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길 위의 주인은 누구인가?

by 김애정


최근에 친언니가 차를 바꿀 생각을 하면서, 원래 쓰던 차를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한동안 ‘내 차’를 너무 소유하고 싶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언니한테도 언제 차를 바꿀 거냐고 먼저 묻기도 하였고, 중고차라도 살까 싶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그런 욕구는 사라지고 분수에 맞게 살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중 언니가 차를 준다니,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차를 갖고 싶은 이유와 망설임들이 팽팽하게 대치를 시작했다.

작년 초, 오스트리아 여행 중 찍은 자전거도로 1

제일 먼저, 내가 정말 차가 필요한가?부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집에서 직장이 단 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차로는 8분/버스로 15-20분/ 도보로 30분/ 내가 대부분의 출퇴근 시 이용하는 자전거를 이용해도 집에서 15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다. 매일아침 2km 정도 달리기를 하는 걸 생각하면 심지어 매일 달려서 가도 되는 거리이다. 그래서 출퇴근 시 내가 자동차를 이용할 일은 없다. 그렇다면 주말은? 사실 한-두 달에 한 번 여행 가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나의 주말은 나의 집 혹은 서울시내 안에서 보낸다. 복잡한 서울시내를 주말에 굳이 차를 이용할 일은 많이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또 다른 생각이 스친다. ‘내가 차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이나 서울시내에서 보내는 것이 아닐까? 차가 있다면 나의 생활반경이 넓어지지 않을까?’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차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적지 않은 여성들이 본인이 직접 운전하기보다는 애인 혹은 남편의 차에 실려 다니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한 팟캐스트에서는 평생을 아빠의 차에만 타고 다니던 엄마가 늦은 나이에 운전을 시작하면서 못해본 경험을 하고, 해방감을 느낀 사연을 들은 기억도 난다. 가끔 어딘가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교통이 불편하면 귀찮아서 포기하거나, 차가 있는 친구의 스케줄에 맞추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최근에 만난 지인은 차량양수를 적극찬성하며 명절에 차를 끌고 가서 원하는 만큼의 책을 차에 싣고 빌려오는 쾌감과, 새벽에 갑자기 바다 가보고 싶어 차를 끌고 여행을 떠난 소소한 기쁨을 말해주기도 하였다. 또 다른 지인은 차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장 큰 망설임의 이유는 아무래도 돈이었다. 내가 경제관념이 철저한 편도, 돈을 현명하게 모으는 편도 사실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2년 동안 직장을 그만두고 물가가 비싼 뉴욕으로 일 년 살기를 떠나지도, 직장을 휴직하고 3개월 동안 해외여행을 다니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최근 동네친구의 투룸에 다녀온 이후로 이 정도면 혼자 살기 딱 좋다고 생각했던 나의 ‘1.5룸’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내가 제일 사랑하는 공간이자 정말 감사한 공간이지만 조금 더 넓은 공간에 대한 욕심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돈을 조금 더 모아보자 싶던 차였다. 그런데 차를 고민하기 시작하니 돈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 차량을 소지하게 되면 매달 관리비에서 3만 원씩이 추가로 나갈 테고, 각종 보험료와 유지비를 생각하니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아무래도 무시할 수 없는 기후위기문제가 있었다. 작년 말에 읽은 호프자런의 책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에도 차와 비행기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사실 이 책뿐만 아니라 그간 읽었던 환경 관련 책에서도 끊임없이 들었던 탄소발자국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차들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 한참 머리가 아팠다. 그래, 비행기야 아직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고 쳐도, 1인 가구로 사는 내가, 필요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차를 모는 것은 환경적으로, 어쩌면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은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내게 우주가 말이라도 걸듯 최근 듣게 된 팟캐스트에서 일본 경제학자인 우자와 히로후미가 쓴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이라는 책을 다루었다. (듣기로) 이 책에서는 말 그대로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동차 운전자는 차와 연료비만 지불할 뿐, ‘자동차로 인한 피해’로 인한 비용에 대해서는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음공해, 환경파괴, 안전 위협,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보행권’이 그것이다. 또한 녹지대를 도로로 대체하며 생기는 부가적인 피해에 대한 것도 사실은 소외되는 보행자들이 부담을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대부분이 도시에 있는 ‘길’의 아주 많은 부분은 차가 다니는 도로로 이루어져 있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다니는 인도는 좁은 곳이 많고, 자전거 도로는 한정적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경우 자전거도로의 대부분은 기존의 인도를 자전거 도로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도로교통법상 자전거이용자는 자전거도로가 없을 경우 차도를 이용해야 하는데(13세 미만, 65세 이상 노약자제외), 차도에서 자전거로 운전을 하는 것이 나의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이다 보니 나부터도 인도를 이용하게 된다. 즉, 나도 보행자들을 위협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작년 초, 오스트리아 여행 중 찍은 자전거도로 2

팟캐스트에서 호스트들은 개인의 경험을 추가로 이야기한다. O리단길에 살고 있는 호스트 1은 작은 생활공간이었던 지역이 관광지화가 되면서 찾아오는 관광객으로 주차공간이 부족해지고, 지역에서 어린이공원을 없애고 주차공간을 확보하자는 논의가 있어 논란이 되었던 것을 말한다. 또한 호스트 2는 업무상 필요에 의해 차를 쓰지만, 환경적인 고민이 깊어 최근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로 차를 바뀌었더니 실제로 대중교통보다 경제적이라 생각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는 사회가 얼마나 도로의 주인을 ‘보행자’가 아닌 ‘차량’으로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이다. 계속해서 사회는 차를 이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것은 비단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길 위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내용이다.


이렇게 듣고 보니, 혹은 이렇게 쓰고 보니 차를 양수받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고민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이 여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추가로 들면서 여성들이 ‘사회적인 공간’을 더 적게 차지하게 될까 봐 걱정도 된다. 그래서 이 애증의 차량을 어찌한단 말인가? 오늘도 당장 해결하지 못할 고민을 풀어놓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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