빠가 굳이 나를 콩콩 두들기며 웃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몇 번 당하니 몹시 싫어졌다. 티를 팍팍 냈더니 소문이 돌아 외삼촌, 외숙모 보는 것이 어색했다.

그래도 뻔뻔한 뱃심이 있었던지 오빠의 약혼식에 졸졸 따라가 배부르게 얻어먹었다.

염치없어서 즐거운 시절이었다.


내 가족 밥해 먹이는 것만으로 도 찡찡거리는데

엄마는 밥 드셨냐며, 밥 드시라며, 집 여주인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감내했던 엄마도 아들의 가혹한 입시철만큼은 사람이 싫다고 했다.

예비고사가 있었고

본고사가 있었다.

긴 시간, 엄마는 아들의 합격을 위해 몇 년의 목숨을 바쳤을까.


어느 날, 문득

엄마는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했.

소중하고 따뜻한 안색에 돌았다.

소중한 딸이었던 그 기억으로 살아왔을지도 른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집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갔다.

고향집이래야 아버지가 물심양면 정성 들인 선산에 있는 집이다.


매화꽃이 환장하게 이쁘다...

겨울이 끝날 때쯤이면 항상 전화기 너머로 전해준 산 소식, 봄소식이다.

엊그제, 언니도, 오빠도 말했다.

매화꽃 피겄다야...

그 이쁜 것 같이 보며 당신이 해준 따뜻한 밥 푸짐하게 먹는 자식입이 보고 싶었을까.

나뿐 아니고 우리 모두한테 전화를 돌렸구나.

그때 갔으면 좀 더 살았을까.

그리움이 사무친다.


세의 평범한 남편 하나 없다고

잠을 못 자 눈동자가 회색이 었다.

라면 끓여서 반도 못 먹고 버렸어.

치킨이 먹고 싶더라,

가게 문 닫기 전 엄마와의 통화가 하루의 마침이었다.

겨우 그것만 해냈던 딸,

격한 인생의 구간을 지나는 딸 등을 쓸어내리던 은 손 마디마디의 쓸쓸한 흔적 바래지도 않는다.


보고 싶다. 우리 엄마


추신

아침에 눈떠 마루에 앉아 수돗가 빨래하는 엄마 등을 멀뚱히 쳐다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가 마흔 살이지?

놀랬던 어린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의 나는 그 마흔에서도 말이야

이십 년도 더 지났는걸.

하 웃음이 난다.

하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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