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술부터 소셜미디어까지
1475년 봄, 이탈리아 트렌토.
사순절 기간 동안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베르나르디노 다 펠트레가 이 작은 도시에서 연속 설교를 했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유대인들은 악하다. 그들은 기독교인의 돈을 빼앗고, 기독교인의 피를 원한다. 그는 예언까지 했다. “다가오는 유월절에 유대인들이 의식 살인을 저지를 것이다.”
며칠 후, 2살짜리 아이 시몬이 실종되었다. 부활절 직전, 유대인의 유월절과 겹치는 시기였다. 시신은 유대인 가옥 근처 수로에서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시신을 발견하고 당국에 신고한 사람이 바로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 사무엘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증거를 스스로 신고하는 살인자가 있을까?
그러나 광기에 빠진 군중에게 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트렌토의 주교 힌더바흐는 유대인 공동체 전원을 체포했다. 며칠간의 고문이 이어졌다. 발가락을 조이고, 불에 달군 쇠로 지지고, 사지를 잡아당겼다. 결국 “자백”이 나왔다. 고문당하는 사람은 고통을 멈추기 위해 심문관이 원하는 말을 한다. 15명의 유대인 남성이 화형당했다. 여성들은 강제로 개종당하고 아이들은 빼앗겼다.
이 사건이 조작이라는 증거는 당대에도 있었다. 교황 식스토 4세는 재조사를 명령하고 특사를 파견했다. 도미니코회 수도사 출신의 조사관 바티스타 데이 주디치는 유대인에게 우호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조차 조사 후 결론을 내렸다. “재판은 부패했고, 유대인들은 무죄다.” 그는 시몬이 기독교인에 의해 살해되었거나, 단순한 익사 사고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유대인을 모함하려는 의도적 범행일 수도 있다고.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유대교의 코셔 율법은 어떤 형태로든 피를 섭취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고기를 먹을 때도 피를 완전히 빼야 한다. 유대인들이 의식에 인간의 피를 사용한다는 주장은 유대교에 대한 기초적인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레위기 17장은 명확하게 말한다. “너희는 어떤 피든지 먹지 말라.”
그러나 진실은 권력 앞에 무력했다. 주교 힌더바흐는 로마에 강력한 후원자가 있었고, 교황의 조사관을 무시하고 처형을 강행했다. 그는 인쇄술이라는 신기술을 동원해 시몬의 “순교” 이야기를 유럽 전역에 퍼뜨렸다. 시몬은 성인으로 숭배되었고, 수백 년간 순례지가 되었다.
490년이 지난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결론은 명확했다. 어떤 범죄 증거도 없었다. 가톨릭 교회는 시몬의 성인 지위를 박탈하고, 이 사건이 조작이었음을 공식 인정했다.
“혈액 비방(blood libel)”이라 불리는 이 거짓말은 트렌토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중세 유럽 전역에서 수백 번 반복되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 아이를 납치해 피를 빼서 유월절 빵을 만든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 매번 증거는 없었다. 매번 자백은 고문으로 얻어졌다. 그럼에도 수천 명이 이것을 믿었고, 수만 명이 학살당했다.
가짜 뉴스는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거짓 정보가 대중을 선동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역사를 바꾼 것은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부터의 일이다. 달라진 것은 속도와 규모뿐이다.
인쇄술: 거짓말의 대량생산
1450년경,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발명했다. 지식의 민주화가 시작되었다. 성경이 대량으로 인쇄되었고, 종교개혁의 불씨가 타올랐다.
그러나 인쇄기는 진실만 찍어내지 않았다.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항해에서 돌아왔다. 그의 항해 보고서가 인쇄되어 유럽 전역에 퍼졌다. 문제는 그 보고서가 대폭 과장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아시아에 도달했다고 주장했고, 금이 넘쳐나는 땅을 발견했다고 했다. 후원자들의 지속적인 투자를 받기 위해서였다. 이 “성공 스토리”는 이후 수십 년간 무모한 탐험대와 잔인한 식민화를 촉발했다.
16세기, 종교전쟁의 시대. 신교와 구교 양 진영은 인쇄물을 무기로 사용했다. 교황이 악마와 계약했다는 팜플렛, 프로테스탄트들이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삽화가 쏟아졌다. 사실 확인은 불가능했고, 확인하려는 사람도 드물었다. 자극적인 이야기일수록 더 빨리 퍼졌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했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 중 하나는 “마녀사냥 매뉴얼”이었다. 1487년 출판된 『마녀에의 철퇴(Malleus Maleficarum)』는 마녀를 식별하고 심문하고 처형하는 방법을 상세히 기술했다. 저자인 하인리히 크라머는 교회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책 서문에 교황의 칙서를 실어 권위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200년 동안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고, 수만 명의 처형을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인쇄술은 지식을 퍼뜨렸지만, 거짓말도 함께 퍼뜨렸다. 구텐베르크가 만든 것은 진실의 도구가 아니라 정보의 도구였다. 그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황색 언론의 탄생
1890년대 뉴욕. 두 신문 제국이 격돌하고 있었다.
조셉 퓰리처의 뉴욕 월드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저널. 두 신문은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았다. 이것이 “황색 언론(Yellow Journalism)”의 시대다.
황색 언론이라는 이름은 당시 인기 있던 만화 캐릭터 “옐로우 키드”에서 유래했다. 두 신문이 이 캐릭터를 서로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싸웠는데, 이 경쟁이 선정적인 저널리즘의 상징이 되었다.
황색 언론의 특징은 단순했다. 사실보다 감정이 우선이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뉴스가 된다. 헤드라인은 과장할수록 좋다. 적을 만들면 독자가 몰린다.
1898년, 쿠바 아바나 항에서 미국 전함 메인호가 폭발했다. 266명이 사망했다. 폭발 원인은 불분명했다. 사고일 수도, 스페인의 공격일 수도 있었다. 진상 조사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허스트의 뉴욕 저널은 기다리지 않았다. “스페인의 배신적 공격!”이라는 헤드라인이 1면을 장식했다.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분노한 대중에게 증거는 필요 없었다. “메인호를 기억하라!”는 구호가 전국을 뒤덮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허스트가 쿠바에 파견한 삽화가 프레데릭 레밍턴이 전보를 보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허스트가 답했다. “당신은 그림을 그리시오. 전쟁은 내가 만들겠소.” 이 일화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황색 언론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했다. 허스트는 자랑했다. “신문이 전쟁을 만들었다.” 과장이 아니었다. 그의 신문이 여론을 조작하여 국가를 전쟁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메인호의 실제 폭발 원인은? 1976년 미 해군 조사단은 내부 폭발, 즉 보일러실의 석탄 화재가 탄약고로 번진 것이 가장 가능성 있는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스페인은 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전쟁이 끝나고 80년이 지난 후였다.
황색 언론의 시대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거짓말이 진실보다 먼저 도착하면, 진실이 도착할 때는 이미 늦다.
라디오와 공포의 전파
1938년 10월 30일, 핼러윈 전야.
CBS 라디오에서 오슨 웰스가 연출한 드라마 『우주 전쟁』이 방송되었다. H.G. 웰스의 소설을 각색한 이 드라마는 뉴스 속보 형식을 취했다. “화성인이 뉴저지를 침공했다”는 내용이 마치 실제 뉴스처럼 전해졌다.
프로그램 시작 부분에서 이것이 허구라는 고지가 있었다. 그러나 많은 청취자들이 중간부터 청취했다. 그들은 화성인의 침공을 실제 뉴스로 받아들였다. 전화 교환대가 마비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총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단적 패닉이 일어났다.
다음 날 신문들은 대서특필했다. “백만 명이 공포에 휩싸이다!” 이 숫자도 과장이었다. 실제로 패닉에 빠진 사람은 훨씬 적었다. 그러나 신문들은 라디오라는 경쟁 매체를 공격할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우주 전쟁』 사건이 보여준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새로운 매체는 새로운 취약점을 만든다. 라디오의 실시간성과 친밀감은 사람들의 경계심을 낮췄다. 익숙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전하는 뉴스를 의심하기 어려웠다. 둘째, 공포는 바이럴하다. 화성인 침공 소식은 라디오를 듣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입소문으로 퍼졌다. 거울 뉴런이 작동했다. 공포에 질린 이웃을 보면, 왜 그런지 묻기 전에 먼저 공포가 전염된다.
정보 조작의 체계화: 냉전과 디스인포메이션
제2차 세계대전 후, 거짓 정보는 국가 전략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소련의 KGB는 “적극 공작(Active Measures)”이라는 이름으로 체계적인 허위정보 작전을 수행했다. 목표는 서방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동맹을 이간질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었다.
적극 공작은 다양한 형태를 띠었다. 위조 문서 제작, 프런트 조직 운영, 루머 유포, 언론인 매수. KGB는 수천 명의 요원을 이 작업에 투입했다. 냉전 기간 동안 수백 건의 주요 공작이 수행되었다.
1983년, 인도의 한 신문에 기사가 실렸다. AIDS가 미국 정부가 개발한 생물학 무기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점차 다른 나라 언론에도 인용되었다. 1987년이 되자 세계 80개국 이상의 언론에 이 이야기가 퍼져 있었다.
물론 완전한 거짓이었다. 이것은 “인펙션(Infektion)”이라는 암호명의 KGB 작전이었다. 소련이 해체된 후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KGB는 위조 문서를 만들고, 친소련 기자들에게 정보를 흘리고, 복잡한 경로를 통해 이야기를 퍼뜨렸다. 출처가 불분명해질수록 반박하기 어려워졌다.
이 작전의 피해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오늘날에도 일부 사람들은 AIDS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한 번 뿌려진 거짓말의 씨앗은 쉽게 뽑히지 않는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CIA는 해외에서 비슷한 작전을 수행했다. 과테말라 쿠데타에서 버네이즈의 PR 캠페인이 그 예다. 냉전은 진실과 거짓의 전쟁이기도 했다.
냉전이 끝난 후에도 이 기법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형태로 부활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의 인터넷연구소(Internet Research Agency)가 수행한 소셜미디어 공작은 KGB 적극 공작의 21세기 버전이었다.
소셜미디어: 가짜 뉴스의 민주화
2016년 미국 대선.
마케도니아의 작은 마을 벨레스에서 청년들이 발견한 것이 있었다. 페이스북에 자극적인 정치 뉴스를 올리면 클릭당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내용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클릭을 유발하는 것이 중요했다.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힐러리가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한다.” 이런 기사들이 수백만 번 공유되었다. 완전히 허위였지만, 확인하는 사람은 적었다. 자신의 기존 믿음을 강화하는 내용이라면,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확증 편향이다.
벨레스의 십대들은 이념적 동기가 없었다. 그들은 단지 돈을 벌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가짜 뉴스는 수천 마일 떨어진 나라의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은 누구나 미디어 제작자가 될 수 있게 했다. 그것은 해방이기도 하고, 위험이기도 하다.
MIT의 연구팀이 2018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트위터에서 허위 뉴스는 진실보다 70% 더 많이 리트윗되고, 6배 더 빨리 퍼진다. 왜 그럴까? 허위 뉴스가 더 “새롭고” “놀랍기” 때문이다. 뇌의 도파민 시스템은 예측을 벗어나는 정보에 반응한다. 뻔한 진실보다 충격적인 거짓이 더 강한 신경 반응을 유발한다.
연구팀은 봇(자동화된 계정)의 영향도 분석했다. 놀랍게도, 봇을 제거해도 결과는 같았다. 허위 뉴스의 확산은 봇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우리의 뇌가 거짓에 더 잘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이 경향을 증폭시킨다. 페이스북, 유튜브, 틱톡의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참여”를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분노, 공포, 놀라움을 유발하는 콘텐츠가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낸다. 플랫폼은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참여가 높은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시킨다. 거짓 정보가 구조적으로 유리한 환경이다.
딥페이크와 합성 현실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AI가 생성한 이미지와 영상이 실제와 구분 불가능해지고 있다.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은 누구의 얼굴이든, 누구의 목소리든 합성할 수 있다. 정치인이 하지 않은 말을 하는 영상, 유명인의 가짜 포르노,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뉴스 영상이 만들어진다.
2024년 슬로바키아 선거 직전, 야당 후보가 선거 조작을 논의하는 음성 녹음이 소셜미디어에 퍼졌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AI로 생성된 가짜라고 밝혔지만, 선거 전 48시간 동안 수십만 명이 이 녹음을 들었다. 진위 여부를 검증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거짓말쟁이의 배당(Liar’s Dividend)”이다. 모든 것이 조작 가능한 세상에서는, 진짜 증거도 “가짜일 수 있다”고 부정할 수 있다. 정치인의 실제 스캔들 영상이 공개되어도 “딥페이크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가짜를 만드는 기술이 진짜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연구자들은 딥페이크 탐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AI로 만든 영상에는 미세한 결함들이 있다. 눈 깜빡임의 패턴, 피부 질감의 불일치, 조명과 그림자의 어색함. 하지만 탐지 기술과 생성 기술은 끊임없는 군비 경쟁 중이다. 어느 쪽이 이길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이제 “보는 것도 믿을 수 없다”는 시대에 살고 있다.
거짓말이 이기는 이유
왜 거짓 정보는 진실보다 강력한가?
Part 1에서 다룬 뇌의 취약점들이 모두 작동한다. 가용성 휴리스틱은 반복되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느끼게 만든다. 도파민 시스템은 놀라운 정보에 보상을 준다. 거울 뉴런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복사하게 만든다. 인지 부조화는 기존 믿음에 반하는 정보를 무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구조적 비대칭이 있다. 거짓말을 만드는 것은 쉽고, 반박하는 것은 어렵다.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문장을 쓰는 데는 5초가 걸린다. 그것이 거짓임을 증명하려면 바티칸의 공식 입장을 확인하고, 출처를 추적하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 사이 거짓말은 이미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있다.
이것을 “브랜돌리니의 법칙(Brandolini’s Law)” 또는 “헛소리 비대칭 원칙”이라고도 부른다. 헛소리를 반박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그것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훨씬 크다. 팩트체커들은 영원히 뒤쫓을 수밖에 없다.
19세기 마크 트웨인의 말로 알려진 문장이 있다. “거짓말이 지구를 반 바퀴 도는 동안 진실은 아직 신발을 신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인용문 자체도 출처가 불분명하다. 트웨인이 실제로 이 말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가짜 뉴스에 대한 명언조차 출처가 가짜일 수 있다.
면역력을 키우는 법
거짓 정보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첫째, 감정적 반응을 경계하라. 분노, 공포, 놀라움이 치밀어 오르는 정보일수록 일단 멈춰야 한다. 강렬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 조작자들의 목표다.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진다. 공유 버튼을 누르기 전에 숨을 고르라.
둘째, 출처를 확인하라. 누가, 왜 이 정보를 퍼뜨리는가? 익명의 계정인가, 검증된 언론인가? 원본 출처는 무엇인가? 여러 독립적인 소스에서 확인되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면, 그 정보를 신뢰하지 마라.
셋째, 자신의 확증 편향을 인식하라.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일수록 더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긍정적인 뉴스, 내가 싫어하는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 이런 것들이 특히 위험하다. 편향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방어의 시작이다.
넷째, 천천히 소비하라. 정보의 과잉은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무한 스크롤을 멈추고, 깊이 있는 기사를 천천히 읽어라. 속도는 거짓말의 친구다. 느림은 진실의 친구다.
다섯째, 회의주의와 냉소주의를 구분하라.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과,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은 다르다. 냉소주의는 “어차피 다 가짜야”라고 말하며 손을 놓는다. 회의주의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말하며 진실을 추적한다. 가짜 뉴스에 지쳐서 진실 자체를 포기하면, 조작자들의 승리다.
여섯째, 정보 위생을 실천하라. 몸의 위생을 챙기듯 정보의 위생도 챙겨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소스를 정하고, 알고리즘의 추천에만 의존하지 마라. 가끔은 자신과 다른 관점의 매체도 읽어라. 에코 챔버에서 빠져나와야 현실을 볼 수 있다.
일곱째, 미디어 리터러시를 배우라. 이것은 21세기의 필수 기술이다. 이미지가 조작되었는지 확인하는 방법, 뉴스 기사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방법, 소셜미디어에서 봇을 식별하는 방법. 이런 기술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고, 성인도 배워야 한다.
역사의 거울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부터 AI 딥페이크까지, 기술은 정보의 속도와 도달 범위를 바꿨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감정에 반응하고, 편향에 빠지고, 지름길을 택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방어의 핵심은 결국 비판적 사고다.
트렌토의 시몬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자. 15세기에도 교황의 조사관은 진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진실은 권력과 편견 앞에 무력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 많은 정보와 더 좋은 도구가 있다. 하지만 권력과 편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진실이 자동으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가짜 뉴스의 역사는 결국 인간 본성의 역사다. 우리는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두려워하는 것에 반응한다. 이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아는 것, 이 취약점을 인식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 인식이 방어의 시작이다.
다음 Part에서는 역사를 떠나 인문학으로 들어간다. 권모술수의 철학. 마키아벨리는 정말로 악인이었을까? 한비자의 냉혹한 인간관은 현실주의인가, 냉소주의인가? 설득과 조작의 경계는 어디인가? 조작의 기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