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최대거리를 확장하다
지난가을부터 시작한 달리기. 가을을 충분히 만끽하고 보니 겨울이 찾아왔다. 초반에는 재미라기보다는 ‘30일 5분 달리기’ 챌린지를 해냈다는 뿌듯함, 그리고 매일 달린다는 그 감각과 에너지가 좋아서 달리기를 지속했다. 그러다 겨울이 왔고, 겨울이라고 달리기를 멈추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영하의 날씨에도 달리고, 한파에도 달리다 보니 겨울도 통과를 했다. 껴입고 나가면 5분 만에 금방 몸이 달아올라 겨울 달리기가 은근히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달리기 너무 좋은 봄이다. 봄이 시작하면서 여기저기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겨울 동안 10분, 15분씩으로 늘렸던 달리기를 최근에는 20분, 3K 정도로 늘려서 달리고 있었다. 또 그간 5K, 10K도 한두 번 달리면서 대회에도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이미 유명한 마라톤은 신청도 끝난 상태였고, 그러다 <제1회 서윤복 마라톤 대회>를 알게 되어 친구와 함께 신청했다. 처음에 신청할 때만 해도 10K 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대회가 다가오는 시점에 10K 러닝을 두 번 한 상태였기에 거리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자연스레 기록을 좀 세우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6.3 페이스정도로 10K는 편안히 달렸기 때문에, 조금 더 단축해서 60분 이내로 들어오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일단 대회 전 날,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찍 자려고 마음먹고 회사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집에 왔다. 집에 오는 길에 다음날 먹을 바나나 한송이를 사 왔다. 그런데 너무 간단히 먹은 건지 집에 오니 배가 고팠다. 고작 10K 뛰면서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내일 달리려면 탄수화물을 좀 먹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카보로딩이라고 하던데’ 싶었다. 그래서 냉동밥을 하나 꺼내 김과 반찬과 함께 밥 한 그릇을 싹 비우고, 대회티셔츠에 배번호를 부착하고 필요한 준비물들을 테이블에 꺼내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대회 2시간 전에는 식사를 마쳐야 한다는 말에, 일어나자마자 아직 정신도 덜 깬 상태에서 감자빵과 바나나를 먹고 준비를 시작했다. 올림픽공원역에서 친구와 만나서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지만, 다행히 많은 양은 아니어서 전날까지 심했던 미세먼지도 쓸어주고 오히려 좋았다. 도착해서 짐을 맡기고, 웜업 겸 5분 정도를 가볍게 뛰고 난 후 스트레칭을 하고 대기선으로 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입은 옷이나 차림새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고, 나이 드신 분들도 꽤 보여서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앞쪽에는 하프를 뛰는 사람들이 먼저 있었고, 우리는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차례! 파이팅을 외치며 각자의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 함께 우르르 뛰니 조금 벅차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올림픽공원에는 개나리들이 만개해 있었고, 비는 계속해서 내렸지만 시원한 정도였다. 중간에 언덕이 잠깐 나왔지만 어렵지 않게 통과를 했다. 도착해서 이어폰을 안 가져온 걸 알고 조금 걱정했는데, 사람들 뛰는 구경도 하고, 주변 경치도 감상하고, 같이 뛰는 사람들 이야기도 조금씩 엿들으며 뛰다 보니 금방 반환점을 돌았다. 중간중간 페이스를 확인했는데 5분 후 반대의 페이스가 계속유지가 되는데 평소에 달리기를 할 때보다 특별히 더 힘들지는 않아서 이런 게 흔히 말하는 ‘대회뽕’이라고 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반환점을 돌고부터는 반대편에 오는 사람들을 계속 스캔하며 뛰었다. 뒤에서 오고 있는 친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계속 찾는 데도 보이지가 않아서 이미 지나쳤나? 싶을 때쯤 친구가 보여서 이름을 부르고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지나갔다. 그게 정말 큰 힘이 되어서 계속 웃음이 났다. 그리고 7K, 8K… 이제 9K에 도달하자 조금 막판 스퍼트를 내보자 싶었다. 9K 지점부터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너무 힘들어서 걸어서 끝까지 완주해 내는 사람들과 막판 스퍼트를 내는 사람들. 나도 속도를 조금 더 올려서 4분대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1K면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속도를 높여서 뛰기에는 은근히 긴 거리였다. 더 이상 코호흡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중간에 살짝 속도를 낮추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금 더 힘을 내서 반환점을 통화했다. 57.05초. 사실상 첫 기록이었다. (앞에서도 말하긴 했지만, 대학생 때 10K에 참여해 본 적은 있으나, 기록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끝나고 먹은 순댓국과 소주는 기억이 난다.)
첫 대회에서 60분 안에 들어온 게 뿌듯했고, 사실 그것보다는 60분 내내 진짜 즐겁게 뛰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지난가을부터 약 180일간 짧지만 매일 뛰면서 닦아온 유산소 기반이 결과를 내준 것 같았다. 정말 즐기면서 뛰다 보니 기록이 따라왔다. 물론 아주 좋은 기록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달리기 경력 7개월 차 치고는 좋은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서둘러 가방을 찾고 친구를 맞이해 주러 결승선 근처로 돌아갔다. 기다리고 있는데, 하프 1등 선수가 막 뛰어오기 시작했다. 1시간 16분의 기록. 와. 남들이 10K를 뛰는 시간에 두 배의 거리를 달려서 들어오다니 대단하고 신기했다. 이어서 들어오는 2,3위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하는 사이 멀리서 뛰어오는 친구도 보여 얼른 카메라를 켜서 동영상을 찍어주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먼저 달리기를 시작하고, 한 번 뛰면 나보다 훨씬 먼 거리인 7K, 8K씩 뛰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10K는 한 번 도 뛰어본 적이 없어서 대회전에 회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뛰어보니 너무 뿌듯하고, 신나서 우리는 “더 뛸 수 있을 것 같아!”라고 꺄르륵 웃으며 대화를 했다. 우리 둘 다 각자의 경계를 조금씩 늘린 것 같아서 뿌듯한 시간이었다. 메달을 받고 목에 걸고 사진을 찍으며 기념을 하고 첫 10K 대회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날,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날이 맑아졌다. 온도도 적당하고, 미세먼지도 오랜만에 ‘매우 좋음’인 귀한 날이었다. 한 달 전쯤 큰언니가 캠핑장을 예약했었는데, 비 예보가 있어서 취소할까 하다가 그냥 가기로 한 일정이었다. 그런데 날이 너무 좋아 다들 취소하지 않길 잘했다며 맛있는 음식도 먹고, 다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저녁으로는 떡볶이와 튀김을 먹었는데, 날이 너무 좋아서 낮부터 ‘저녁에는 근처 하천에 가서 좀 오래 달리기를 하면 좋겠다.’ 싶었던 터였다. 그래서 뛰기 위해서 저녁은 좀 덜 먹고, 사간 맥주는 ⅓ 캔만 먹고 좀 조절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9시 정도라서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요즘에 계속 10킬로 이상 뛰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오늘이 저녁공기도 좋겠다 시간도 있겠다 완벽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5K를 한번 뛰어보자 싶어서 중랑천으로 가서 일단 무조건 8K를 뛰어서 직진하기로 마음먹었다. 10킬로까지는 뛸 수 있을 테고, 그 이상 뛰다가 힘들면 걸어오던지 자전거를 타고 오던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의 부담감을 내려놓았다. 초반 3K 정도까지는 저녁 먹은 게 아직 소화가 완전히는 안 됐는지 조금 더부룩했는데, 이후부터는 바람도 시원하고 달리는 사람도 많아 천천히 달리기에 좋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8K 지점이 되어 돌아왔고, 10K까지도 체감상 금방 달려서 이제 10K 거리에 대한 심리 장벽은 무너진 듯싶었다. 그래서 이대로라면 15K도 금방 달리겠지 싶었는데, 12킬로쯤 되니 발바닥에 피로가 느껴졌다. 전날 대회에서 평소페이스보다 빨리 달린 탓에 아침에 일어났을 때 경미한 허벅지 근육통과 발바닥 피로가 느껴졌었는데, 그 피로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고 찾아온 듯했다. 그래도 얼마 안 남았다 생각하고 계속 달리는데 14K 쯤 왔을 때는 대퇴부에도 피로가 느껴졌다. 부상으로까지 이어질 만한 통증은 전혀 아니어서 1K를 더 뛰고 15K를 달렸다. 나머지 1K는 걸어갈 생각이었는데,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생각에 그냥 달려서 16K를 채웠다.
집에 오는 길 마지막 신호에서 한번 멈춘 게 전부라 15K는 정말 쉬지 않고 달렸는데, 여태까지 달린 것 중 가장 오래 달린 기록이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5K를 내가 뛸 수 있을까? 생각했다면 못 뛴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뛰니까 뛰어진다. 최근 달리기 영상을 보다 보니 마라톤이 너무 재미있어서 언젠가 하프라도 먼저 뛰어보고 싶었는데, 15K를 뛰고 나니 21K도 이제 뛰면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달린 것들이 적금처럼 쌓여서 이렇게 보상을 해주는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그 달리기가 전혀 고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달리면서 주변 풍경도 많이 담았고, 몸상태도 여러 번 체크하고, 이번 주 회고도 해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현재에 집중하며 즐기는 달리기를 했고, 이 즐거움이 앞으로 계속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