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선생님이 되었다.

스승의 날을 돌아보며

by 김애정

내가 처음 기억하는 스승의 날. 나는 당시 초등학생이었고, 엄마가 담임선생님 가져다주라고 참기름을 싸주었다. 한 병이었는지, 두 병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국산 참기름은 귀한 취급을 받지만, 그 당시 우리 집 형편에 참기름은 정말 귀한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학교에서 스승의 날 선물을 받지 않고, 보내지도 말라고 공문을 보내지만, 당시만 해도 스승의 날 선물 혹은 촌지는 흔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흔한 선물도 우리 집은 잘 보내는 편은 아니었다. 어릴 때라 나는 크게 체감하지 못했지만, 엄마에게는 우리가 먹고살기에도 빠듯했을 테니까. 그러다가 처음으로 엄마는 나의 손에 참기름을 쥐어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집에서 몇 발자국 떠나지도 못하고 그 귀한 참기름병은 깨졌다. 내가 놓쳐버려서. 어린 내가 들기엔 너무 무거웠던 걸까? 아니면 내가 그저 조심성이 없었을까. 아무튼 엄마는 “아이고, 이 귀한 참기름을.. 이걸 어째! 하여간 칠칠치 못해서!” 라며 나를 나무랐다. 그래서 다른 선물을 쥐어 보냈던가? 아마 아니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참기름이나 다른 선물을 쥐어 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더 커서, 중 고등학생 시절의 스승의 날. 이때는 직접적으로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기보다는 조금 더 이벤트성의 날이었다. 선생님이 오시기 전 칠판에 ‘스승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같은 말을 써놓고 ‘사랑합니다’ 등의 말을 한마디씩 보태어 칠판을 채워갔다. 그리고 제일 장난꾸러기 같은 아이는 선생님이 오시는지 망을 보다가 “온다!” 하고 소리치면 우리는 쥐 죽은 듯이 불을 꺼놓기도 하고, 숨어있기도 하고. 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스승의 은혜’를 목이 터져라 떼창 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이 아니더라고, 특별히 좋아했던 선생님은 따로 찾아가서 사탕, 음료를 들고 쉬는 시간마다 찾아갔다. 초등학교 시절보다는 조금 더 좋은 기억이다.

그리고 30대 중반의 어른이 된 지금, 어쩌다 보니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 어릴 때 장래희망에 ‘선생님’을 적어놓긴 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게 그 당시 1순위 장래희망이기도 했고, 엄마 아빠가 그렇게 쓰면 좋아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좋아했을 선생님은 학교선생님이었을 텐데, 다른 점이라면 나는 지금 학원선생님이 되어있다. 그리고 5월 14일, 다음날이 스승의 날인지도 몰랐는데, 한 학생이 반에 들어오자마자 캐러멜과 편지를 건네서 이게 뭐지 싶었다. 평소에 사탕, 과자등을 하나씩 잘 주는 학생이긴 했지만, 편지까지 있어서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펼쳐보니 ‘Happy Treacher’s Day’라고 적혀있다. 월수금 아이들은 15일 당일에 나를 볼 수 없어서 미리 준비했나 보다. 아직 수려하게 영어문장을 쓸 레벨이 아닌 아이인데, 인터넷으로 번역기를 돌렸는지 꽤나 긴 문장들이 빼곡히 쓰여있다. 자기를 가르쳐주어 고맙고, 수업이 흥미롭고, 사랑한다고 쓰여있다. 그 이후에 꽤나 많은 아이들의 손에 쿠키, 꽃, 커피, 비타민.. 등이 들려왔다.


그리고 15일 당일. 화/목반 아이들이 등원하며 또 몇몇 아이들이 선물을 준비해 주었는데, 어떤 아이는 다른 학생이 종이백에 선물을 건네주는 걸 보며 미안했는지 다가와서 “제가 준비한 게 없어서 그런데, 이거라도..” 라며 가루 비타민 두 개를 건넨다. “아니야, 이런 거 안 줘도 돼. 괜찮아. 고마워.”라고 말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두 번째 수업을 할 때는 수업 중에 다른 반 아이들이 노크를 해서 나가보니 작년에 가르치고 다른 선생님반으로 이동한 아이들이었다. 별모양으로 된 반짝이 형관펜을 건넨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쿠키, 베이커리 같은 것들도 물론 감사했지만, 자기에게 있는 좋은 것을 건네주는 이 마음이 더 고맙게 느껴진다. 너무 고맙다고 말하니 스승의 날이라고 찾아왔다고 한다. 작년에 가르칠 때 배운 거 까먹을 때마다 혼내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했던 아이였는데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수업을 다 끝내고 교실에 있는데 2년 전, 초6일 때 가르쳤던 학생 두 명이 벌써 중2가 되어 찾아왔다. 이제 중 학생반이 되어 위층으로 올라간 후, 종종 찾아오긴 했지만 한동안 발걸음이 뜸해졌던 아이들이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챙기느라 아이들은 나보다도 바빠 보였다. 그 아이들이 각자의 용돈으로 커피 하나씩을 사서 찾아왔다. 한 명은 “저, 이번 중간고사에서 영어 만점 맞았어요.”라며 자랑하고, 다른 한 명은 “저는 만점은 아니고.. 그래도 제일 높은 반 유지 중이에요”라며 머쓱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리고 잊지 않고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감사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장난스레 “그래서, 편지는 어디 있어?”라고 웃으며 말하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들은 “내년에..”라고 말끝을 흐리고 나는 장난이라며 다음에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말한다.


다음날, 출근해 보니 칠판에 편지가 적혀있다. ‘선생님이 제 인생의 최애쌤 이에요. 다음에는 편지까지 들고 올게요…’. ‘제가 지금 A반(제일 높은 반)까지 온 게 다 선생님 덕분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학원 다니면서 선생님이 완전 1등. 나중에 또 찾아올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학생들에게 남기는 말. ‘OO쌤한테 잘해드려라’. 마지막에 쓴 경고문구 같은 말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웃다가 눈물까지 찡해졌다. 편지를 안 써온 게 마음에 걸렸는지, 이제 나보다 늦게 집에 가는 아이들은 내가 퇴근 후 없는 교실에 다시 찾아와 또 뭔가를 쓰고 갔다. 스승의 날이 이렇게 좋은 날이었나? 일 년에 한 번있는 스승의 날, 내가 선생님이 될지는 몰랐지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 선생님이 되었으니 정말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겠다는,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 스승의 날은 그런 날이었나 보다. 선생님들이 다시 한번 다짐을 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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