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돌아보는 '나'라는 어른에 대하여
최근, 김소영작가의 <어떤 어른>을 읽기 시작했다. 2020년 출간된 작가의 전작인 <어린이라는 세계>를 정말 인상 깊게 읽었었다. 당시 이 책을 읽고 내가 정말 어린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구나를 느꼈다. 나도 한때는 어린이였는데 너무 어른의 삶에 찌들어서일까. 그런데 그런 생각도 잠깐이었던 것 같다. 전반적인 이해도는 높아졌지만 어린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까지는 바뀌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 친구가 <어떤 어른>을 주어서 읽기 시작하자마자 또 마음 한쪽이 찔려왔다.
김소영작가는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책의 초반, 아이들의 등원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칠판에 아이들의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도 적었다, 역순으로도 적었다가, 랜덤으로도 적었다가 바꾸어가며 아이들이 아무도 서운하지 않도록 배려해 준다. 그리고 등원시간에 일찍 오는 아이를 내다보며 들어오도록 안내한다.
첫 부분부터 읽으면서 부끄러워진다. 나 또한 초등학생아이들에 둘러싸여 일하고 있다. 어학원에서 일하며 매일 아이들과 마주한다. 등원할 때부터 소리를 지르며 들어오는 학생에게는 처음 보자마자 하는 말이 ‘목소리를 낮추자’이다. 마커를 들고 칠판에 낙서를 하려는 아이에게 ‘마커는 만지지 마라’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처럼 자신의 이름이 제일 아래에 있다며 서운함을 내비친 아이도 있었지만, 내 편의를 위해 그냥 바꾸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보통 아이들은 학원버스를 타고 15-20분 전에 도착한다. 그런데 가끔 40분씩을 일찍 와서 앉아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 등원 전 수업시간은 수업준비 시간이기도 하고, 그 시간을 이용해서 학부모 상담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아이가 와 있으니 신경이 쓰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말하기 미안해서 그냥 앉아있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맞이할 때 그 아이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표정이 굳어있는 스스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이 시간은 선생님이 수업을 준비하거나 전화를 해야 하는 시간이라, 20분 전부터 입장을 해달라고. 그리고 아이들을 기계적으로 대하는 스스로를 볼 때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라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등원하면 정말 밝은 얼굴도 마주하고, 쉬는 시간에는 마커로 낙서도 하며 놀게 하곤 했다. 그런데 놀고 나서 망가져있는 마커, 아무 곳에나 던져놓은 마커, 대충 닦아놓은 칠판을 보고는 마커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매번 숙제를 안 해오는 아이가 나를 보고 첫마디가 “오늘도 숙제 안 했어요!” 이면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을 땐 ‘좋은 어른’이기는 쉬웠다. 만나는 아이들이 많지 않으니 지하철에서 배려해 주는 어른, 거리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어른, 카페에서 시끄러운 아이에게 눈길을 일부러 주지 않고 아이니까 당연한 거라며 생각하는 어른. 나도 이런 어른이었는데.. 아이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과 나는 멀어져 있었다.
작가의 첫 책인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의 죄책감을 갖고 책을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책인 <어떤 어른>을 읽을수록 내 모습이 조금은 싫어진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아이들을 마주하는 내 모습을 보면 또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다.
아이들에게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많이 놀라고 하고 싶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학원 커리큘럼에 따라 정해진 진도를 따라가느라 바쁜 나는 늦는 아이들을 보채고, 숙제를 안 해오는 아이는 혼내고, 말을 많이 하는 아이는 입을 다물게 시킨다. 피곤한 기색으로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가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요구한다.
마침 오늘은 스승의 날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첫 번째 수업의 아이가 웃으며 “Hello, teacher~” 하고 인사를 하며 캐러멜과 손 편지를 건넨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니 번역기를 돌려서 영어로 편지를 써 준 마음이 너무 고맙다. 그 아이는 내 수업이 재미있고, 선생님이 좋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같이 공부하고 싶다고. 그리고 뒤 이어 적지 않은 아이들이 직접 꾸민 편지, 카네이션, 쿠키.. 등을 건넨다. 고맙다는 말을 나는 “고마워, 근데 다음부터는 이런 거 안 줘도 돼.”라고 하고 만다. 말하자마자 아차 싶다. 얼마 전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사들고 집에 갔더니 엄마의 첫마디가 “요즘에는 꽃 안 산다던데~”라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나는 이제 그런 말이 익숙해서 ‘아이고~또 엄마 고맙다는 말을 이렇게 하네~’ 싶지만, 아이들에게는 내가 너무 배려 없이 말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는 문제를 푸는데 ‘This is hell’, 여기가 지옥이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너네가 지옥이라고 생각하면 지옥인거지. 다 너희의 마음에 달려있는 거야. 너네가 힘들다고 해서 지금 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아.”라고 말했다가 “선생님, T 예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휴, 쓰고 보니 나도 나다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 나는 이런 어른인 것이다. 중요한 건 더 나은 어른이 되는 것. 뼈가 아프지만 마저 책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