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고 싶은 기분

나는 어떤 기분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나

by 김애정


빙봉2.jfif (영화 '인사이드 아웃' 중 빙봉과 기쁨이)

‘일기 쓰기’는 매해 나의 새해 목표이고,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공부를 혹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 책상 정리를 하다가 먼지 쌓인 일기장을 발견하고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몇 해 전의 일이다. 오랜만에 책상 정리를 하다 중학생 시절 일기장을 발견하고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과거의 나에게 빠져있었다. ‘아 맞다 이랬지’ 라는 기억보다는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나?’ 싶은 사건들이 더 많았다. 울다가 웃다가 몇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마지막엔 슬퍼졌다. ‘이 일기를 쓰지 않았으면 없어졌을 일 들 이구나’싶었다. 나는 중학교 이후로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중학교 이후의 대부분의 나의 삶이 지워진 기분이었다. 주변에 보면 그런 친구들 있다. 신기할 정도로 과거의 사건을 잘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친구들. 반면에 분명 같이 여행을 가고 시간을 보냈는데도 옆에서 항상 ‘그랬나?’ ‘아 맞다 그랬지.’ 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다. 애석하게도 나는 후자이다.


영화 ‘인 사이드 아웃’ 에는 ‘빙봉’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빙봉은 주인공 소녀 라일리의 어릴 적 상상의 친구며, 영화에서는 ‘기억의 매립지’라는 곳이 등장하고 무엇이든 그곳에 가면 라일리는(우리는) 영영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내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 생의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기억의 매립지로 떨어졌을까? 그것은 모를 일이다. 빙봉은 결국 ‘기억의 매립지’로 떨어지게 되는데 나는 그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가 기억조차 못 하는 나의 삶의 일부분이 어딘가에 있을 생각에 마치 이별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글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글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어떠한 사건을, 어떠한 사람을 기억의 매립지로 보내지 않고 어딘가에 소중히 보관시켜주는 것 같은 힘이다.


2020년 3월 내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을 때, 이슬아 작가의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었다. 타지에서 웃고 울고 감동받고, 잠시 책을 덮고 멈추어 생각도 하다 보니 책을 다 읽었고, 어린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관찰력, 진중함 그리고 유머가 존경스러웠다. 그녀의 이야기는 소소하지만 시시하지 않다. 여성, 할아버지, 키스, 세월호, 김관홍 잠수사 그리고 자신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풀어내었다.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의 재능도 부러웠지만 꾸준하게 본인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혹은 내 안의 빙봉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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