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창조한 사람들
1929년 뉴욕, 부활절 퍼레이드.
5번가를 따라 행진하는 인파 속에서 열 명의 젊은 여성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당시 여성의 공공장소 흡연은 금기였다. 일부 도시에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사회적 낙인이 따랐다. 하위계층이나 불량배나 담배를 피운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이 여성들은 달랐다. 세련된 옷차림의 교양 있어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담배를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자유의 횃불!"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다음 날 신문 1면에 사진이 실렸다. "여성들, 자유의 횃불을 들다." 기사는 이것을 여성 해방 운동의 상징적 순간으로 묘사했다. 전국으로 뉴스가 퍼졌다. 용감한 여성들이 남성 중심 사회의 억압에 저항했다는 서사였다.
아무도 몰랐다. 이 모든 것이 연출이었다는 사실을.
여성들은 고용된 모델이었다. 기자들에게 사전에 귀띔이 갔다. "자유의 횃불"이라는 문구도 미리 준비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아메리칸 토바코 회사에 고용된 28세의 홍보 전문가. 그의 이름은 에드워드 버네이즈.
그는 담배를 판 것이 아니었다. 욕망을 창조한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조카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189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안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여동생이었고, 아버지 엘리는 프로이트 부인의 오빠였다. 이중으로 프로이트와 연결된 셈이다. 가족은 버네이즈가 한 살 때 미국으로 이민했지만, 삼촌과의 교류는 계속되었다.
버네이즈는 코넬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언론계로 진출했다. 첫 직장은 의학 잡지 편집자였고, 이후 브로드웨이 연극 홍보를 맡았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 공공정보위원회(CPI)에 합류하여 전쟁 선전 활동에 참여했다. 여기서 그는 대중 심리를 조작하는 기술의 위력을 체험했다.
전쟁이 끝난 후, 버네이즈는 생각했다. 전시에 정부가 사용한 선전 기법을 평시에 기업이 사용할 수 없을까? 그는 이것을 "선전(propaganda)"이라 부르기를 꺼렸다. 너무 부정적인 어감이 있었다. 대신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 "공중 관계(Public Relations)", 줄여서 PR.
1923년, 32세의 버네이즈는 『여론의 결정화(Crystallizing Public Opinion)』를 출간했다. PR이라는 직업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최초의 책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PR 카운슬러"라 칭했다. 같은 해 뉴욕 대학에서 최초의 PR 강좌를 개설했다.
그의 핵심 통찰은 삼촌 프로이트에게서 왔다. 인간의 행동은 이성이 아니라 무의식적 욕망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들에게 제품의 기능을 설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대신 그들의 숨겨진 욕망을 자극해야 한다. 제품을 팔지 말고, 감정을 팔아라.
욕망의 엔지니어링
버네이즈의 방법론은 단순했다. 첫째, 대중이 의식하지 못하는 욕망을 파악한다. 둘째, 그 욕망을 특정 제품이나 행동과 연결시킨다. 셋째, 이 연결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연출한다.
"자유의 횃불" 캠페인은 이 공식의 완벽한 적용이었다. 당시 여성들 사이에는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1920년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었지만,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했다. 버네이즈는 이 불만을 포착했다.
캠페인을 설계하기 전, 버네이즈는 정신분석가 에이브러햄 브릴에게 자문을 구했다. 브릴은 프로이트의 제자였다. 그는 담배가 남성성의 상징이며, 여성에게 담배는 "남근 선망"의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남성의 권력을 획득하는 상징적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버네이즈는 이 분석을 마케팅 전략으로 번역했다. 담배를 건강이나 맛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상징으로 포지셔닝한 것이다.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면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 된다. 페미니즘의 언어가 담배 판매의 도구가 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캠페인 이후 여성 흡연율은 급격히 상승했다. 1923년 여성 담배 시장 점유율은 5%였다. 1929년 12%, 1935년 18%로 치솟았다. 아메리칸 토바코의 럭키 스트라이크는 여성 소비자를 대거 확보했다. 수십 년 후, 폐암 사망자 중 여성 비율도 함께 치솟았다. 버네이즈 자신은 아내가 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아침 식사의 발명
베이컨과 달걀. 전형적인 미국식 아침 식사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통"이 된 것은 192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 미국인들의 아침은 가벼웠다. 토스트나 커피, 간단한 시리얼 정도.
1920년대 초, 비치넛 패킹 컴퍼니는 버네이즈에게 의뢰했다. 베이컨 판매를 늘려달라고. 버네이즈는 베이컨의 맛이나 가격을 광고하지 않았다. 대신 의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가벼운 아침 식사와 든든한 아침 식사 중 어느 쪽이 건강에 좋습니까?"
당연히 의사들은 든든한 아침 식사가 낫다고 답했다. 에너지 공급, 혈당 안정 등의 이유였다. 버네이즈는 이 답변들을 모아 보도 자료를 만들었다. "4,500명의 의사가 권장하는 든든한 아침 식사." 그리고 베이컨과 달걀을 그 예시로 제시했다.
신문들이 이 "뉴스"를 실었다. 의사의 권위가 베이컨에 부여되었다. 베이컨과 달걀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의 문제가 되었다. 판매량이 급증했다. 그리고 "미국식 아침 식사"라는 전통이 탄생했다.
버네이즈는 이 기법을 “제3자 기법”이라 불렀다. 기업이 직접 자사 제품을 칭찬하면 신뢰도가 떨어진다. 대신 중립적으로 보이는 제3자—의사, 과학자, 유명인—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소비자는 광고를 보는 것이 아니라 뉴스를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경계심이 낮아진다. 오늘날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원조가 바로 이것이다.
위생과 패션의 조작
버네이즈의 캠페인은 담배와 베이컨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수십 년간 수백 개의 클라이언트를 위해 일했고, 그때마다 같은 원리를 적용했다. 제품을 팔지 말고, 욕망을 팔아라. 정보를 주지 말고, 감정을 자극하라.
1930년대, 딕시 컵 회사는 버네이즈를 고용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공용 컵이 여전히 흔했다. 기차역, 학교, 공공장소에 물통과 함께 비치된 컵을 여러 사람이 돌려 썼다. 일회용 종이컵의 필요성을 소비자들이 느끼지 못했다.
그는 공용 컵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세균 전파, 전염병의 위험. 버네이즈는 “식음료의 위생적 배급 연구 촉진 위원회”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단체를 만들었다. 물론 딕시 컵 회사가 자금을 댄 단체였다. 의사와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공용 컵은 비위생적이며 질병을 옮긴다는 인식이 퍼졌다. 딕시 컵의 매출은 급증했다. 위생에 대한 공포가 매출이 된 것이다.
1934년, 아메리칸 토바코는 버네이즈에게 다시 의뢰했다. 이번 문제는 색깔이었다. 럭키 스트라이크 담뱃갑은 짙은 녹색이었는데, 당시 여성 패션과 어울리지 않았다. 패션에 민감한 여성들이 녹색 담뱃갑을 들고 다니기를 꺼렸다.
담뱃갑 색을 바꾸면 될 것 같지만, 회사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이미 녹색은 브랜드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버네이즈는 역발상을 했다. 담뱃갑을 바꿀 수 없다면, 패션을 바꾸면 된다.
그는 뉴욕에서 “녹색 무도회(Green Ball)”를 개최했다. 상류층 사교계 인사들이 초대되었고, 드레스 코드는 녹색이었다. 패션 잡지 편집자들에게 녹색이 “올해의 색”이라는 정보를 흘렸다. 파리의 디자이너들에게 녹색 의상 라인을 요청했다. 백화점에는 녹색 액세서리가 진열되었다. 녹색은 그해 유행색이 되었다. 이제 녹색 담뱃갑은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버네이즈는 패션 트렌드 자체를 조작한 것이다.
정치도 예외가 아니었다. 1924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이미지 문제가 있었다. 과묵하고 딱딱한 인상이었다. “침묵의 캘”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버네이즈가 고용되었다. 그는 브로드웨이 스타들을 백악관 조찬에 초대했다. 대통령이 유명 배우들과 함께 웃으며 식사하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딱딱한 정치인이 갑자기 친근하고 유쾌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것이 오늘날 정치인 이미지 메이킹의 원형이다.
민주주의와 조작
1928년, 버네이즈는 그의 가장 솔직한 책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출간했다. 첫 문장부터 도발적이다.
"우리의 정치, 습관, 취향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의도적이고 지능적인 조작은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요소다. 이 보이지 않는 사회 메커니즘을 조종하는 자들이 우리나라의 진정한 지배 권력인 보이지 않는 정부를 구성한다."
버네이즈는 이것을 비판한 것이 아니었다. 정당화한 것이었다. 그의 논리는 이랬다. 대중은 비합리적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 모른다. 따라서 계몽된 엘리트가 대중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PR 전문가는 이 역할을 수행하는 "보이지 않는 통치자"다.
그는 이것을 "동의의 공학(engineering of consent)"이라 명명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끼게 하면서, 실제로는 그 선택을 설계하는 기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안에서 작동하는 조작 시스템이다.
1930년대, 나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버네이즈의 책들을 탐독했다. 버네이즈는 유대인이었고, 나치 정권을 혐오했다. 하지만 그의 기법은 국경을 넘어 흡수되었다. 괴벨스는 대중 심리 조작에 버네이즈의 통찰을 적용했다. 같은 도구가 담배를 팔 수도, 홀로코스트를 정당화할 수도 있었다.
바나나 공화국의 탄생
버네이즈의 가장 어두운 업적은 1954년 과테말라에서 일어났다.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오늘날의 치키타 브랜즈)는 중앙아메리카 최대의 바나나 생산 기업이었다. 과테말라에서 그들은 광대한 농장을 소유했고,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했다. 1951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하코보 아르벤스 대통령이 토지 개혁을 추진했다. 유나이티드 프루트의 미사용 토지를 수용하여 소작농에게 분배하려 한 것이다.
회사는 버네이즈를 고용했다. 버네이즈의 임무는 아르벤스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르벤스를 "공산주의자"로 프레이밍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미국 언론에 "소련의 위협이 미국의 뒷마당에 도달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기자들을 과테말라로 데려가 "공산주의의 위협"을 직접 보게 했다. 물론 가이드된 투어였다.
냉전의 공포가 미국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버네이즈의 캠페인은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 정부는 CIA를 투입했다. 1954년 쿠데타가 일어났다. 아르벤스는 축출되었고,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과테말라는 이후 36년간 내전에 휩싸였다. 20만 명이 사망했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바나나 회사의 이익과 PR 전문가의 기술에 의해 전복된 것이다.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경멸적 표현이 여기서 유래했다. 버네이즈는 말년까지 이 캠페인을 자랑스러워했다. 그에게 그것은 공산주의를 막은 애국적 행위였다. 토지 개혁이 공산주의가 아니었다는 사실, 수십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은 그의 자서전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욕망은 창조된다
버네이즈의 유산은 우리 삶 곳곳에 스며 있다.
제품을 기능이 아니라 정체성과 연결시키는 마케팅. 나이키 신발은 운동화가 아니라 "자신을 극복하는 태도"다. 애플 제품은 컴퓨터가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는 가방을 파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상징"을 판다. 버네이즈가 담배에 자유를 연결시킨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기법이다.
제3자 기법도 건재하다. 의사 가운을 입은 배우가 치약을 권하고, 유명인이 다이어트 제품을 사용한다. 과학적 연구를 인용한 기사가 특정 건강 보조제의 효능을 알린다. 그 연구의 자금이 어디서 왔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광고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보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의의 공학은 정치에도 적용된다. 선거 캠페인은 정책 토론이 아니라 이미지 전쟁이다. 후보의 넥타이 색깔, 악수하는 각도, 아이와 함께 있는 사진. 모든 것이 계산되고 연출된다. 유권자는 정보에 기반한 선택을 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감정에 기반한 반응을 한다.
욕망의 역설
버네이즈의 통찰에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욕망 자체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것이라면?
1920년대 여성들은 담배를 피우고 "싶었을까"? 아니면 담배를 피우고 싶도록 "만들어졌을까"? 미국인들은 베이컨과 달걀을 "원했을까"? 아니면 원하도록 "훈련받았을까"?
이것은 자유의지에 관한 질문이다. Part 1에서 우리는 뇌가 어떻게 속는지를 살펴보았다. 휴리스틱, 도파민, 거울 뉴런, 인지 부조화. 버네이즈는 이 모든 것을 과학적 용어 없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이용했다. 사람들의 무의식적 욕망을 자극하고, 그들이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게 만들었다.
이것은 설득인가, 조작인가? 버네이즈 자신은 그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효과였다. 하지만 프롤로그에서 우리가 던진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자. 설득은 상대방의 자유로운 판단을 존중한다. 조작은 그 판단 자체를 왜곡한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필요성
버네이즈의 세계에서 방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숨겨진 이해관계를 추적하라. "누가 이익을 얻는가?"라는 질문을 항상 던져라. 건강 정보 기사 뒤에 제약회사가 있을 수 있다. 환경 보고서 뒤에 석유회사가 있을 수 있다. 정치적 메시지 뒤에 로비스트가 있을 수 있다. 출처를 확인하고,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라.
둘째, 감정적 반응을 의심하라. 강렬한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이 조작의 결과일 수 있다. "이 메시지가 나의 어떤 욕망이나 두려움을 자극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가, 느끼고 있는가?" 감정이 앞설 때, 한 발 물러서서 분석할 시간을 가져라.
셋째, 대안적 서사를 찾아라. 하나의 프레임만 보면 그것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자유의 횃불" 서사만 들으면 담배가 해방의 도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담배 회사의 이윤, 폐암 사망률, 니코틴 중독이라는 다른 서사를 함께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언제나 다른 관점을 찾아라.
넷째, 자신의 욕망을 성찰하라. "내가 이것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욕망은 어디서 왔는가?" 모든 욕망이 조작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욕망이 진짜 내 것이고, 어떤 것이 주입된 것인지 구분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창조된 현실 속에서
버네이즈는 현대 문명의 어두운 면을 상징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믿지 않았다. 대중은 조작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조작의 도구를 발명했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악당으로 그리는 것은 부족하다. 그가 만든 세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뉴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우리가 투표하는 방식. 모든 곳에 버네이즈의 후예들이 있다. 그들을 모두 피할 수는 없다.
가능한 것은 인식이다. 조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깨어 있으려 노력하는 것.
버네이즈는 1928년 이렇게 썼다. "지능적인 소수는 대중의 정신적 과정과 사회적 패턴을 이해하고 조종할 필요가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 그 "지능적인 소수"는 더 정교한 도구를 가지고 있다. 빅데이터, 알고리즘, 맞춤형 광고. 버네이즈가 상상도 못 했을 수준의 개인화된 조작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그가 없던 것이 있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다. 버네이즈의 시대에 그의 기법은 소수만 알았다. 오늘날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있다. 조작의 메커니즘을 배우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무기다.
다음 장에서는 조작의 역사를 마무리한다. 인쇄술의 발명부터 소셜미디어까지, 허위 정보가 어떻게 500년간 진화해왔는지. 가짜 뉴스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다만 속도가 빨라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