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마음
한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글을 쓰던 전생 같은 시절이 있었다. 어느샌가 그 다짐과 마음과 습관은 다 무너져 내리고, 글을 쓰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나는 왜 이렇게 글쓰기가 힘든가? 아니 그에 앞서, 나는 왜 이렇게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가.
지난 연말, 지인과 도서관데이트를 했다. 도서관에서 열리는 특별 전시도 구경하고, 책도 읽고 난 후 함께 점심을 먹었다. 연말이라 그랬는지 자연스럽게 올해 잘할 일을 공유하게 되었는데, 나는 ‘달리기’였고, 친구는 ‘영어공부’를 꼽았다. 우리 둘 다 아직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매일’,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덧붙여서 더 중요한 것은 타인의 ‘우쭈쭈’였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난 후 두 명의 달리기 동료를 매일 SNS에 태그 하였고, 그러면 그 그룹에서는 ‘와, 오늘도 해냈다!’, ‘대단해요!’ 등의 칭찬을 아끼지 않고 해 주었다. 나 또한 열심히 상대방을 응원하였고, 그게 달리기를 지속하는데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도서관데이트상대도 말하기를 “영어공부 채팅 그룹이 있어요. 거기서 매일 조금씩 하고 인증을 하면 잘했다고 하는데, 그 인정이 은근히 중독되더라고요.”라고 말하였다. 자연스럽게 새해목표 이야기로 넘어갔고, 나는 올해는 글쓰기를 좀 다시 꾸준히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상대방의 물음. “그런데, 애정님에게 글쓰기는 뭐예요? 왜 글이 쓰고 싶으세요?”
나에게 글쓰기란 뭘까.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을까.
이슬아 작가는 글쓰기가 ‘삶을 두 번 사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저녁에 일기를 쓸 때 하루를 돌아보며 같은 날을 한 번 다시 살게 된다고.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나에게 글쓰기는 자기 성찰의 매체이다. 의도 없이 원래 하던 대로의 삶, ‘자동화 모드’로 살기 쉬운 요즘. 글을 쓰지 않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의 자아를 장착하면 주변 것들이 조금 더 뚜렷하게 보기 시작한다. 조금 더 선명하게 들여다보게 되고 주변의 모든 것은 글감이 된다. 그 안에서 그냥 지나쳤던 나 자신과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고, 지나쳤던 타인들과 마침내 만나게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나는 글을 씀으로써 삶을 조금 더 열심히 바라보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그렇게 글감을 쌓아도 막상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등산에서 제일 어려운 코스가 침대에서 현관까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글을 쓸 때도 빈 페이지 앞에서 첫 타자를 치기 전까지가 항상 제일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쓴 글이 형편없으면 어쩌나 하는 자기 검열과, 잘 쓰고 싶은 욕심을 마주한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이경미감독이 말한 ‘쓰레기를 쓰겠어’의 다짐이다. 쓰레기라도 쓰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보다는 나은 어떤 것이 나오겠지.
작년 초까지 한창 열심히 서로의 마음과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함께 ‘공부’를 하던 친구들이 있다. 연말을 맞이하여 시간을 맞춰 화상통화를 하는데 두 시간 정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가 통화를 마무리할 때즈음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내년부터는 글도 좀 써보고 싶어요.” 마침 서로 ‘우쭈쭈’해줄 글쓰기 동료를 애타게 찾던 나에게 신기하게도 동료가 제 발로 찾아왔다. 나는 바로 반응했다. “그럼 저희 내년부터 글쓰기 모임해요!”
그렇게 해서 ‘우쭈쭈 글쓰기모임’ 채팅방을 만들었다. 채팅방이 열리자 한 멤버는 하미나 작가의 <고사리처럼 쓰기>라는 칼럼을 공유하였다.
“겨우내 땅속에 잠들어 있던 고사리들이 날이 따듯해지자 자라나기 시작했다, (...) 고사리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속도대로 모습을 갖춰간다. 고사리를 아름답고 완전하다. 그럴 의도를 갖고 있는 않은데도 그렇다. (...) 대체로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것은 숙련되지 않은 문장이 아니라 자의식이다. 내 글보다 내기대가 앞설 때 글쓰기가 즐거움을 잃고 괴로워진다. (...) 고사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간이다. 왜 지빠귀처럼 지저귀지 않냐고 누구도 묻지 않는 곳이 고사리에게는 필요하다.”
이 글을 읽고 다시금 느꼈다. 글을 쓸 때 필요한 것은 자의식을 내려놓고, 내 글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 ‘공간’이라고. 그렇게 이름을 바꿔 ‘고사리글방’이 탄생하였고, 나는 이 공간에서 자신만의 속도대로 우리가 모습을 갖춰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