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안에서의 모난마음
언젠가 들었던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하고,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성격이 급한 나는 항상 혼자서 빨리 가곤 했다. 하지만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함께한다는 것’의 가치는 몸소 느끼고 있다. 작년에 우연히 시작한 ‘매일 천천히’ 달리기 모임. 각자의 동네에서 5분 내지 10분씩 달리고, 서로를 격려해 준다. 요즘에는 그에 더해 매일 좋았던 일을 공유하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감사할 일을 찾게 해 주는 소중한 그룹이다. 그리고 올해 초부터 시작한 ‘고사리 글방’ 글쓰기 모임. 서로의 글을 평가하는 대신 우쭈쭈 해주며 일주일에 한편씩의 글을 공유한다. 꽤 오랫동안 ‘글태기’가 왔던 나에게 다시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을 주는 모임이다. 항상 ‘잘’ 쓰고 싶은 욕심을 나 스스로에게 들키곤 한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솔직한 타인의 글을 보면서 내가 쓴 글을 돌아보게 해 준다. 또한 비건식단을 공유하며 오늘도 맛있는 비건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비건모임, 모닝루틴을 공유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미라클모닝모임, 각자 우쿨렐레 연습 영상을 올리며 연습 자극을 주고 하루에 한 번 음악을 선물해 주는 우쿨렐레모임. 혼자서는 지레 지쳐 포기할 만한 일들을 서로 기대서 이끌어주는 소중한 모임들이다.
이 모든 모임과 사회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닮아있다. ‘함께’, ‘더불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더 잘 나가는’, ‘더 생산적인’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얼핏 보면 그들이 이런 모임,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도 구성원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며, 나아가 실제로 그들이 그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더더욱이 아니다. 구성원사이에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돌보는 이들, 앞서 나가는 사람을 응원해 주는 이들, 느리더라도 천천히 함께 가고자 하는 이들. 그들 덕분에 이 사회는 안전하게 지탱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를 돌보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기에.
여기까지 나의 서론과 변명이 길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의 자아와 앞서나가고자 하는 나의 자아가 가끔 출동하는 고백을 오늘은 하려고 한다. 요즘, 매주 월요일마다 출근 전 망원동에 가서 훌라를 배우고 있다. 우리 집은 서울의 동쪽 끝으로,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서울을 가로지르는 쉽지 않은 길이다. 이 때문에 일요일 저녁에 망원동에 사는 지인네 신세를 지면서 까지 이번에 하는 곡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총 6회 차 수업 중 지난주 월요일 4회 차 수업에 참석하였다. 설연휴 전 전체 곡의 80% 정도를 마무리했다. 지난 3회 차 수업에서는 상당한 양의 진도를 나갔는데, 설 연휴 동안 빠지지 않고 매일 아침 한 번씩 연습을 했다. 그리고 2주 만의 수업. 지도자가 설명하였다.
“제가 지난주 진도를 착각해서 생각보다 많은 양을 나갔어요. 그동안 빠지신 분들도 많으니 오늘은 새로운 진도를 나가지 않고 천천히 복습할게요.”
멀리서 왔는데 새로운 진도를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 내심 서운하기도 하였지만, 더 꼼꼼히 다듬으면 좋으니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동작을 다시 짚어보고, 순서를 외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순서를 되짚는 일이 한 시간 반 내내 지속되자 하품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모난 마음이 슬슬 올라왔다. ‘나는 수업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데, 빠진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다시 진도를 나가는 게 맞나.’. ‘나는 설 연휴 동안 열심히 복습해 왔는데..’
더군다나 나는 훌라를 하며 이 시간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실제로 춤을 추는 것보다 모든 동작을 박자에 맞추어 영어 문법을 외우듯 따라 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즐겁지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질문이나, 못 따라오는 부분을 반복하다가 수업은 시간을 초과해서 끝났고, 한 시간 이상의 길을 돌아서 다시 출근해야 하는 나는 조금 일찍 나왔음에도 역에 가는 15분 정도 거리의 길을 영하 10도의 기온에 헐레벌떡 뛰어서 가야 했다. 역에 도착하니 오면서 들이마신 칼바람이 무색하게 땀이 흘렀고, 지하철 안에서 두꺼운 옷을 벗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짜증은 깊어져만 갔다.
동시에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한다고, 조금 더 빨리 한다고 그 시간을 답답하게 여긴 나 자신이 못나보였다. 그중에는 몸이 안 좋아 지속적인 연습을 할 수 없었던 분도 계셨을 테고, 내가 아닌 사회를 위한 일을 하다가 수업을 빠진 분도 있었을 수 있었을 테고, 연휴 동안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분도 있었을 테다. 그런데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내가 이렇게 또 앞서서 혼자 나가려고 하는 모습에 마음이 힘들었다. 저녁까지 내내 기분이 안 좋았다. 내 안에 두 가지 자아가 화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날의 끝에는 조금 더 너그러운 자아가 결국은 이겼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이 날은 그냥 못난 내가 남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