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하는 명상, 뜨개

책이 인생을 바꾸셨다고요? 뜨개를 안 해보셨군요!

by 김애정

*글의 소 제목인 '책이 인생을 바꾸셨다고요? 뜨개를 안 해보셨군요!'는 <아무튼, 뜨개> 중 일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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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뜨개’를 접한 것은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이다. 2019년에 뉴욕에서 지내던 당시, 처음 계획한 1년이 지나고 조금 더 머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약 4개월을 머무는 동안 먹고 싶었던 한국음식들, 보고 싶었던 가족들과 친구들을 볼 약속을 미리 잡았다. 그러면서도 마냥 놀 수만은 없는 특유의 성향 때문에 뭘 배워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코바늘을 시작했다. 선생님을 찾아가서 코 잡는 법부터 시작해서 파우치를 완성하고, 그다음으로는 짧은 뜨기만으로 가능한 가방을 하나 만들고, 이내 무늬를 넣은 가방까지 만들어서 메고 다녔다. 그렇게 배운 코바늘로는 종종 친구들에게 코스터를 만들어서 선물하기도 하고, 파우치가 필요하면 만들어서 쓰기도 하였으며, 지난 12월 내란사태당시에는 촛불을 떠서 거리로 나가기도 하였다.


그러다 올 겨울, 처음으로 대바늘을 접했다. 대바늘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지만 막상 시작은 못하고 있었는데, 작년부터 함께하던 바느질모임에서 대바늘을 하는 친구가 합류하면서 나도정말 이제 시작해봐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뭐든 아날로그로 배우기 시작해야 편한 나는 대바늘을 오프라인으로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동네 가까운 곳에 ‘뜨개방’ 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 사장님 한 분이 운영하는 곳으로, 정말 동네 사랑방처럼 보였다. 바로 전화를 해서 뜨개를 배울 수 있는지 물어보니 실을 그곳에서 사면 뜨개를 가르쳐준다는 것이었다. 한걸음에 달려가서 실을 사고 뜨개를 시작했다. 스웨터를 뜨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엄청 빠르게 코를 잡아주셨는데, 너무 빨라서 나에겐 손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기본적인 코 잡기/ 겉뜨기/ 안뜨기 정도는 알고 있던 상태라서 말씀해 주신 것에 따라서 열심히 코를 쌓아 올렸다. 하지만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르듯 이미 뜨개 경험이 풍부하고 수십 년을 익숙하게 배워온 선생님에게는 뜨개가 너무 당연한 것인지 많은 부분을 나에게 설명해 주시기보다는 가져가서 직접 해 주시기 일쑤였다.


그렇게 ‘이게 맞나?’어리둥절할 때쯤 인터넷에서 배색 가디건 세트, 즉 필요한 실과 동영상을 제공하는 도안을 함께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뜨기와 겉뜨기 만으로 하나의 실이 쌓여서 옷의 형태가 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조금 지겨울 때쯤 ‘그래, 이거다!’ 싶었다. 인터넷 동영상을 보며 하나하나 따라 하고 다른 색의 색도 섞어가며 다시 실을 엮어가다 보니 무늬가 다른 색의 실이 모여 무늬가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지난 설 명절 중 하루는 뜨개모임에 참가해서 10시간 동안 뜨개만 하다가 나온 적이 있는데, 그날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카디건이 형태가 조금 갖춰서 소매가 분리되어서 ‘입어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게 또 그렇게 신이 났다.


뜨개에 관심이 가면서 도서관에 가서도 자연스레 뜨개에 관련된 책을 빌려보기도 하였는데, 그중 한 권이 <아무튼, 뜨개>이다. 당시에는 뜨개를 막 시작했을 때라 읽으면서 공감보다는 ‘와, 이런 세계이구나.’라는 신비로움이 더 컸다. 이 책에서 작가는 애써 뜬 코를 다 푸를 때(일명 ‘푸르시오’) 의 슬픔을, “책이 인생을 바꿔놓으셨다고요? 뜨개를 안 해보셨군요”라는 유쾌함을, 뜨개를 시작하면서 배운 ‘힘 빼고 사는 법’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또한 작가는 뜨개가 뭔가를 생산해 내는 것 이기 때문에 자신이 뜨개를 좋아하나?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였는데, 여기서는 약간 뜨끔해지기도 하였다. (생산성에 집착하는 나, 이렇게 일관적이라고?)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뜨개가 ‘손으로 하는 명상’이라는 작가의 말이다.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만 했는데 그 말이 와닿는 요즘이다.


최근에 동네 뜨개친구와 함께 모비스웨터 뜨기를 시작했다. 경험이 있는 동네 뜨친이 모비스웨터를 뜨려고 실과 도안을 주문했다는 말에 모비스웨터를 찾아봤는데 너무 예쁘지만 아직 내가 뜨기엔 난도가 있어 보였다. 여러 가지 무늬와 기법이 혼재된 스웨터였다. 그럼에도 ‘함뜨(함께 뜨기)’를 하고 싶은 욕심에 나도 덜컥 도안과 실을 주문했다. 아닌 게 아닌지라, 막상 실과 도안을 받고 보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뜨개친구를 만나서 각종 무늬 뜨는 법을 배우고 스와치(10cm*10cm의 편물표본) 다 뜨고 보니 여기저기 실수투성이지만 그래도 대략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본격적인 뜨개를 시작했다. 110코를 잡았는데, 2단으로 넘어가 보니… 왜 109코가 되어있지?. 다시 시작이다. 두 번째 시도에서 성공! 그리고 단을 조금씩 쌓아가다 보니 무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뿌듯함도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어딘가 무늬가 뒤틀어져 있다. 차트도안을 볼 때 겉 뜨기는 오른쪽 방향, 안뜨기는 왼쪽방향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을 잊고 중간에 같은 방향에서 시작한 것이다. 또다시 ‘푸르시오.’ 애써 시간을 투자해 쓴 것을 쭉쭉 푸를 때는 정말 가슴이 아리다. 아.. 뜨개는 정말 집중해서 해야 하는 것이구나. 다시 집중해서 이 두 손과, 내 앞에 있는 실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한 단, 한 단을 쌓아간다. 그러면 또 아름다운 무늬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 말이었구나.. 뜨개가 손으로 하는 명상이라는 것이. 나는 또 이렇게 눈앞의 실과 싸우지 않고 잘 지내자고 하는 법을 배워간다.


“뜨개는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습니다. 고민에 답을 주지도 않지요. 그저 내면을 질서 있게 할 뿐입니다. 손끝에서 바늘을 타고 걸어 나온 생각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잊게 해 주고, 부딪쳐야 할 일이라면 집중할 힘을 주는 것이 뜨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뜨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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