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쌀집 막내

by ullia

나는 할머니를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게으르다고... 하하

할머니는 체구가 아주 작고 허리가 바싹 굽은 노인이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코가 아주 오뚝한, 그래서 우리 형제들의 코는 어디서나 인정 좀 받는다.

건들리며 할머니 방에 가 그래봐야 뼈와 살거죽만 있는 얼굴, 반달처럼 둥글게 굽은 허리, 퉁불퉁한 손가락을 만지 지락...

할머니는 손녀 모르는 한숨을 내쉬었으려나.


네 아버지가 제대로 공부했으면 장관을 했을 거라...

네 엄마는 남들이 베 한필짤 때 두필 세필 짰다나...

어릴 때 잃은 딸들과 친정이야기,

덤으로 옛날이야기

똑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하면서,

듣고 또 들으면서

할머니랑 닮은 꼴 손녀는 빈둥빈둥 놀았다.

할머니 엄마 아빠는 왜 할머니를 가난한 집에 시집보냈까 묻기도 했는데, 무어라 답도 했는데, 말들 속에 숨었나 보다.

그래도 머니 편 하나 있었으니 낙낙해졌으려나.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못하는 할머니,

날이 궂은날만은 어김없이 뭐라 뭐라 하늘을 나무랐다.

할머니의 유일한 욕이었다.

하아! 이젠 다 잊었다.

얼마나 잊었는지도 모를 만큼 잊은 거다.

세월 탓, 내 탓해가며 또 세월이 간다.


대전에 와서도 돈을 번 아버지는 시내에 가게 딸린 2층 집을 지었다.

아래층에는 안방과 할머니 방

이층은 우리 형제들 방이 쪼르르 있었다.

아버지가 튼튼하게 짓는다고 했어도 외풍이 있었다.

할머니 방이 유독 외풍이 심했다.

할머니 코를 만지면 차가웠다.

불쌍했다.

내 코가 차가워도 난 불쌍하지 않은데 할머니는 쌍했다.


세상 물정을 모르 할머니.

쌀이 없으면 그냥 배를 곯는 사람이라 아버지 어릴 때부터 가장 노릇을 했다고 한다. 한 번은 아버지가 이웃에서 얻어온 쌀로 미음을 쑤어 숨넘어가는 할머니를 살렸다면서, 그런데 할머니는 귀한 쌀을 팔아 떡을 사 먹었다 웃었다. 어린 나도 픽 웃었다.

하루는 학교를 다녀오니 어? 신여성이 있다.

비녀는 사라지고 커트머리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나!

할머니가 서운했을 거 같아 머니 눈치가 보이고 서운하고 슬펐다.


날들이 지나고

대학입학식 얼마 앞두고 할머니가 갑자기 아프다 했다. 내 기억으로는 3일 식사를 못 하더니

한밤에서 새벽으로 이어지던 어느 순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숨을 거두던 순간, 수없이 할머니를 부르던 그 순간이 가슴에 꾸욱 도장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더니 그조차 바랜 사진 되었다.

살아가며 어느 순간은 탄생을 기다리고,

어느 순간은 죽음을 기다린다.

오고 간다.

진리는 말이 없다. 깔끔하다.

그 작은 숨 하나 멈췄다고 다시는 못 다.

설마 못 볼까 하는 상을 한다면 가당치도 않은 짓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할머니는 이번 생이 살만했을까.


살았지. 살아야 하니까.


어느 따스한 봄날 멍하니 바라보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서러워서.


육 년 후 할머니 기일에 나는 결혼식을 올렸다.

용성이모는 뭐 하러 시집가냐 하고

아버지는 할머니와 나의 인연을 기쁜 듯 웃기도 하고, 그렇게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나의 혼인생활은 시작되었다.


추억은 점점 아름다워지고

현실은 점점 산너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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