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북한산둘레길 65K 종주 트레일러닝 후기

by 김애정


몇 달 전 오들로에서 진행하는 북한산둘레길 65K 트레일러닝 공고가 떴다. 어째서 내 뇌는 이걸 보고 ‘해볼까?’, ‘재미있겠다!’라는 회로를 돌리게 된 걸까. 그래도 서울이니까 정 힘들면 대중교통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자는 마음으로 신청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둘레길’이라는 말에 ‘둘레길 정도면..’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대회당일.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서 대충 준비 후 대회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시간은 6시 반. 아직 세상이 어둑어둑했다. 도착해서 장비체크를 하는데, 필수장비 중 헤드랜턴이 2개였다. 하나만 가져온 나는 페널티로 기록에서 한 시간이 추가되었다. 컷오프가 13시간이니 12시간 이내로 들어와야 했다. 그래도 내심 12시간 안에는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서 아쉽지만 그 마음을 뒤로하고 출발장소로 이동했다.

대회 출발 직전, 항상 조금은 외로움을 느낀다. 나만 빼고 모두가 서로 아는 것 같은 분위기다. 삼삼오오모여 다른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혼자서 설렁설렁 스트레칭을 한다. 하지만 어차피 뛰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혼자이다. 3,2,1 시작! 첫 번째 코스는 경기도 고양시 관세비스타에서 출발해서 의정부 직동공원까지의 코스. 첫 번째 코스는 나름 수월하다. 지난 9월, 장수대회에서 끔찍한 오르막을 경험하고 나니 이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말이 둘레길이지 사실상 계속 산을 오르락내리락해서 다시 주로를 달려 다음 산으로 이동하는 코스라 여러 개의 봉우리를 오르락하느라 체력이 소진되고 배도 고파온다. 첫 번째 CP(체크포인트, 보급소)에서 물을 다시 채워 넣고 배도 좀 채우고 나서 다시 시작. 이번 가을 너무 바빠서 계절을 즐길 틈도 없었는데, 산에 올라가니 단풍이 절정이다. 새빨간 단풍잎도 보이고, 한 그루의 나무에 모든 색을 다 간식한 채 변하고 있는 나무도 보인다. 그만큼 등산객들도 꽤나 있다.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요~” 하며 지나가니 대부분의 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주신다. “파이팅! 아이고 대단하다~”, “멋지세요~”하며 박수도 쳐주셔서 그 말들에 에너지를 얻어 조금 더 힘을 낸다. 정말 응원에는 힘이 있다.


함께 뛰던 선수 중 한 분은 장수티셔츠를 알아보고 “장수 파이팅!”이라고 외쳐서 쳐다보니 그분도 장수트레일 티셔츠를 입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크게 파이팅을 외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함께 뛰던 선수들은 저 멀리에 있고, 더 이상 시야에 보이지 않는다. 앞에도, 뒤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순간이 온다. 이 잠깐 고독의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아무도 없고 자연과 나만이 있는 시간. 그런데 오늘은 그 순간이 길어지니 점점 불안감이 올라온다. ‘내가 꼴찌인가?’ 솔직히 마지막주자인 것은 상관없다. 어차피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다. 내가 완주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나는 애플워치 사용자로, GPX지도도 없고 배터리 지속시간도 짧아서 길을 잃을까 봐 걱정이 됐다. 아직 반도 못 왔는데. 그렇게 한참을 혼자 도봉구를 쭉 따라 내려와서 우이동에 도착했다. 다음 CP인 33K 지점 오들로 우이점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앉아서 라면도 먹고 쉬고 있다. 달리며 인사했던 분들도 모여서 반가운 마음이 든다. 봉사자분들께 “제가 마지막즈음인가요?”라고 하니 아니라고 하셔서 안심하고 라면을 먹고 파스도 뿌리고 잠시 쉬어간다.

너무 힘들었는데 조금 쉬고 먹고 하니 충전이 되어 다시 발걸음을 뗀다. 이제 반정도 왔고, 반이 남은 지점. 이제 강북구를 따라 내려온다. 나보다 조금 앞에서 뛰어가시는 분에 페이스를 맞추어 따라간다. 이제는 워치의 배터리도 다 되어 더 이상 거리를 내가 측정할 수도 없다. 앞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이제 슬슬 다리도 아프고, 고관절도 아프고 무릎과 뒤쪽 인대도 당겨온다. 그러다가 장수동지를 만난다. 그분도 무릎이 문제인지 앉아서 스트레칭을 하고 약을 먹고 있다. 덕분에 나도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하나 받아먹는다. 이제 그분의 시계에 의지해서 함께 길을 뛰고 걷고, 뛰고 걷고를 반복한다. 그분은 워낙 대회출전 경험도 많고 나보다 체력도 좋으신 분이지만 부상 덕분에(?) 나와 발이 맞아 얼떨결에 동반주를 하게 된다.


43.5킬로 지점인 정릉동 탐방지원센터. 이제 정말 에너지가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 여기서부터는 거의 걸어간다. 등산스틱에 의지해서 이제 발이 아닌 팔에 더 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걷다 보니 스르르 어둠이 찾아와 해드렌턴을 꺼내 켠다. 종로구를 지나 이제 은평구. 56K 마지막 CP에 드디어 도착. 출발한 지 딱 11시간 10분째. 봉사자들분께서 김밥과 따듯한 꿀물을 타주신다. 이제 8킬로만 가면 완주. 그런데 뒤늦게 생각해 보니 패털티로 12시간 안에 들어가려면 50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몸에 힘이 남아있지 않은데, 8킬로를 50분 안에 들어갈 수 있나? 도로도 아니고 산을 또 들어가야 하는데.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 봉사자분들께서 작은 봉우리 두 개만 넘고 나면 도로라서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신다. 함께 동반하던 분은 나보다 시간도 남았고, 무릎 부상도 있어서 더 쉬어가야 했다. 완전한 어둠이 깔려있다. 나에겐 지도도 없다. 체력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고 50분이나 남았는데 포기할 수는 없다. 도전해 보겠다고 하고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뛰어간다. 뒤에서는 “할 수 있어요! 파이팅!!!” 이라며 응원을 해준다.


산 길로 진입. 진한 어둠이 나를 맞이한다. 헤드랜턴을 켜고 아무도 없는 산길을 달린다. 갑자기 강아지도 튀어나오고, 고양이도 튀어나오고, 멧돼지 출몰주의라는 표지판도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GPX 지도가 없는 대신 대회표식을 열심히 보며 따라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표식이 보이지 않는다. 길을 조금 되돌아가봐도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없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일단 큰길로 나와서 카카오지도를 보며 찾아간다. 어느새 4킬로가 남은 지점. 그런데 시간은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을 때 나와서 뛰기를 시작해도 4킬로를 15분에 뛰는 건 불가능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이를 악물고 버텨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아쉬웠다. 어차피 이제 끝인데, 버스를 타고 짐이나 찾으러 돌아갈까 하고 버스 시간을 알아봤다. 그런데 60킬로나 달리고 걷고 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뛸 힘은 도무지 없어서 통증이 있는 다리를 끌고 걸어갔다. 그러다 보니 대회 표식이 보였다. 다시 코스로 돌아온 것인가? 천천히 따라가다가 지나가는 분에게 길을 물어봤다. “여기 북한산 내사묘역길 진입로가 어디예요?”


“이 길 따라 쭉 가면 돼요. 근데 지금 이 시간에 등산로를 가려고?” 놀라서 물어보시길래 대답했다. “대회가 있어서요. 이제 거의 다 왔어요!” 하고 다시 진입로로 들어갔다. 또다시 여기가 맞나 하며 걷다 보니 빛이 보였다. 마지막에 안내해 주시는 분은 아빠뻘의 나이 지긋한 선생님 이셨는데 멀리서 달려오는 나를 마주하고는 “아이고.. 힘들죠? 이제 거의 다 왔어요.”라고 따듯하게 말해주셨다. 그 말에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대회장.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분들은 뒤늦게 들어오는 나를 보고 또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피니시라인이 시야에 보이니 진행자분이 “선수 들어옵니다!” 하고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12시간 50분 30초. 컷오프 시간을 10분 남기고 들어왔다. 1시간 페널티로 공식기록은 인정 못 받지만, 결국은 내 발로 65킬로를 뛰고 걸어서 완주를 했다. 마지막에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왜 이걸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중간에는 정말 ‘아 그냥 나도 걸어서 천천히 단풍구경 하고 싶다, 왜 뛰고 있지?’, ‘아 진짜 그만하고 싶다.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근데 아마도 고통은 잠시지만 이 경험의 여운이 오래가기 때문인 것 같다. 주로에서 만난 동료선수들, 응원하시는 분들, 마지막에 그 힘든 시간들이 다 보상받는 감동의 순간.


완주를 하고 정리를 하는데 함께 동반한 장수동지에게 연락이 왔다. 결국 컷오프라는 말에 같이 고생했는데 아쉽다며 답장이 왔다. 그리고 이어서 온 연락 ‘근데 컷오프 13시간이었어요? 컷오프 14시간!”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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