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학원

어릴 적 다니면 피아노학원으로의 여행

by 김애정

지금 내가 운영하는 교습소 맞은편에는 피아노학원이 있다. 아이들과 수업할 때는 들리지 않다가 아이들이 다 돌아간 후 학원에 남아 뒷정리를 하면 은은한 피아노선율이 들리기 시작한다. 아주 썩 훌륭한 연주라고는 할 수없지만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뒤 몸에 힘을 빼고 듣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왠지 그 선율들이 나를 내가 피아노학원에 다닐 적으로 데려갔다.



한참 하루 한 장 클래식 공부할 때의 사진

내가 초등학생일 때 난 딱 두 곳의 피아노학원을 다녔다. 첫 번째로 다녔던 곳은 가정집을 개조하여 한쪽을 피아노방 3개로 만든 곳이었다. 실제로 선생님이 살고 있던 곳이기도 해서 가정집분위기가 났다. 선생님은 나이가 꽤 있었고, 정말 친절하셨다. 피아노학원이 끝나면 항상 그 집에서 남아서 보드게임을 하거나 지금 내 나이정도로 추정하는 선생님의 딸이 함께 살면서 떡볶이를 만들어주곤 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는 떡볶이 맛이었는데, 그 집에서는 항상 쌀떡으로 떡볶이를 만들어주셨고 팬에 쌀떡이 눌어붙게끔 만들어졌는데 그 눌어붙은 떡을 떼어먹는 것이 정말 맛있었다. 지금 내가 교습소를 운영하다 보니 그게 얼마나 큰 품이 들어가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아니, 그건 내가 교습소를 운영하지 않아도 어느 어른이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제공하기로 한 서비스 이상의 시간과 사랑을 들여서 뭔가를 해준 다는 것이.


이상하게 피아노학원은 나에게 다이면 끊고 싶고, 다니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피아노학원을 다니다 끊다를 반복하다가 아마 한동안 쉬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피아노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따듯했던 가정집의 피아노학원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연세가 꽤 있으셨던 선생님이 더 이상 피아노방을 운영하지 않게 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조금 더 학원다운곳으로 가고 싶었던 것인지. 아무튼 그렇게 두 번째 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두 번째 학원에서는 원장선생님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세련된 직원 선생님만 기억이 난다. 그 선생님을 20년이 더 지난 지금 떠올려봐도 세련됨이 기억난다. 중단발의 세련된 파마머리에 통바지에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아마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을 것 같다.


그 선생님의 한 손에는 항상 자 가 들려있었고, 내가 실수를 할 때면 그 자는 내 손등 위로 날아왔다. 지금생각하면 너무 가혹하다. 아마도 내가 원장선생님이 기억이 안나는 건 내가 피아노에 그다지 재능도 없었고,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는 그런 류의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장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봐주고 있었겠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도 어차피 피아노를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저 재미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이 실수했을 때 자로 손등을 때리는 선생님은 아무리 시대상을 반영해도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난 그 학원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그즈음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재미있었다. 무슨 곡인지 모를 한 곡이 끝나니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저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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