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보내고 2026 일출을 맞이하며
2025년의 마지막날. 안녕의 날이었다. 며칠 전 오피스텔건물에 공지문이 올라왔다. <관리소장 계약 종료 안내> ‘내정된 계약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2025년 12월 31부로 관리소장직을 마무리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동안 감사드립니다.’ 몇 년 동안 봐온 소장님이었는데 마음이 안 좋았다. 물론 그 마음 안 좋음에는 좋은 분과 헤어지는 아쉬움도 있지만, 본인이 원한 퇴직이 아니었을 것 같은 제멋대로의 추측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장님을 보면 항상 마음이 찡했다. 그 찡함에는 본인보다 한참 어린 관리자에게 혼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본 사건도 있고, 소장님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서 10, 20여 년 전쯤 본인의 사무실에서 권위 있는 모습으로 뭔가를 쓰고 있는 모습과 달리 내가 본모습은 항상 입주민들이 엉망으로 버린 쓰레기를 분리하던 모습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멋대로 그분을 나보다 힘든 사람의 위치에 놓은 우월감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날, 유자 음료수를 하나 들고 경비실로 찾아갔다. 소장님은 개인물품을 정리하고 계셨다. 음료수를 건네며 말했다. “그동안 보니까 쓰레기를 엉망으로 버리시는 분들이 너무 많던데, 고생 많으셨을 것 같아요. 오늘 마지막 날 이라니 너무 아쉽고 감사해요.” 소장님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뭘 이런 것까지…” 그렇게 관리소장님과 ‘안녕’을 했다. 그리고 동네 카페로 가서 계획한 이런저런 일들을 마쳤다. 12월은 2025년의 마지막날이자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 달이기도 하다. 그 마지막날, 내 처음의 계산을 해보기도 했다. 계획한 일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태백산으로 일출산행을 가기로 하였는데, 원래는 나는 사당역에서 자정이 조금 넘어서 버스를 타고 친구는 동천역에서 한시쯤 버스를 타기로 했었다. 혼자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괜찮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괜찮았지만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새해를 넘겨버리기는 싫어서 친구네 집으로 가서 함께 새해를 맞이하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저녁 느지막이 가서 쉬다가 11시50분쯤 동천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우리 말고 2명의 승객이 앉아있었고, 그들은 별로 카운트다운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초시계를 켜서 조용히 카운트다운을 했다. “십, 구, 팔, 칠… 땡! 해피뉴이어!” 그리고 태백으로 가는 버스 안. 버스를 타자마자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고 보니 4시. 벌써 태백에 도착했다. 핫팩을 몸에 붙이고, 모자를 쓰고 옷을 여미고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갔다. 새벽 4시 50분 등산을 시작했다. 시작한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앞에서 사람들이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어서 ‘벌써?’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걷다 보니 길이 얼음길이었다. 친구가 겨울산행 필수 준비물 리스트를 보내줬음에도 아이젠도, 스페츠도 챙기지 않은 나는 큰일 났다 싶었는데 다행히 걷다 보니 누군가 떨어트린 아이젠하나를 주워서 열심히 겨울 눈산을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7시 정도였는데 영하 13도의 기온에 정상에 가니 사방이 뚫려있는데 칼바람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쯤 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안으로 들어가 봐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건 기분 탓이고, 사람들 마저 없었다면 정말 아찔하다.) 여기서 40분을 더 기다려야 된다고? 그게 가능한 건가 싶었다. 서서히 발가락이 얼고 있었다. 진심으로 동상에 걸릴까 봐 걱정이 됐다. 옆에서 다른 분들이 ‘이제 20분 남았다.’라고 하는데 20분이나 남았다니, 5분도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결국 시간은 흐르고 2026년의 해가 찔끔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의 탄성이 짧게 터져 나왔다. 정말 이상하게 해가 서서히 떠오르자 그 시각적 감각에 집중이 되니 발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탁 트인 산 위에 구름이 떠있고, 그 위로 떠오르는 선명한 해.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얼른 소원을 빌었다. 일출산행을 여러 번 해보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새해일출은 처음이었다. 1월 1일에 뜨는 해도 그냥 매일 뜨는 해와 다를 바 없는 태양이다. 하지만 새해일출만이 주는 들뜸이 이런 느낌이것다는걸 다시 느낀다. 새로운 ‘안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