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두 번째 스탠드업 코미디쇼.
2020년 뉴욕, 당시 거의 매일 지나다니던 타임스퀘어 근처에서 스탠드업코미디 홍보하는 것을 보고 한 번은 가봐야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학원에 함께 다니던 친구들과 함께 날을 잡아 큰 맘을 먹고 보러 갔는데 보기 전에 조금 긴장을 했던 기억이 있다. 첫 번째로는 못 알아들을까 봐, 두 번째로는 그날의 타깃이 될까 봐. 그리고 그 두 예상은 모두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코미디 특성상 말이 좀 빨랐고(아닌가? 그냥 내 느낌 탓이었을까?), 인사이드조크(내부자들끼리만 아는 농담)가 많았던 것 같다. 반은 알아듣고 웃기도 하였고, 반은 그냥 눈치껏 웃기도 하였다. 그렇게 첫 번째 두려움은 그럭저럭 헤쳐나갔고, 다음 관문. 우리는 너무도 좋은 타깃이었던 것 같다. 한국인 2, 프랑스인 1, 러시아인 1, 튀르키예인 1의 이상한 조합. 한 번쯤 ‘얘네 뭐야?’하고 놀려보고 싶은. 쇼 중반쯤 앞에서 열심히 웃기(려고 노력하) 던 그 백인 남성은 우리에게 ‘너네 어디서 왔어?’라고 물었고 그걸 시작으로 우리를 놀려먹었다. 그 내용은, 내가 못 알아들었던 건지, 당시 알아들었었는데 기억에서 지운건지 정말 기억이 안 난다. 그럼에도 기억나는 부분은 있는데 그날 우리는 그 코미디쇼가 끝나고 갈 식당을 예약해 둔 상태였다. 예약시간은 다가오고, 코미디는 길어지고. 하는 수 없이 중간에 잠깐 나가서 전화를 하고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폭소를 했다. 무방비로 당한(?)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놀림거리가 되었는데 나와서 듣고 보니 내가 나가는 것을 보고 ‘어머 쟤 급하게 나가는 거 보니 설사 신호 왔나 보다.’ 식의 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어? 잘 다녀왔어?’라고 말한 그.
물론 나와 내 친구들만 타깃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형적인 인종별 조크 (영국사람에게 먹을 게 없어서 마른 것이냐는), 커플 타깃조크(아빠랑 온 거야? 아, 남편이라고? 이런..) 등등.. 여러 사람이 돌려 깎기를 당하며 여기저기 상 위로 올려져서 칼질을 당하고도 모두들 ‘농담이니까~’ 하고 웃어주어야 하는 류의 코미디. 나도 그날 그냥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두고두고 기분이 나빴다. 꼭 누군가를 놀려야만 웃을 수 있나?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내가 당하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놀릴 때 함께 웃던 사람이었으니까.
한국에서는 스탠드업코미디가 아직 생소한 장르일 수 있으나 코미디, 즉 ‘개그’라는 것에는 나름 익숙한 세대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일요일마다 <개그콘서트>를 보며 일주일을 마감한 세대들. 개그콘서트는 유일하게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 자연스럽게 시간이 되면 TV앞에 모여 한 시간 동안 웃다 보면 이제 잠이 들 시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어릴 때야 그냥 마냥 모든 것이 웃겼다. 흑인분장을 한 코미디언도, 뚱뚱한 것을 개그소재로 삼고 여성혐오를 하는 코미디언도. 그게 혐오인 줄도 모르고 그 웃음에 동조를 했다. 역사 깊은 코미디 프로그램도 이제는 정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더 이상 시대를 읽지 못한 많은 남성 코미디언들은 ‘이제는 농담도 못하겠다.’, ‘이것은 코미디의 후퇴다.’류의 말을 했다.
그리고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방문한 두 번째 스탠드업코미디. 여성의 날답게여성들이 주인공인 코미디쇼였다. 여기가 입구가 맞나 싶은 곳 지하로 들어가니 제법 근사한 무대가 나왔다. 제목은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노랫소리가 빵빵하게 울렸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1부 MC가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관객들의 호응을 멋지게 끌어냈다. 곧이어 총 15명의 ‘암탉’들이 제주도,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서 무대로 올라왔고 여성이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코미디쇼가 이어졌다.
“오늘 많은 여성 코미디언이 무대에 올랐는데, 다들 대단한 예술가들이에요. 주로 하는 건 아비 얼굴에 먹칠하기, 본인 명예에 똥칠하기. 그런데 이 사람들이 무대에 선 건 웃기고 사랑받기 위해서거든요. 그 여자 미친 여자 아닙니다. 코미디언입니다.”(최정윤)_출처: 경향신문
다양한 이야기들이 암탉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고, 많은 풍자 속에서 진정한 해학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속 시원한 일인지. 정치인 돌려 까기, 성범죄자 돌려 까지, 여성혐오하는 남성 돌려 까기. 물론 이것도 누군가를 깎아내리며 웃음을 주지만 평소 억눌려있던, 제대로 말 못 하던 것들이 터져터져 나온다는 것 이것은 일종의 운동이며 혁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웃는 동안 어느덧 시간은 3시간을 훌쩍 넘겼고, 친구들과 나는 바로 옆 맥주집에 가서 마른 목을 맥주로 채우며 감상을 이어나갔다. 아직도 세상에는 여성들을 위한 ‘마이크’가 너무 적다. 내가 매년 여성의 날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성은 미국의 전 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이다. 2020년 9월, 그녀가 사망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뉴욕에 도착했다. 뉴욕에 도착했을 때 나는 뉴욕의 화려함과 설렘에 눈이 멀어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곳곳에 있는 긴즈버그의 추모현장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새삼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를 그녀의 사후에 느끼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것이 장애로 여겨지던 때 대학생활을 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하버드 로스쿨 500명 중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었던 그녀. 모진세월을 견뎌내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남편은 아내를 성폭행으로 기소할 수 없고, 사업장에서 임산부를 해고하는 것도 불법이 아닌 시절과 맞서 싸우며 그녀는 대법관이라는 자리까지 올라 페미니스트인 그녀게 기자들이 “몇 명의 대법관이 여성이어야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9명 전원이요.”라고 해서 모두에게 충격을 준다. 이어서 그녀는 “대법관 9명 전원이 남자일 때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죠.”라고 말을 하였고, 이 말을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9명 중 적어도 4명은 되어야지!’라는 나의 생각이 부끄러워지는 수간이었다.
우리 여성들은 아직도 많은 사회적인 편견과 위험, 위협 속에서 일상을 살아간다.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것들 조차 조심스러운 현대사회에서 그녀를 다시 떠올리며, 여성의 날 용기 있게 무대에 오른 암탉들에게도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