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데이즈>

당신의 ‘완벽한 나날’은 무엇인가요?

by 김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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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영화 <퍼펙트데이즈>를 봤다. 주인공인 ‘히라야마’. 영화가 시작하고 한참 동안 히라야마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혼자 사는 작지만 아늑한 집에서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향한 후 단정하게 수염을 다듬는다. 식물에 물을 주고 난 후, 작업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집 앞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캔 뽑아 차에 탄 후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음악을 들으며 출근길에 오른다. 그가 출근하는 곳은 도쿄 시내의 공공화장실이다. 그는 공공화장실 청소부로 매일매일 묵묵히 일을 해나간다. 그를 낮춰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일의 주인이 되어 움직인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까지 거울로 비춰가며 꼼꼼히 청소를 하고, ‘더럽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일하면서도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는다. 점심시간에는 공원에 앉아 샌드위치를 하나 먹으며 카메라를 꺼내 나무와 햇살을 담아낸다. 그렇게 공공화장실 몇 군데를 돌며 청소하는 업무가 끝나면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으며 잠을 잔다. 다음날도, 다 다음날도 그의 일상은 똑같이 흘러간다. 유일한 일상의 변주는 그가 듣는 카세트테이프의 음악이다. 그날그날 다른 음악을 듣기는 하지만 그 마저도 사실 한정된 음악 내에서의 변주이다. 주말 일정 또한 정해져 있다. 일어나면 작업복을 빨래가방에 넣어 근처 세탁실로 간다. 일주일치의 빨래를 돌리는 동안 그는 동네 헌책방에 가서 책을 한 권 구입하고 빨래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는다. 소일거리가 끝나면 주말마다 가는 선술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으며 하이볼을 한잔 한다. 선술집주인이 가끔 불러주는 노래 또한 주말의 변주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는 그의 이런 일상을 보고 지루하거나 답답하고 혹은 외롭고 처량하다고 느낄 수 도 있다. 내가 이 영화를 몇 년 전에만 봤더라도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인공의 이런 단순하면서도 충만한, 절제되어 있고 정돈되어 있는 삶을 들여다보자니 그가 이런 평온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 겪었을 과거의 모습이 함께 보이는 듯했다. 예전에 읽은 어떤 책에서 작가는 ‘고독’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이 고독을 얻어내는데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렸다.’고. 이 고독은 그냥 얻어낸 것이 아니라고. 정돈된 일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품이 든다. 나에게 맞는 게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을 테고, 더할 것을 더하고 덜어내는 것을 덜어내는 데에는 많은 절제와 노력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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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그의 ‘완벽한 나날’ 속에 균열이 생긴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조카가 집을 가출해서 삼촌의 집으로 놀러 온 것이다. 원래 자던 곳이 아닌 쪽방에서 불편한 잠을 자고, 식물에 물을 줄 때도 평화롭게 주지 못하고 조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살얼음판을 걷듯 걸어 빠르게 물을 뿌린다. 그런가 하면 직장후배가 갑작스레 차를 빌려달라고 해서 후배의 여자친구를 태우고 예기치 못한 곳을 가는 일도 생긴다. 그리고 가장 큰 흔들림이 있었던 날은 주말에 단골 선술집에 갔을 때 일어난다. 선술집에 들어가니 사장과 그의 전 남편이 포옹을 하고 있었고, 주인공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편의점에서 대충 맥주 두 캔을 사서 강변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아까 봤던 전 남편이 나타나고, 둘은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샌가 함께 ‘그림자놀이’를 하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그리고 가장 일상이 무너진 것 같은 그날 주인공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향한다.


잘 닦아놓은 일상은 더없이 소중하다. 하지만 크고 작은 균열은 우리 삶에 언제든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날이 모여서 완벽한 나날들이 되는 것이다. 흠이 없어서 완벽한 날이 아니라 흠이 있기 때문에 완벽해지는 날들. 슬픔과 충만함이 공존하는 온전한 삶. ‘만족’이라는 말을 한자어로 쓸 때 ‘발 족’ 자를 쓴다고 한다. 완벽한 나날이란 우리가 얼마나 이 땅에 발과 마음을 붙이고 살아가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평온한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 그동안 나름대로 잘 닦아놓은 내 일상을 돌아보며 스스로 대견한 마음을 갖기도 하고, 흐트러지는 일상에 유난히 마음 힘들어했던 나를 돌아보며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닐,ㄹ 반성을 하게 되기도 한다. 스스로 대견해하기도 하고 반성도 하지만 일단 공중화장실을 정돈하는 주인공의 태도를 본받아 오늘도 내 주변을 정성스럽게 정돈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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