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앤 프랭키

우리의 70대, 80대는 어떤 모습일까?

by 김애정
gr-696x392.jpg (넷플릭스 시리즈 그레이스 앤 프랭키)

드라마의 첫 장면. 70대 부부 두 커플의 테이블이 예약되어 있다. 오늘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남편들이 예약한 저녁 식사 자리. 식당에 먼저 도착한 사람은 그들의 아내, 그레이스와 프랭키이다. 먼저 도착한 두 사람은 서로 마음에 없는 인사라도 주고받을 법한데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각종 장신구에 자유분방한 옷차림, 마치 히피 같은 프랭키. 그녀는 ‘오늘 꼭 할 이야기라는 게 은퇴일까?’ 영적인 감이 온다며 이야기의 운을 뗀다. 그런 프랭키의 말에 콧방귀를 뀌는 그레이스.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드라이한 보드카를 주문하는 그레이스는 세상에 영적인 감은 없다며 눈알을 굴린다. 잠시 후 도착한 그들의 남편, 로버트와 칼. 변호사 사무실의 비즈니스 파트너인 둘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폭탄선언을 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으며, 이혼을 원한다’ 고. 지금이라도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히고 진정한 본인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남편이 게이라니! 그리고 이제 와서 이혼을 하자니! 갑자기 남편들의 아우팅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그레이스와 프랭키. 무엇보다 체면을 중시하는 그레이스이지만 한바탕 소리를 지른 후 나오니 갈 곳이 없다. 한참을 방황하다 두 부부가 공동으로 사 놓은 해변 별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곳에 프랭키가 먼저 와있다. 그레이스는 프랭키와 도저히 같이 있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이 별장은 프랭키의 집이기도 하니 어쩔 수 없이 그 둘은 별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서로 너무도 다른 둘. 뭐든 정해진 대로 해야 하는 비즈니스 우먼인 그레이스는 자유분방하고, 대책 없어 보이는 프랭키가 괴짜 같아 보인다. 그런 자신을 사사건건 무시하는 그레이스가 프랭키도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줄 사람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처음엔 어쩔 수 없는 동거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서로에게 없으면 안 되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간다.


이 시리즈에는 엄청난 갈등, 반전, 액션은 없지만 소소한 삶이 담겨있다. 70대 여성 두 명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에서 하루하루의 삶이 사소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특별함이 있다. 그들은 70대에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 은퇴 후 평소 해보고 싶었던 연극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로버트. 크루즈 여행을 계획하며 인생 처음으로 수영을 배워보는 칼. 물론 그들의 도전이 쉽지는 않다.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주변에 본인들과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이 이미 많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도 다른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또한, 젊은 연극배우들 사이에서 세대 차이를 느끼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무대에 서기도 하고, 창피하지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수영을 배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반짝여 보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물어 간다’고 표현하는 70대의 삶을 꾸준히 가꾸어 나가는 데 있다.


아무리 인생 백 세 시대라지만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60대, 70대는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였다. 20,30대에 열심히 달려서 40,50대에 기반을 잡고 60,70대에는 내려놓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그런 나에게 희망과 기대감을 주었다. 70대에도 얼마든지 빛 날 수 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들도 본인의 나이에,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관절이 아파서 전동카트를 타야 할 때 굴욕감을 느끼며 버티다가 수술을 받기도 하고, 마트에서조차 젊은 사람들에 밀려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계산하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럴 때 이들은 ‘늙으니까 존재감이 없어서 껌 한 통 그냥 들고 나와도 모르던데?’ 라고 웃으며 마트를 나와 껌을 씹으며 퇴장한다. 나에게도 언젠가 삶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주눅 들지 않고 어디엔가 있을 나의 그레이스, 혹은 프랭키를 떠올리며 당당히 살아가려 한다.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70대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 키우면서도, 옛날 어른들처럼 내가 우람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고 늘 허약할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늙어버렸다. 준비만 하다가.’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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