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나 결혼해.. 그리고 남자친구랑 같이 2월에 캐나다로 이민 가.”
일 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식당에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갑자기 입이 떨어지지 않고 눈물이 흘렀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식당의 한가운데 테이블에 앉아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사연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우리의 사연은 이렇다.
친구 M과 나는 17살 때 노원에 있는 한 학원에서 만났다. 강북에서는 나름 학구열이 높은 지역이었고, 그 지역에서는 꽤 규모가 있어 유명했던 학원이었다. 우리가 있던 반의 이름은 일명 ‘스파르타’ 클래스. 학원에 있어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많았고, 전 과목을 주말까지 관리해 주던 그런 학원이었다. ‘이제 고등학생이니, 놀기만 하던 중학생 시절은 청산하고 정신 차려보자!’ 하고 들어갔던 곳이었다. 다른 학원이나, 다른 반 에 비해서도 학원비가 꽤나 비쌌지만, 공부하겠다는 딸을 엄마는 흔쾌히 대형학원에 보내주었다. 그 학원에서 친구 M을 만났다. 친구 M은 키도 크고 날씬하고,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나는 M을 처음 보자마자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정말 단짝이 되었다.
당시 나는 학교 친구들보다 학원친구인 M과 더 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가야 하는 스케줄이었고, 우리는 매일 봤고, 매일 함께 공부를 하고 매일 함께 놀았다. 주말에도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일주일에 7일을 보는 사이었다. 학원생활은 너무 재미있었다. 수업 전 후로 스티커사진을 찍고, 매운 냉면을 먹으러 다니고, 선생님들과는 친하고. 그렇게 공부보다는 공부를 명목으로 놀러 다니는 생활을 1년쯤 하고 나니, 우리는 깨달았다. 학원생활은 너무 재미있고, 우리의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우리 이제 2학년이니까 정신 차리자(?)’ 고 이야기한 후 학원을 그만두었다. 마지막 날 우리는 하원차량 앞에서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무색하게 한동안 우리는 그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만나서 여전히 스티커 사진도 찍으러 가고, 매운 냉면도 먹으러 다녔지만 고3이 되니 또 이야기는 달라졌다. 각자 학업에 전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나는 횟수가 줄었고, 다음 해 M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나는 수능의 쓴맛을 보고 재수를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1년 뒤, 나는 M이 먼저 입학한 대학에 합격하였고, 다른 과였지만 캠퍼스 내에서도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지냈다. 그리고 어느덧 졸업, 취업을 거쳐가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고, 생각날 때면 서로 연락을 해서 1년에 2-3번씩은 서로 얼굴을 보며 지냈다.
M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 되면 생일이 오기 전에 미리 연락을 해서 약속을 선점하기도 하였고, 그 오랜 세월 동안 매년 생일에 손 편지를 주던 친구였다. M이 한참 꽃꽂이를 할 때는 어버이날 우리 부모님의 꽃다발까지 챙겨주는 사려 깊은 친구였다. 그렇게 우리는 애틋하기도 했지만, 어느덧 우리의 인연은 20년이 다 되어가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조금씩 서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M은 수려한 외모만큼이나 주변에 남자들이 항상 뒤를 따랐지만, 진지하게 사랑에 임하는 M과 달리 내가 보는 그녀의 남자친구들은 하나같이 ‘똥차’였다. 어느 순간 그런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만날 때마다 되풀이되는 것만 같은 그녀의 사생활이 조금은 지겨워지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처음 화장을 시작한 것은 고1 때 M과 함께 학원 화장실에서였다. 우리는 마스카라를 함께 사서 눈썹에 칠해보고, 파우더가 든 기름종이를 사서 함께 나누어 썼다. 그런 내가 그대로 성장해서 20대까지는 매달 네일숍에 가고, 365중 360일 하이힐을 신고, 50킬로가 넘어가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고, 집 앞을 나가도 화장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그런 시절은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지금은 운동화를 신는 게 더 편해지고, 더 이상 손톱관리는 하지 않으며 50킬로가 넘은 지는 한참이 넘었지만 몸무게는 거의 재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꾸밈노동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화장도 하고, 여러 가지 나의 외모에 대해서 신경을 쓰기도 한다. 그런 내가 30대가 되어 M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그녀를 판단했음을 고백한다. 항상 화려한 외모와 옷차림, 장소를 바꿀 때마다 고치는 화장, 성형수술. 나는 한때는 비슷했던 우리의 관심사가 많이 변했음을 느끼고 그게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 전, 나의 생일즈음 M을 만났을 때, 그녀는 여전히 나에게 다정했다. 생일이라고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해 주고,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수고롭게 여러 가지 장식들을 가지고 와서 예쁜 사진들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내용은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어지고 나서 M에게 문자가 왔다. ‘너랑 만나면 항상 좋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 오늘도 정말 좋은 시간 보냈어.’ 그런데 그 문자를 받고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M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았나?’, ‘나는 좋은 시간을 보냈나?’ 솔직히 말하면 둘 다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작은 결심을 했다. ‘M과는 조금 더 시간간격을 두고 만나야겠구나.’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는 먼저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M에게 먼저 연락이 와야만 만났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M도 그걸 조금은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제 1년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보게 되었고, 올해는 처음으로 1년이라는 시간이 넘어갔다. 그걸 알아챈 건 내 생일이었다. 항상 내 생일이면 먼저 연락 오면 M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8월이 지나가고 9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9월이면 M의 생일이 있는 달이었다. 오랜만에 나는 M에게 문자를 보내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지난 주말 만난 M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이야기.
“나 결혼해.. 남자친구랑 같이 2월에 캐나다로 이민 가. 이제 막 정해진 거라 아직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정신없어서 너 생일 때 연락도 못했네”
1년 만에 만난 친구가 당장 내년 초에 결혼을 한다니. 그것도 결혼 후 이민을 가다니. 갑자기 그동안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면서 눈물이 흘렀다. M과 보낸 애틋한 10대 시절, 어쩔 수 없이 멀어졌던 20대 시절,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던 30대 시절이 모두 스쳐 지나갔다. 가끔 M이 생각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연락을 할까 고민만 하고 1년이 더 지나갔다. 그런데 이제 그런 M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후회가 밀려왔다. 물론 사람이 멀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1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들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인연이 이제 다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40대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