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번역하는 연습

말에도 번역이 필요하다.

by 김애정


집에 갈 때마다 온 집안살림을 다 꺼내 챙겨주는 사람과, 내가 다치면 ‘칠칠치 못하다’고 비난부터 하는 사람은 동일인물이다. 바로 우리 엄마.


얼마 전 한 유튜브채널에 황석희번역가가 나왔다. 그가 한 말 중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본인 가족의 에피소드였다. 아이가 7살인데, 어린 나이에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그런데 아내가 너무 속상해서 울면서 아이에게 “엄마 너무 속상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황석희 변역 가는 콘텐츠를 번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번역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의 상대는 7살 아이. 아직 어른만큼 번역이 능숙하지 않은 어린아이이다. 이때 부모가 ‘속상해’라는 말을 한다면 그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본인이 신경을 많이 못 써줬나 하는 자책감이 들 수도 있고, 앞으로 안경을 쓰면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길 텐데 그에 따른 안타까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단순히 내가 알던 우리 귀여운 아이의 얼굴에 안경이 더해지는 것이 슬플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속상하다.’는 말을 아이는 ‘엄마가 나 때문에 속상하구나, 그럼 내가 잘못을했나보다.’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이상하게도 이야기를 듣고 바로 엄마 생각이 났다. 지난 주말, 핸드폰을 떨어트렸는데 바닥에 있는 핸드폰을 주워 들고 보니 액정이 나가있었다. 거의 6년을 써가는 핸드폰이고, 수없이 떨어트렸지만 이렇게 액정이 나간 건 처음이었다. 오래된 핸드폰이지만 아직 멀쩡해서 소위 말하는 ‘멍청비용’을 내고 액정을 바꿨다. 그리고 다음날, 잠깐 일이 있어 엄마네 집에 갔다. 앉자마자 투정과 투덜 사이의 말을 털어놓았다.

“나 주말에 핸드폰 떨어뜨려서 액정 깨졌잖아~~~~” 그리고 바로 돌아오는 엄마의 말. “으휴. 너는 하여간 조심성이 없어서!!”


지난 어버이날, 꽃을 사들고 찾아간 나에게 “요즘에는 꽃 안 산다던데.” 하는 말에 속으로 ‘어이구~우리 엄마 또 고맙다는 말을 저렇게 하네.’ 하고 대충 웃어넘긴 나였기에, 이제는 나도 조금 레벨업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말을 어느 정도 여유롭게 받아들일 레벨이. 그런데 ‘조심성이 없다.’는 비난을 받자마자 속에서 뭔가 올라와서 기어코 짜증을 냈다. “엄마는 하여간 무슨 말만 하면 비난이야!” 하고 언성을 높이자 엄마도 아차 싶었는지 “미안해~”라고 하는 걸 간다고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사진은 글과는 상관없는 샤갈전


저녁에 누웠는데 낮에 올라왔던 그 ‘무언가’들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스승의 날에 싸준 귀한 참기름이 담긴 유리병을 내가 깨트렸을 때도 ‘괜찮니, 다친 곳은 없니?’라는 말이 아닌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해. 너는 하여간 칠칠치 못해서!’라며 언성을 높였다. 고등학생 때는 이동수업 중에 지갑을 도난당해 집에 가서 억울해하며 말했더니 ‘하여간 분수에 안 맞게 비싼 지갑 가지고 다니더니, 다 네 잘못이지 뭐.’라는 말을 들었다. 설거지를 하다가 손이라도 살짝 베이면 아직도 ‘너는 설거지도 하나 제대로 못하냐’는 말이 먼저 나온다. ‘칠칠치 못하다.’, ‘끈기가 없다.’. ‘조심성이 없다.’ 이런 말들은 자라면서 정말 지속적으로 엄마에게 들어온 말이다.


뭐 하나라도 배우다가 그만두면 엄마에게 ‘하여간 넌 끈기가 없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사실은 나도 스스로가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도 생각했다. 그래서 뭔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나는 역시 끈기가 없어.’라며 그냥 쉽게 그만두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일까? 몇몇 분야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유화도, 수채화도, 테니스도, 탱고도. 잠깐 배우고 그만둔 것은 정말 많다. 하지만, 동시에 필라테스를 8년 넘게 하고 있고, 복싱도 2년 넘게, 훌라도 2년, 듀오링고 스페인어학습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900일 이상을 하였으며, 달리기도 지난가을부터 시작해서 233일째 하고 있다. 그냥 나는 나에게 맞는 것을 이것저것 적극적으로 찾아본 사람인 것이다.


다시 주말로 돌아가보면, 어쩌면 엄마의 말을 조금 더 잘 번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렇게 까지 진심으로 속상하지는 않을 텐데, 내가 가족이니까 진심으로 속상한가 보다.’ 하고 그냥 넘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엄마도 사랑을 많이 못 받아서 예쁜 말이 안 나오나 보다.’ 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동시에 ‘이제는 엄마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말을 예쁘게 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이런 게 ‘*사나운 애착’인 것일까.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오늘도 나는 어떤 마음의 손을 들어줄지 결정하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사나운 애착>은 비비언고닉이 어머니와의 관계를 토대로 쓴 자전적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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