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대학원에서 농담을 연구하며
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의 8학기 중 4번째 학기가 시작되기 1~2달쯤 전, 나는 한 편의 학술 논문을 하나 더 완성했다. 두 발의 총알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하나는 일찌감치 투고했다가 한참 후에 게재불가 판정을 '농담의 특징'과 관련된 논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농담을 연구하는 초기 시절부터 늘 떠올렸던, '농담과 예술의 관계'와 관련된 논문이었다.
한 번 논문 투고의 실패를 맛보고 나니 첫 논문의 게재가 운이 좋았던 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투고하는 논문마다 전부 떨어질 것처럼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두 편의 논문을 다시 투고했다.
재밌는 것은 이 당시의 내 마음 가짐이었다.
"아니, 아무리 봐도 더 고칠만한 게 보이지 않는데 왜 게재불가 판정을 받은 거지. 이 논문은 현시점에서 고칠 수 없는 글이고, 고치면 안 되는 글이야."
나는 게재불가 판정을 받은 논문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학술지의 양식에 맞게끔만 변형시켜- 다른 학술지에 투고했다. 다른 하나의 결과물은 언제나 그렇듯 만족스러웠다. (물론 학위 논문을 쓸 때, 이 논문을 다시 돌아보니 다소 성급한 주장이 눈에 밟혀서 곤란하기도 했었다.) 아서 단토(Arthur Danto)라는 예술철학자의 이론을 근거로 어떤 농담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의 글은 독창적으로 느껴졌고,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도 않았다. 농담을 뒷받침하기 위해 재즈와 캐리커처 역시 예술임을 드러냈다. 즉 클래식과 유화가 아닌 재즈와 캐리커처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듯, 같은 논리로 농담 역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한 번 떨어지고 나니까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선택지 중에 게재불가가 있다는 게 실감이 나네."
실패의 경험은 강렬했다. 뭐,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착실히 성과를 쌓아왔던 나로선 불안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논문에 쓸 아이디어를 살짝 풀어쓴 독후감상문으로 상을 받고, 처음 쓴 논문이 곧바로 게재가 되었을 때의 마음은 힘들더라도 지금의 기새가 이음새 없이 학위논문까지 이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한창 기새 등등할 때 한풀 꺾이니, 타격도 두 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떨어진 건 떨어진 거고, 해야 할 건 해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만하면 됐다'싶은 논문 두 편을 게재했으며, 한 편은 수정 없이 그대로! 다른 한 편은 반신 반의(아마도 농담과 예술의 관계를 말하기 위해 재즈나 캐리커처, 예술 이론에 대한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농담의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는 우려가 스스로 있었던 것 같다.)하면서 투고했다.
그리고 2월이 되었다.
한 번 꺾인 경험이 있던 (수정하지 않은) 논문의 심사 결과는 수정후게재도 아닌 수정게재였다.
솔직히 놀랬다.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었기 때문이다. 같은 글이어도 이렇게 상이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살짝 우쭐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그래~ 이거지!'
이어서 찾아온 4월,
농담과 예술의 관계를 논한 논문은 수정후게재 판정을 받아 무난하게 게재되었다.
'오,,, 오! 다시 흐름이 찾아왔구나~'
한 번의 미끄러짐은 이후의 추진력을 위함이었던가.
연이어 맞이한 기분 좋은 결과는 학위논문도 결코 넘을 수 없는 산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감은 이만하면 충분했다.
굿굿!
반박 시 네 말이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