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공간을 나눈다는 것의 의미
3주 전쯤, 짧게 러닝을 하고 집에 가는 길, 붕어빵가게가 보였다. 집에 가서 씻고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뛰는 속도를 늦추게 했고, 붕어빵 앞에 서서 “ 붕어빵 2천 원어치요!” 하고 말하고는 계좌이체를 위해 핸드폰을 켰다. 갑자기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지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평소 빈혈이 있던 나에게 가끔 있던 일이었다. 잠시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는 바로 기억을 잃었다. 2-3분쯤 기절해 있었을까? 일어나 보니 나는 바닥에 누워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나를 둘러싸있었다.
“어머머 일어났네, 119 불러줄까요?”
바닥에서 눈을 뜬 나는 순간적으로 상황파악이 안 됐다. 마치 아침에 잠에서 깬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내가 왜 바닥에 있지 싶었다. 쓰러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는지 머리가 아파 머리를 잡으며 일어났다. ‘아, 나 러닝하고 있었지. 붕어빵 사려고 했지.’
“아니에요, 집이 바로 앞 이에요. 그냥 걸어갈게요…”
그렇게 집에 도착했는데 더 큰 통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갑자기 배가 아파서 20분 정도 식은땀을 흘리며 배를 움켜잡아야 했다. 겨우 통증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 얼른 진통제 3알을 털어 넣고 깊은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서 일어나서도 얼떨떨했다. 내가 기절을 하다니? 마침 아빠한테 전화가 와서 상황설명을 했다. 아빠는 (비건지향인 나에게) 바로 “어휴 그러게~고기 좀 먹어.”라고 하였고, 5분도 채 안되어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와서는 “안 되겠어, 너 집에 다시 들어와서 살아!”라는 말에 다시 식은땀이 났다.
정신을 차리고 SNS를 켜서는 스토리에 오전에 일어났던 일을 글을 써 올렸다. 잔소리를 들을걸 알면서도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굳이 SNS에 상황설명을 하는 가벼운 일들. 아마도 나는 타인의 걱정과 관심을 받고 싶었나 보다. 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글을 본 친구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그 친구의 진심 어린 걱정이 고마웠다. 통화가 마무리될 때쯤 친구가 물었다. “그런데, 혼자 있어서 괜찮아요?” 그리고 며칠뒤 만난 다른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다. “누구라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그 두 질문이 나에게는 좀 의아하게 다가왔다. 내가 분명 타인의 관심과 걱정을 바랐던 건 맞지만, 누군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그날의 상황을 생각해 봤다. 집에 돌아왔는데 20분 동안 배가 아파서 식은땀을 흘리던 그 아찔한 상황. 누군가 내 옆에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분명 상대방은 나를 걱정해 주었을 텐데, 오히려 그 상대방의 걱정까지 내가 다독여야 하는 상황이 솔직하게 말하면 좀 성가시게 느껴졌다. 잠에서 깨서 일어났을 때 ‘괜찮냐’고 물어보는 상대방에 ‘괜찮다.’고 대답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얼마 전 즐겨 듣던 팟캐스트에서 진행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가끔 거실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저한테 먼저 말을 걸거나 제 방문을 먼저 두드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하”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이 터졌다. ‘저거 완전 내 이야기잖아?’ 내가 타인과 얼마만큼의 공간을 나누고 싶어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거실에 누군가 있지만 내 방을 먼저 두드리면 안 되는 타인. 그런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본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터데이터스 황혼연애>에서 한 출연자는 데이트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말한다 “I don’t want my life to be less comfortable than it is now.” (저는 지금의 제 생활보다 제 삶이 덜 편안해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데이트할 상대를 찾겠다며 프로그램에 나와서는 저게 무슨 말이야?’ 싶으면서도 그의 말 안에서 나 자신을 봤다. 누군가와 항상 연결되어 있고 싶으면서도 격렬하게 혼자 있기를 바라는 유형의 사람들의 숙명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