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의 오해와 진실
"마키아벨리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교활함. 음모.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냉혹함. 권모술수의 대명사. 서양 역사에서 이 이름만큼 오랫동안, 일관되게 욕먹어온 이름도 드물다.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키아벨리즘"은 비도덕적 권력 추구의 동의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정작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의 책을 읽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군주론』이라는 제목은 알아도, 그 안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한 문장만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유명한 문장조차 마키아벨리가 직접 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정말로 악인이었을까? 그가 실제로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몰락한 외교관의 편지
1513년 12월, 피렌체 근교의 작은 농장.
44세의 남자가 낮에는 농부들과 술을 마시고 카드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저녁이 되면 그는 진흙 묻은 옷을 벗고 궁정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가 고대의 위인들과 "대화"를 나눈다. 플루타르코스, 리비우스, 타키투스. 그는 그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은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친구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보낸 편지에 묘사한 자신의 일상이다.
불과 1년 전까지 그는 피렌체 공화국의 제2서기장이었다. 14년간 외교 사절로 유럽을 누볐다. 프랑스 왕 루이 12세를 만났고, 교황 율리오 2세와 협상했으며,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궁정에 파견되었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1512년, 모든 것이 무너졌다. 메디치 가문이 스페인 군대의 힘을 빌려 피렌체로 돌아왔다. 18년간 추방당했던 그들이 권력을 되찾은 것이다. 공화정은 붕괴했고, 마키아벨리는 해임되었다. 이듬해에는 메디치 가문 전복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까지 당했다. 스트라파도라는 고문 기구에 매달려 어깨가 탈골되는 고통을 겪었다.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정치 인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농장에서 보낸 그 "4시간의 독서와 사색"에서 『군주론』이 태어났다. 그는 이 짧은 책을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에게 헌정했다. 복직을 희망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이력서였다. 그러나 로렌초는 이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키아벨리는 죽을 때까지 정치 무대에 복귀하지 못했다.
체사레 보르자: 악덕의 교과서인가
『군주론』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찬사다.
체사레 보르자.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사생아.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최악의 악당 중 하나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그는 형을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적들을 속임수로 유인해 학살했으며, 독살과 암살을 일삼았다. 마키아벨리 자신도 이 사실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를 모범으로 제시했을까?
1502년,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의 사절로 체사레를 만났다. 당시 체사레는 파죽지세로 로마냐 지방을 정복하고 있었다. 교황인 아버지의 권위와 프랑스의 군사적 지원을 등에 업고, 이탈리아 중부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 했다.
마키아벨리가 목격한 것은 잔인함이 아니라 효율성이었다. 체사레가 정복한 로마냐는 원래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하던 곳이었다. 지역 영주들이 주민을 착취하고, 도적떼가 횡행했다. 체사레는 레미로 데 오르코라는 냉혹한 인물을 총독으로 임명했다. 레미로는 가혹한 수단으로 질서를 회복했다. 범죄자들을 처형하고, 반항하는 영주들을 제압했다. 주민들은 그를 두려워했지만, 적어도 거리는 안전해졌다.
그런데 체사레는 묘한 일을 했다. 질서가 회복되자 그는 레미로를 체포하여 광장에서 처형했다. 시신을 두 토막 내어 공개 전시했다. 명목상의 죄목은 과도한 가혹 행위. 마키아벨리는 이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이것을 단순한 잔인함이 아니라 정치적 천재성으로 해석했다.
체사레가 한 일은 무엇인가? 더러운 일을 시킨 다음, 그 더러움의 책임을 대리인에게 전가한 것이다. 주민들의 분노는 레미로에게 향했고, 체사레는 "정의로운 군주"의 이미지를 얻었다. 한 사람의 잔인한 죽음으로 수천 명의 지지를 샀다. 마키아벨리는 이것을 "잔인함의 올바른 사용"이라고 불렀다.
현대의 독자들은 여기서 불쾌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마키아벨리즘 아닌가? 목적을 위해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는 냉혹함?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논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묻고 있었다. 무질서한 땅에 질서를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폭력을 쓰지 않고 폭력배들을 제압할 수 있는가? 좋은 의도만으로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의 진실
마키아벨리가 실제로 쓴 문장을 보자.
『군주론』 18장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람들의 행위, 특히 군주의 행위는 최종적인 결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군주는 국가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성공하면 된다. 그가 사용한 수단은 명예롭게 여겨지고 모든 사람에게 칭송받을 것이다."
원문을 더 직역하면 이렇다. "결과가 그를 무죄로 만들 것이다(si guarda al fine)." 이것이 후대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로 변형된 것이다. 그러나 원문의 뉘앙스는 다르다. 마키아벨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결과로 판단한다"고 관찰한 것이다.
이것은 당위가 아니라 사실의 기술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사람들은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선언이 아니라 경험적 관찰이다.
Part 1에서 우리는 결과 편향(outcome bias)을 배웠다. 인간은 결정의 질을 결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 결정은 현명했던 것이 되고, 나쁜 결과가 나오면 어리석었던 것이 된다. 과정의 합리성은 무시된다. 마키아벨리는 500년 전에 이 심리를 정확히 포착한 것이다.
그는 덧붙인다. "왜냐하면 대중은 항상 외양과 결과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대중밖에 없다." 냉소적으로 들리지만, 이것 역시 관찰이다. 대중은 복잡한 맥락보다 단순한 결과를 본다. 과정의 도덕성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평가한다. 마키아벨리는 이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군주에게 이 현실을 활용하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여우와 사자: 이중의 본성
『군주론』 18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유명한 비유를 든다.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짐승들 중에서 여우와 사자를 본받아야 한다. 사자는 함정을 피하지 못하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보려면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겁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
여우는 교활함과 속임수를 상징한다. 사자는 무력과 위엄을 상징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둘 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직 힘만 사용하는 군주는 속임수에 당하고, 오직 속임수만 사용하는 군주는 힘 앞에 무너진다.
여기서 더 충격적인 조언이 이어진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때, 또는 약속을 하게 만든 이유가 사라졌을 때, 현명한 군주는 약속을 지킬 수 없고 지켜서도 안 된다."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 마키아벨리는 필요하다면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말한다. 단, 조건이 있다. "거짓말을 잘 숨겨야 하며, 위대한 위선자이자 기만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동시대 교황 알렉산데르 6세를 예로 든다. "그는 평생 속이는 일만 했고, 항상 속일 대상을 찾았다. 그런데도 그의 기만은 항상 성공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 기술의 대가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냉혹한 인간관이 드러난다. 그는 인간을 어떻게 보았는가? "인간은 불행한 존재여서, 필요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 한 선을 행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은 배은망덕하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며, 위험을 피하려 하고, 이익에 탐욕스럽다."
성선설의 정반대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믿지 않았다. 따라서 군주가 도덕적으로 행동하면 신하들도 도덕적으로 따를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환상이다. 늑대들 사이에서 양처럼 행동하면 잡아먹힐 뿐이다.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을 주는 것
『군주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또 다른 대목이다.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중 어느 쪽이 나은가? 둘 다를 원하겠지만, 둘을 결합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왜 그런가? 마키아벨리의 논리는 이렇다. "사랑은 은혜의 끈으로 유지되는데, 인간은 본래 사악하므로 자신의 이익이 걸린 상황에서 그 끈을 끊어버린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 유지되며, 이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랑은 상대방의 선의에 의존하지만, 두려움은 상대방의 이기심에 의존한다. 인간의 이기심은 믿을 수 있지만, 인간의 선의는 믿을 수 없다. 따라서 두려움이 더 안정적인 기반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중요한 단서를 붙인다. "다만 미움을 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서도 미움받지 않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재산과 여자를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죽음은 잊어도 재산의 손실은 잊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관찰이 이어진다.
현대적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리더는 존경받되 친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개인의 핵심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통제할 수 있지만, 미움은 통제할 수 없다. 미움받는 군주는 암살당한다.
운명과 역량: 포르투나와 비르투
『군주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사를 지배하는 것은 운명인가, 인간의 역량인가?
그의 대답은 절충적이다. "운명은 우리 행위의 절반을 지배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우리에게 맡긴다." 완전한 결정론도, 완전한 자유의지도 아니다. 인간은 운명의 노예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다. 운명이라는 거센 강물 앞에서, 인간은 제방을 쌓고 물길을 돌려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운명을 "포르투나"라 불렀고, 인간의 역량을 "비르투"라 불렀다. 비르투는 단순한 도덕적 덕목이 아니다. 그것은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 기회를 포착하는 감각, 결단력, 용기를 포함한다. 좋은 군주는 운이 좋을 때 방심하지 않고, 운이 나쁠 때 좌절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상황에 자신을 맞추는 유연함이 비르투의 핵심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문제를 인정한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신중한 성격의 사람은 과감해야 할 때도 신중하게 행동하고, 충동적인 사람은 신중해야 할 때도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만약 자신의 본성을 상황에 맞게 바꿀 수 있다면 운명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운명에 휘둘린다."
Part 1에서 우리는 뇌의 경직성을 배웠다. 휴리스틱은 빠른 판단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특정 패턴에 가둔다. 인지 부조화는 새로운 정보를 기존 믿음에 맞춰 왜곡하게 만든다. 마키아벨리는 500년 전에 이 문제를 직시했다. 인간은 변화를 싫어한다. 성공했던 방식을 상황이 바뀌어도 고수한다. 그래서 몰락한다.
마키아벨리는 왜 오해받았는가
『군주론』이 출판된 것은 마키아벨리가 죽은 후인 1532년이다. 그리고 곧 격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가톨릭 교회는 1559년 『군주론』을 금서 목록에 올렸다.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종교를 정치적 도구로 보았다는 이유였다. 프로테스탄트 진영도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를 비난했다. "구교도의 사악함의 증거"라고.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는 "악덕의 교사 마키아벨"이라는 캐릭터를 무대에 올렸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살인적인 마키아벨"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마키아벨리는 읽히기보다 욕먹기 위해 인용되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제대로 읽은 사람들의 평가는 달랐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그를 근대 정치학의 창시자로 재평가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마키아벨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를 솔직하게 기술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마키아벨리 이전의 정치 철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했다. 플라톤의 철인 왕,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도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 모두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을 제시했다. 마키아벨리는 질문을 바꿨다.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보았다.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떠한지를. 이것이 그를 위험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거울을 들이댔고, 사람들은 그 거울을 깨뜨리고 싶어했다.
공화주의자 마키아벨리
『군주론』만 읽으면 마키아벨리를 오해하기 쉽다. 그의 또 다른 대작 『로마사 논고』를 함께 읽어야 전체 그림이 보인다.
『로마사 논고』에서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을 옹호한다. 로마 공화정의 역사를 분석하며, 자유로운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치 체제가 가장 안정적이고 강력하다고 주장한다. 군주정보다 공화정이 우월하다고.
모순처럼 보인다. 『군주론』에서는 강력한 군주를 찬양하고, 『로마사 논고』에서는 공화정을 찬양한다. 어느 쪽이 진짜 마키아벨리인가?
답은 맥락에 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이탈리아는 분열되어 있었다.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나폴리, 교황령이 서로 싸웠고, 프랑스와 스페인이 틈을 타 침략했다. 무질서와 혼란의 시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정은 작동하지 않는다. 먼저 질서가 필요하다. 강력한 군주가 혼란을 수습하고, 외세를 몰아내고, 통일된 국가를 세워야 한다. 그 후에야 자유로운 제도가 가능하다.
『군주론』의 마지막 장은 "이탈리아를 야만인들로부터 해방하라"는 호소로 끝난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에 이탈리아 통일의 사명을 부여하려 했다. 그에게 강력한 군주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외세를 몰아내기 위한 수단.
그의 진짜 이상은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화국이었다. 14년간 그가 봉사한 것은 군주가 아니라 피렌체 공화국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귀환으로 그가 잃은 것도 공화국이었다. 『군주론』은 공화주의자가 절망 속에서 쓴 현실주의적 처방전이었다.
현대의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정치의 세계를 보라. 선거 캠페인에서 후보들은 이미지를 관리한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원하지 않는 모습은 숨긴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위대한 위선자"의 기술이다. 공약은 상황에 따라 수정되고, 때로는 정반대로 뒤집힌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불리할 때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이 실천되고 있다.
기업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경영 전략서들은 마키아벨리를 직접 인용하거나, 그의 원칙을 현대적 언어로 포장한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때로는 비정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존경받으라." "상황에 맞게 전략을 바꿔라." 비즈니스 스쿨에서 『군주론』을 가르치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단순히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말라"는 메시지로 읽는 것은 오독이다. 그는 무분별한 악행을 권하지 않았다. "잔인함의 올바른 사용"과 "나쁜 사용"을 구분했다. 올바른 사용은 한 번에 필요한 만큼만 하고 끝내는 것이다. 나쁜 사용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다. 전자는 안정을 가져오고, 후자는 멸망을 가져온다.
그는 또한 명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명한 군주는 인색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그의 절약 덕분에 충분한 수입이 생겨, 세금을 올리지 않고도 나라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인기보다 장기적인 신뢰를 중시하라는 조언이다. 단기적 이익을 위해 장기적 명성을 버리는 것은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이 아니다.
도덕과 현실 사이에서
마키아벨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를 악의 옹호자로 읽는 것은 피상적이다. 그는 악을 권장하지 않았다. 다만 선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선하게만 행동하려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파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배워야 하며, 필요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악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라는 말이다. 늑대들 사이에서 양처럼 행동하면 죽는다. 그러나 양들 사이에서 늑대처럼 행동하는 것도 어리석다.
정치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마키아벨리의 진짜 충격이 여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마키아벨리는 기독교적 도덕과 정치적 성공이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원칙으로는 국가를 지킬 수 없다. 이것은 도덕의 부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 체계 사이의 충돌에 대한 인식이다.
어쩌면 마키아벨리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항상 효과적인가? 효과적인 것이 항상 도덕적인가? 둘이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쉬운 답은 없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적어도 질문을 정직하게 던졌다. 위선적인 이상주의 대신 불편한 현실주의를. 그것이 500년간 그를 미움받게 했고, 동시에 읽히게 만들었다.
거울의 양면
마키아벨리는 조작의 기술을 가르친 사람인가, 아니면 조작의 기술을 폭로한 사람인가?
둘 다일 수 있다. 『군주론』은 군주를 위한 안내서이자, 시민을 위한 경고문이다. 군주에게는 "이렇게 하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시민에게는 "권력자들은 이렇게 행동한다"고 알려준다. 칼은 찌르는 데도 쓰이고, 방어하는 데도 쓰인다.
18세기 철학자 루소는 이렇게 해석했다. "마키아벨리는 왕들에게 교훈을 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민중에게 위대한 교훈을 주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공화주의자들의 교과서다." 권력의 메커니즘을 폭로함으로써, 마키아벨리는 역설적으로 시민들에게 저항의 도구를 제공했다는 해석이다.
이 글의 독자인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Part 1에서 우리는 뇌의 취약점을 배웠다. 그것을 이용하여 남을 조작할 수도 있고, 자신이 조작당하지 않도록 방어할 수도 있다. 마키아벨리도 같은 양면성을 가진다. 그의 가르침을 권력 추구에 사용할 수도 있고, 권력의 남용을 경계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그러나 적어도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첫걸음이다.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면, 그것에 저항할 수도, 현명하게 사용할 수도 없다.
다음 장에서는 동양으로 눈을 돌린다. 마키아벨리보다 1,700년 먼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비슷한 사상가가 있었다. 한비자. 법가 사상의 집대성자. 그는 인간을 어떻게 보았고, 권력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마키아벨리와 한비자를 비교하면, 동서양을 관통하는 권력의 본질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