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또 한 번,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지
대학생시절, 휴학하고 함께 어학원을 다니며 친해진 친구가 있다. 이대로 졸업하기엔 아쉬워 남들 다 하는 휴학을 덜컥했지만 그렇다고 남들 다 다니는 토익학원만 다니기에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어학원을 등록했다. 주변에 아는 선배 두 명이 이미 다니고 있었는데, 그 둘 모두 학원에 ‘올인’ 하는 모습을 보고, 어쩜 저렇게 열심히일까 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올인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든 과정이라는 것을 다녀보니 알게 되었다. 수업은 하루에 두-세 시간 남짓이었지만 강제로 스터디그룹을 짜서 공부를 시키고, 숙제 양 또한 어마어마한 데다가 매주 보는 스피킹 테스트까지. 이곳에만 올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스케줄이었고, 태어나서 영어공부를 처음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루 12시간씩 공부를 했다.
아무튼 그렇게 내 인생의 1년을 바쳤던 학원 첫날, 일찍 도착해서 앉아있었는데 누군가 옆에 다가와 물었다. “여기 자리 있나요?” 그렇게 시작된 첫 만남 후 그 친구와 나는 학원에서 고등학생처럼 도시락을 까먹으며 일 년을 동고동락하였고, 금세 가까워질 수 있었다.
1년 과정의 학원을 끝마칠 즈음 나는 해외로 인턴을 떠났고, 그 친구는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서로 연락이 뜸해졌다. 그리고 둘 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취업 후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러면서 우리는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첫 직장에서 이 친구와 메신저로 잡담을 주고받는 게 하루의 낙일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퇴근 후에도 문자를 주고받았다. 애인이 아닌 친구와 이렇게 정말 말 그대로 매일매일 문자를 주고받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서로 문자를 자주 보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냥 일상의 소소한 연락들을 주고받았다. 매일 안부를 물어볼 친구가 있다는 것, 매일 안부를 물어봐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꽤나 큰 위안이 되는 행위였다.
어느덧 나도 점점 바빠지고, 이 친구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며 자연스레 연락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하루에 네, 다섯 번씩 주고받던 문자가 한두 번으로 줄다가 이틀에 한 번씩이 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의 끈’을 서로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친구가 해외로 가족여행을 떠났는데 며칠 동안 연락이 없었다. 이상한 일도 아니라서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던 차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여행 가서 별일이 있어서 연락을 못했어. 나 지금 혼자 호텔에 와있어.ㅎㅎ” 라며 연락이 왔다. 아무렇지 않게 그냥 답장을 하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혼자 도망치듯 호텔로 갔을 때 과거의 나의 외로움이 생각나서 바로 전화를 했다.
‘오늘은 어디 다녀왔어, 오늘은 뭐 먹었어.’ 안부만 주고받았지,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 건 오랜만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그동안 힘들었던 일을 털어놓으며 우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참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그간 마음속에 있던 말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정말 아주 오랜만에, 이 친구와 연결되었다고 느꼈다. 전화를 끊고 친구에게서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다음 날, 또 시답지 않은 일상 이야기가 시작됐지만 나는 또 거기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또 한 번,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