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나를 달래주는 달리기
이상하게 피로한 요즘이다. 육체적 피로라기보다는 정신적 피로 같다. 정신적으로 지치니 몸도 자연스레 조금 무기력 해진다. 지난 일요일 저녁, 침대에 누우면서 ‘아, 내일 월요일이네. 지겹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렇게 들으면 ‘다들 그런 거 아닌가?’ 싶겠지만 회사에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보다 출근시간이 늦은 나는 일어나도 바로 출근을 하지 않으니 직업을 바꾸고 난 후로는 일요일에 월요일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 자고 일어나서도 이번 주에 해야 할 일들, 해야 할 운동들이 생각나면서 좀 지겨운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서 바로 씻고 평소처럼 거실 의자에 앉아서 잠시 나와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분명 내가 지쳤다는 신호였다. 그런데 사실 ‘해야만 하는 것’은 없었다. 물론 직장에는 나가야 하지만, 추가로 하고 있는 과외는 얼마든지 취소할 수 있고, 운동도 안 갈 수 있다. 가끔은 어디까지가 성실함이고, 어디까지가 강박인지 잘 모르겠다. 그 경계를 그때그때 잘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이겠지만 말이다. 보통은 힘들어도 나태한 정신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운동이 가기 싫어도 일단 다녀오면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니까. 한 번 안 가면 또 안 가고 싶어 지니까. 그냥 가는 거다. 그런데 이번 주는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복까지 안에 입고 출근을 했지만, 저녁에 복싱장에 전화를 걸었다. 일주일 쉬고 돌아갈 테니 연장해 달라고. 그래도 아직 달리기는 지겹지가 않아서 다행인 마음이다.
그렇게 월요일 저녁, 집에 와서 그냥 야식을 먹고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보다 더 일찍 잤는데도 다음날 아침에는 늦잠을 잤다. 거의 9시 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별로 개운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정말 묘한 꿈까지 꾸었다. 꿈속에서 낮선장소에서 촉감명상, 소리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이 갑자기 시간에 쫓겨서 엄청 빠르게 명상을 마무리하느라 제대로 진행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난 후에 그 선생님의 태도도 너무 무례했다. 너무나 명확한 꿈이었다. ‘이 순간에 집중하려는 나’에게 ‘비판적인 내’가 허용을 못하고 있는 꿈. 나의 쉼을 방해하는 것 또한 나 자신이었다.
매주 화요일마다 평소보다 늦게 출근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서 전 날 저녁에 내일은 공원으로 조금 더 멀리 달리기를 하러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아침이었다. 그런데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그냥 평소처럼 동네 달리기나 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안 가봤던 공원이라 가는 길이 멀게 느껴져서 조금 귀찮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는 사이 15분이 흘렀다. 그 공원은 동네 공원이긴 하지만, 말이 동네이지 사실 지도상 걸어서 50분/ 버스를 타도 25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거리로 따지고 보면 2.7K 여서, 아침에 15분이면 뛰는 거리이기도 했다. 15분 고민하는 사이에 이미 갔어도 도착했을 거리인데 뭐 하고 있는 거람.
거울을 한 번 보고 “가자!”라고 소리 내서 말한 후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정말 15분을 뛰니 도착했다. 도착하니 아직 벚꽃도 예쁘게 피어있고, 테라스가 있는 한적한 카페도 있어서 다음에는 텀블러와 책을 들고 와서 쉬다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둘레길’이라고 쓰여있는 곳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언덕은 달리기의 스승이라고 했던가.. 이곳에서 스승님을 만나고 왔다. 계속해서 펼쳐져있는 언덕길이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계속 뛰다 보니 또 적응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천천히 계속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북한산도 보이고, 도봉산도 보이고 저 멀리 우리 동네의 윤곽도 보였다. 우리 집이 정말 멀게 느껴졌는데, 이 거리를 뛰어서 온 스스로가 대견한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하늘에 귀여운 구름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잠깐 앉아서 구름모양도 보고 새소리도 가만히 듣고 있으니 지친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전망대까지 가니 딱 뛰어서 30분 거리였다. 잠시 쉬다가 내려가는 길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런 언덕길 러닝도 처음이니만큼 내리막길 러닝도 처음이었다. 내리막길이라고 좋을 것 같지만, 무릎이 신경 쓰여서 더욱 조심히 뛰었다. 둘레길을 지나 공원아래까지 내려오니 올라오면서는 보지 못했던 ‘근심 먹는 우체통’이 있다. 느린 우체통은 많이 봤지만, 근심 먹는 우체통이 라니. 너무 귀엽고 기발하다. 빨간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엽서와 펜이 있다. 뭐라도 써볼까 펜을 집어 들었는데, 딱히 근심이 있지는 않다. 그냥 펜을 내려놓고 다음에 근심이 있을 때 다시 와야지 마음먹는다. 이렇게 근심이 있을 때 올 수 있는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 마음이 든든해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공원을 빠져나와 집 방향으로 계속해서 뛴다. 그러다가 냉동 감자빵을 파는 가게 가 눈에 보여서 잠시 또 멈춰 들어간다. 냉동 감자빵을 하나 구입하니 사장님이 묻는다. “집까지 얼마나 걸리세요?” 아마도 냉동팩을 넣어야 할지 물어보시는 것 같다. “10분 정도 걸려요. 뛰어서” 마지막에 ‘뛰어서’라는 말에 사장님이 빵 터지셨다. 내가 달리는 중이라고 생각을 못하셨던 것 같다. “아, 저 지금 뛰고 있었거든요. 그냥 가지고 가면 될 것 같아요.” 뛰어다니니 환경도 보호하게 되고, 역시 달리기는 좋은 운동이야 하고 생각한다.
감자빵을 한 손에 들고 달리는데, 은근히 무겁지만 열심히 뛰어서 집에 도착한다. 집에 오니 딱 1시간이 채워진다. 방금 사온 감자빵을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데워진 감자빵을 먹으니 진부하지만 ‘행복은 멀리 있지 않구나..’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달리기를 함께하는 친구들 채팅방에 사진과 달리기 기록을 공유하니 다들 너무 좋아해 주고 ‘저도 산책 가야겠어요’ 하고 하며 정말 산책을 나가서 꽃사진을 공유한다. 공유받은 노란 꽃길이 너무 예뻐 하루가 조금 더 풍성해진다. 오늘 뛰쳐나간 나, 너무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