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집 막내
나이가 들면서 만나는 누구든 갱년기 장애 거나, 먹는 약 소개 거나, 대개는 건강하지 않은 이야기로 시간이 간다.
말을 들으면서도 지친다.
우리 집은 아버지의 사십 대 당뇨로 시작해 형제들 모두 같은 약을 먹고 있다.
막내만 살아남았네...
나만 당뇨가 없다는 말이다.
체질이 엄마를 닮아서 소화가 원활하지 못하니 덜 먹게 되고 자연히 마른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지혈증이다.
피는 진하다.
59년생 오빠가 떠난 것은 폐렴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부터 우리 형제들 모두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약한 건지 기침을 시작하면 엄마는 피가 바싹 마른다고 하였다.
다 큰 딸은 기침하느라 잠을 설치고
엄마는 방문 앞에서 간장이 녹는단다.
작은 아이가 생겼을 때인가... 기침으로 고생고생하던 나를 엄마가 와서 살려놓고 갔다.
천생 내 의사 선생님이다.
엄마는 이른 아침 의례히 아버지 드실 것을 준비했다.
엄마가 나름 터득한 건강식이다.
녹즙이며, 콩물이며, 몸에 좋다는 것들을 식탁에 줄을 세워놓으면 아버지는 순서에 맞추어 드신다.
만드는 엄마나 드시는 아버지나 성실했다.
그래도 아플 것은 아프니 참으로 억울하다고.
어릴 때 많이 곯아서 지금 아무리 보양해도 소용없는 거라고 했다.
그 덕에 나는 보약을 달고 살았으며 종류도 다양하게 먹어봤다.
그래서 나는 건강한 걸까.
내 나이 마흔넷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 나이 마흔아홉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두 분 모두 폐암이었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흡연자였다.
잠시 금연을 시도하였지만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왔나 보다.
오빠들이 그냥 피우시라고 했다.
오랜 당뇨와 합병증, 결국 폐암은 아버지를 무너뜨렸고 가게를 막 시작한 막내딸은 일요일에야 겨우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아버지의 떨리던 음성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가게가 끝나고 밤 열 시가 넘은 시간,
정신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정신없이 아버지께 가는 도중 전화벨이 울렸다.
병실에 주저앉아 울다 아버지 얼굴을 만지는데 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막내딸에게 답하는 마지막 인사였을까.
생의 마지막 회한이었을까.
네 아버지가 얼마나 살고 싶은지
너를 부르며 하루만 더 살고 싶다더라.
회한이 사무친다.
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버지는 이번 생이 살만했을까.
탁 타닥 탁 타닥
엄마의 다듬이질 소리는 리듬을 탄다.
풀 먹고 타다닥 탁
힘 받은 아버지의 모시적삼이
바람에 선들선들 그네를 탄다.
아. 인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