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정 Feb 07. 2023

하동으로의 치유여행

하동에서 만난 예술가들

지난주, 입춘을 맞이하여 하동에 다녀왔다. 분석 심리 상담 선생님과 그 외 2월에 강의를 함께 듣는 다른 선생님들과의 여행이었다. 사실 이 여행은 오래전부터 계획이 되어있었고, 마지막 순간에 감사하게도 합류하게 되었다. 30대, 40대, 50대, 60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임이었다. 내가 합류하게 되자 ‘젊은 피’라며 열렬히 환영을 해주시면서도 한참 어린 나에게 계속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시며 존중해 주시는 마음이 참 감사했다. 

하동에서 마신 매화꽃차. 향이 일품이었다.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2시간 반 이 지나 하동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바로 식당으로 이동했다. 들깨와 메밀을 섞어서 만든 ‘사찰 국수’를 먹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혀 전원이 국물까지 싹 설거지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하동여행 답게 찻집으로 향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만수가 만든 차>. 앞에서 전화를 드리자 인상 좋은 사장님께서 마중을 나오셨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정성스레 준비해놓은 다과와 찻잔, 그리고 무엇보다 창을 통해 펼쳐지는 건너편 산의 야생차밭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잠시 후 차밭의 주인이자 찻집 이름에도 새겨있는 ‘만수’사장님까지 들어오셨다. 두 분이서 번갈아가며 차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여자 사장님은 원래 고향이 다른 지역인데, ‘이 옆에 있는 아름다운 분과 아름다운 차’를 따라서 이 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두 분 모두 인상이 너무 좋으셔서 일행 중 한 분이 “두 분 정말 좋아 보이세요. 평생 안 싸우셨을 것 같아요.”라고 하니 바로 여 사장님은 “아이고~맨날 싸웁니다.”라고 하는 동시에 남사장님은 “싸울 일이 어디있어요~”라고 하신다. 그 말에 모두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 매일 싸우기도, 안 싸우기도 하지만 어쨌든 서로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 차를 마시러 왔는데 예술을 경험하였다.


내가 그린 습식수채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테마가 ‘치유여행’이었던 만큼, 과제가 주어졌다.

“밖에 나가서 천천히 걸으며 ‘빛’을 내 안에 담아오세요. 걷다가 생각이 개입하면 그 자리에 잠시 멈추시고, 생각을 보내시고, 다시 빛을 찾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약 20분 정도를 걸었다. 숙소 옆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때마침 빛이 너무 좋아 계곡물에 비친 빛이 다시 바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그 빛을 내 안에 담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습식 수채화’를 시작했다.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세 가지 색을 이용해서 도화지를 팔레트 삼아 색을 요리조리 섞고, 덧 칠하고 덜어내기도 하면서 내 안의 빛을 도화지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조금 전 관찰했던 빛을 마음에 담고, 그 빛을 다시 도화지에 담으려니 쉽지 않았다. 마음대로 물감도 섞어지지 않고, 손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반해 몸이 따라와 주지 않는 답답함도 느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선생님께서는 “정답은 없어요. 그냥 마음에 따라서 표현하면 돼요.”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 그림에 비해서 내 그림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수채화 시간이 끝나고 잠시 후 작품들을 한곳에 모아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에 마음 따라 몸이 안 움직이니까 조금 짜증이났어요. 당연한 건데, ‘그러지 말자. 정답은 없으니 그냥 이 순간에 집중하고 즐기자.’ 하고 마음을 먹어도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제 그림이 썩 마음에 들기도 해요.”


그리고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한 60대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는 겨울 동안 품고 있던 기운을 이제 터트리는 생명력의 빛을 표현했어요. 제 그림이 완벽하지 않아도 뭐 어때요. 잘 그리는 그림을 보고 싶으면 다른사람 그림 보면 되고~호호호.” 


하루동안 본 항상 웃음기와 장난기 가득하게 표현하는 선생님다운 말씀이셨다. 그리고 나서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저도 여기까지 오는데 쉽지는 않았어요.” 

그녀의 눈빛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별거 아닌 말일 수 있지만 그 눈빛과 음성에 사로잡혔다.

최근 훌라를 배울 때도, 요가를 배울 때도 ‘내려놓는’마음에 어쩌면 집착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잘 하지 못하면 뭐 어때. 그냥 즐기자. 내려놓자.’ 그런데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선생님의 의도와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다른 무언가가 내 마음에 도달했다.

‘내려놓지 않으면 뭐 어때. 지금 내가 잘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자. 언젠가는 내려놓아지겠지. 잘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뭐 어때서.’ 

그렇게 나는 하동에서 두 번째 예술가를 만났다. 

작가의 이전글 월말결산 프로젝트 #2023.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