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다크 심리학
기원전 233년, 진나라 수도 함양의 감옥.
한 남자가 독약이 담긴 잔을 받아들었다. 그는 한비자. 당대 최고의 법가 사상가였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는 동문수학한 친구 이사였다. 이사는 한비자의 재능을 시기했다. 진시황이 한비자의 글을 읽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감탄했을 때, 이사의 마음에 독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이기심을 냉혹하게 분석하고, 그것을 통치의 도구로 삼으라고 가르친 사상가가, 정작 자신이 섬기려던 군주의 곁에서 동료의 이기심에 의해 죽임당했다. 그가 설파한 인간 본성이 그 자신에게 적용된 셈이다.
한비자는 마키아벨리보다 1,700년 앞서 태어났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상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인간의 선함을 믿지 말라. 권력은 냉정한 계산 위에 세워야 한다. 도덕은 통치의 기반이 될 수 없다. 동양과 서양,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같은 결론에 도달한 두 사상가. 그들은 무엇을 보았기에 그토록 어두운 인간관에 이르렀을까?
한비자는 기원전 280년경 한나라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말을 더듬었다. 사마천의 『사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한비자는 말을 더듬어 말로는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었으나, 글을 잘 지었다.”
전국시대에 유세객들은 입으로 먹고살았다. 소진은 여섯 나라의 왕을 차례로 설득하여 합종책을 이끌어냈다. 그의 전설적인 유세 여정을 보자. 소진은 먼저 연나라로 갔다. 연문후를 설득하여 조나라와 동맹을 맺게 했다. 그 다음 조나라의 숙후를 만났다. 조나라에서 한나라로, 한나라에서 위나라로, 위나라에서 제나라로, 마지막으로 초나라까지. 그는 여섯 왕을 차례로 만나 합종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마침내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는 위치에 올랐다. 한 사람의 언변이 천하의 지도를 바꾼 것이다.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 연횡책을 펼치며 소진의 합종을 깨뜨렸다. 그는 초나라 회왕에게 접근했다. “진나라와 동맹을 맺으면 상, 어 땅 600리를 주겠습니다.” 회왕은 욕심에 눈이 멀어 제나라와의 동맹을 파기했다. 그러나 약속된 땅은 6리에 불과했다. 600리가 아니라 6리. 장의는 “제가 언제 600리라고 했습니까? 6리라고 했습니다”라고 발뺌했다. 분노한 회왕이 군대를 일으켰지만 대패했다. 장의의 말 한마디가 초나라를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
한비자에게 그런 언변의 길은 닫혀 있었다. 그는 대신 붓을 들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상을 글로 쏟아냈다. 『한비자』 55편. 그의 모든 분노와 통찰이 담긴 저작이다. 역설적으로, 말을 더듬는 약점이 가장 정교한 정치 이론서를 낳은 것이다. 그는 입이 아닌 손으로 천하를 움직이려 했다.
그는 고국 한나라의 쇠락을 지켜봐야 했다. 한나라는 전국칠웅 중 가장 약했다. 땅은 좁고 군대는 적었다. 주변 강국들에게 번번이 영토를 빼앗겼다. 한비자는 한왕에게 여러 차례 개혁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왕은 유학자들의 말만 들었다. 한비자의 분노는 점점 커져갔다. 그 분노가 『한비자』의 연료가 되었다.
한비자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해야 그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에서 3세기, 중국은 전국시대라 불리는 대분열기에 있었다. 일곱 개의 강국이 패권을 다투었다. 진, 초, 제, 연, 조, 위, 한. 이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영토를 빼앗고, 동맹을 맺었다가 배신하고, 책략을 구사했다. 250년간 이어진 이 시대에 수백만 명이 죽었다.
기원전 260년 장평 전투. 진나라의 백기 장군은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학살 중 하나다. 한비자가 스무 살 무렵의 일이다. 그는 이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권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40만이라는 숫자를 상상해보라. 한 줄로 세우면 수백 킬로미터에 달한다. 그 모든 사람이 땅에 묻혔다. 항복했는데도.
전쟁의 규모도 변했다. 춘추시대의 전쟁은 귀족들의 의례적 결투에 가까웠다. 전차를 타고 만나 예를 갖추고 싸웠다. 상대가 도망치면 추격하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송양공은 전투 중에 적이 강을 건너고 있을 때 공격하라는 참모의 제안을 거절했다. “군자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적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는 패배했고, 후대에 ’송양지인’이라는 어리석음의 대명사가 되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전쟁은 총력전이 되었다. 수십만 대군이 동원되고, 포로는 학살되었다. 손자병법이 “병자, 궤도야(兵者, 詭道也)”라고 선언한 것이 이 시대다. 전쟁은 속임수다. 정정당당함은 패배를 부른다. 도덕을 지키면 죽는다. 이것이 한비자가 체험한 현실이었다.
이 혼란의 시대에 제자백가가 탄생했다. 유가는 인과 예로 사회를 바로잡자고 했다. 묵가는 겸애와 비공을 외쳤다. 도가는 무위자연을 주장했다. 병가는 전쟁의 기술을 연구했다. 각각의 학파가 난세를 해결할 처방전을 내놓았다. 법가는 이 중 가장 냉혹한 답을 제시했다. 인간을 믿지 마라. 제도를 믿어라. 도덕으로 교화하려 하지 마라. 상과 벌로 통제하라.
한비자는 순자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사도 같은 스승 아래에서 공부했다. 훗날 한비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그 이사다. 두 사람의 운명은 이미 이때 교차하고 있었다.
순자는 유학자였지만, 특이한 유학자였다. 공자와 맹자가 인간의 선한 본성을 말할 때,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선한 것은 인위적인 노력의 결과다.” 그는 예법과 교육을 통해 악한 본성을 교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 두 입장의 차이는 크다. 맹자는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며 측은해한다.” 이것이 인간 본성의 증거라고 했다. 선한 싹이 모든 사람에게 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인간은 본래 선을 향한다.
순자는 달랐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한다. 이것을 따르면 쟁탈이 생기고 양보가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질투하고 미워한다. 이것을 따르면 남을 해치게 되고 충성과 신의가 없어진다.” 본성 그대로 두면 악해진다. 교화가 필요하다.
한비자는 스승의 성악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교화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순자는 그래도 교육을 믿었다. 악한 본성을 선하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비자는 더 극단적인 결론으로 나아갔다.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교화를 기대하지 마라. 대신 그 본성을 이용하라.
스승의 낙관과 제자의 비관. 같은 전제에서 출발하여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순자가 악한 본성의 “치료”를 말했다면, 한비자는 악한 본성의 “활용”을 말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이것을 전제로 시스템을 설계하라.
한비자 사상의 핵심은 세 글자로 요약된다. 법(法), 술(術), 세(勢).
법은 성문화된 규칙이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객관적 기준. 한비자는 법이 귀족이든 평민이든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유가에서는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고, 신분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 “예는 서인에게 내려가지 않고, 형벌은 대부에게 올라가지 않는다.” 이것이 유가의 원칙이었다. 귀족은 형벌에서 면제되었다.
한비자는 이것을 뒤집었다. “법은 귀인을 아끼지 않고, 먹줄은 굽은 것에 굽히지 않는다.” 태자가 법을 어겨도 처벌해야 한다. 물론 태자 본인을 처벌하기 어려우면 그의 스승을 처벌하라. 핵심은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 2천 년 전에 법치주의의 핵심 원리를 설파한 것이다.
술은 군주의 통치 기법이다. 신하를 다루는 비밀스러운 기술. 법이 공개적이라면, 술은 은밀하다. 한비자는 군주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그것을 꾸며서 바칠 것이다. 군주가 싫어하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그것을 숨길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좋아하고 싫어함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좋아하고 싫어함을 보이지 않으면 신하들은 본심을 드러낼 것이다.”
군주는 무표정해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신하들의 말과 행동을 비교 검증하며, 상벌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포커페이스. 한비자는 2천 년 전에 협상의 기본 원칙을 정립했다.
세는 권력의 위세다. 지위 자체가 가지는 힘. 유가는 군주의 덕성을 강조했다. 덕이 있는 자가 통치해야 한다. 한비자는 이것을 비웃었다.
“요임금이 평민이었다면 옆집 사람도 복종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걸왕이 천자의 자리에 있었기에 천하를 어지럽힐 수 있었다. 나무 막대기로 개를 쫓을 수 있는 것은 막대기를 든 사람이 강해서가 아니다. 막대기가 주는 세 때문이다.”
개인의 덕성보다 지위의 힘이 중요하다. 어리석은 군주도 권좌에 앉으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 현명한 성인도 권력 없이는 옆집 사람도 설득하지 못한다. 이것은 유가의 덕치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주장이다. 그리고 불편하게도, 현실에 더 가깝다.
한비자는 인간 행동의 동기를 단순화했다.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피한다. 그게 전부다.
“의사가 환자의 상처를 빨고 나쁜 피를 입으로 뱉어내는 것은 골육의 정 때문이 아니다. 이익이 거기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한비자의 말이다. 의사의 헌신적 행동도 이타심이 아니라 보상의 기대에서 나온다. 그는 모든 인간관계를 이렇게 해석했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 사이도.
“아들을 낳으면 서로 축하하고, 딸을 낳으면 죽이기도 한다. 아들과 딸 모두 부모에게서 나왔는데 왜 이렇게 다른가? 부모가 나중의 편의를 계산하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문장이지만, 그가 살던 시대에 여아 살해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한비자는 이것을 비난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 본성의 증거로 제시했다.
그래서 군주는 상과 벌이라는 두 자루를 쥐어야 한다. 한비자는 이것을 “이병(二柄)”이라 불렀다. 공을 세우면 반드시 상을 주고,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내린다.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호랑이가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발톱과 이빨 때문이다. 호랑이에게 발톱과 이빨이 없으면 개가 오히려 호랑이를 물 것이다. 군주에게 상과 벌은 호랑이의 발톱과 이빨이다.”
상을 주면서 기준이 모호하면 신하들은 군주의 은혜에 의존하게 되고, 사적인 관계가 공적인 기준을 대신한다. 벌을 주면서 일관성이 없으면 법이 무력화되고, 두려움이 사라진다. 상과 벌은 오직 군주만이 쥐어야 한다. 신하에게 위임하면 권력이 넘어간다.
한비자는 뛰어난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그의 우화들은 지금까지 전해지며 교훈을 준다.
화씨지벽의 이야기가 있다. 초나라의 변화라는 사람이 산에서 옥 원석을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려왕에게 바쳤다. 왕은 옥공에게 감정을 맡겼다. 옥공이 말했다. “그냥 돌입니다.” 왕은 변화를 사기꾼으로 몰아 왼쪽 발을 잘랐다.
려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했다. 변화는 다시 옥을 바쳤다. 또 돌이라는 감정이 나왔다. 이번에는 오른쪽 발이 잘렸다. 무왕이 죽고 문왕이 즉위했다. 변화는 형산 아래에서 옥을 껴안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 눈물이 다하자 피가 흘렀다.
문왕이 사람을 보내 물었다. “천하에 발 잘린 사람이 많은데, 왜 유독 당신만 그렇게 슬퍼하오?” 변화가 답했다. “발이 잘린 것을 슬퍼하는 게 아닙니다. 보옥을 돌이라 하고, 충신을 사기꾼이라 하니 그것이 슬픈 것입니다.”
문왕은 옥을 쪼개보게 했다. 과연 천하의 보옥이었다. 이것이 화씨의 구슬, 화씨지벽이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자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 어쩌면 자신의 처지를 변화에 빗댄 것인지도 모른다. 한왕에게 거듭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자신을.
모순(矛盾)의 고사도 한비자에게서 나왔다. 초나라에 방패와 창을 파는 상인이 있었다. 그는 방패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방패는 너무 단단해서 어떤 창도 뚫지 못합니다.” 그다음 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창은 너무 날카로워서 어떤 방패도 뚫습니다.” 구경꾼이 물었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 상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 우화는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비자는 유가의 주장에 이런 모순이 있다고 비판했다. 요순의 덕치를 찬양하면서 동시에 엄한 법률의 필요성도 인정하는 것. 둘은 양립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쓰는 ’모순’이라는 단어가 바로 여기서 왔다.
한비자의 가장 실용적인 통치 기법은 형명참동(形名參同)이다. 형(形)은 실제 결과, 명(名)은 말한 것. 신하가 한 약속과 실제 성과를 대조하여 평가하라는 원칙이다.
한비자는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어떤 신하가 “제가 적국을 정벌하면 한 달 안에 승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한 달이 지났는데 승리하지 못하면 벌을 준다. 당연하다. 그런데 한비자는 한 발 더 나아간다. 보름 만에 승리해도 벌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 한 달이 걸린다고 했는데 보름 만에 끝났다면, 애초에 과장했거나 정보가 부정확했다는 뜻이다. 상사에게 보고할 때 일부러 어렵게 말해서 나중에 쉽게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이려 한 것일 수 있다. 이것도 조작이다. 형명이 일치해야 한다. 과도 부족도 안 된다.
이것은 현대 경영학의 목표 관리(MBO, Management by Objectives)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목표를 설정하고, 결과를 측정하고, 그 차이에 따라 평가한다. 2천 년 전 한비자가 제시한 원칙이다.
또한 형명참동은 허위 보고를 방지한다. 신하들이 군주에게 좋은 소식만 전하고 나쁜 소식은 숨기는 경향이 있다. 형명을 엄격히 대조하면 이런 왜곡이 줄어든다. 과장하면 처벌받으니까.
한비자는 창시자가 아니라 종합자였다. 그는 이전 법가 사상가들의 이론을 집대성했다.
신불해는 술(術)을 강조했다. 한나라의 재상으로서 15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그가 재상으로 있는 동안 한나라는 어떤 나라에도 침략당하지 않았다. 작은 나라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는 군주가 신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집중했다. 의심하되 티 내지 말고, 관찰하되 간섭하지 말고, 시험하되 드러내지 말라. 그의 술은 음모론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관료제 운영의 기본 원칙이었다.
상앙은 법(法)을 강조했다. 진나라의 개혁가로서 변법을 시행했다. 그의 개혁은 진나라를 서방의 변방국에서 최강국으로 변모시켰다.
상앙은 개혁을 시작하기 전에 백성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그가 고안한 방법이 “사목립신(徙木立信)”이다. 도성의 남문에 세 장 길이의 나무를 세우고 포고했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십 금을 주겠다.” 사람들은 의심했다. 고작 나무 하나 옮기는 데 십 금이라니.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분명히 함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상앙은 상금을 오십 금으로 올렸다. 드디어 한 사람이 나무를 옮겼다. 상앙은 즉시 오십 금을 주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진다. 이 사건이 퍼지자 백성들은 새 법률이 정말로 시행되리라 믿게 되었다. 신뢰는 한 번의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상앙의 개혁 내용은 철저했다. 연좌제를 시행하여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 다섯 집을 오(伍), 열 집을 십(什)으로 묶어 연대 책임을 지웠다. 이웃이 범죄를 저질렀는데 고발하지 않으면 함께 처벌받았다. 또한 군공작제를 도입했다. 적의 수급을 베어오면 작위를 주었다. 귀족이 아니어도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면 출세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존의 세습 귀족 체제를 무너뜨렸다. 능력 본위의 사회. 무서울 정도로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상앙의 최후는 비극적이었다. 그를 후원하던 효공이 죽자, 새 왕 혜문왕이 즉위했다. 혜문왕은 태자 시절 법을 어겼는데, 상앙이 그의 스승을 처벌한 적이 있었다. 왕이 된 혜문왕은 복수했다. 상앙은 도주했으나 잡혔다. 그가 만든 연좌제 때문에 아무도 그를 숨겨주지 않았다. 여관에서조차 신분증 없이는 묵을 수 없었다. 그 신분증 제도를 만든 것이 상앙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죽임당했다.
한비자는 유가를 맹렬히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체계적이고 날카롭다.
유가는 요순의 덕치를 이상화했다.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아들이 아니라 현명한 자에게. 이것이 선양이다. 유가는 이것을 성인의 증거로 찬양했다. 한비자는 이것을 비웃었다.
“시대가 변하면 일도 변한다. 옛날에는 사람은 적고 재화는 많았으므로 백성들이 다투지 않았다. 지금은 사람은 많고 재화는 적으므로 힘써 일해도 먹고살기 어렵다. 요순 시대의 양보가 가능했던 것은 덕이 높아서가 아니라, 양보해도 될 만큼 재화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역사적 상대주의자였다. 절대적인 도덕 기준은 없다. 시대에 따라 필요한 것이 다르다. 고대의 방법을 현재에 적용하는 것은 어리석다.
“수주대토”라는 고사가 여기서 나온다. 송나라에 밭 가는 자가 있었다.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쳐 죽었다. 그 농부는 쟁기를 놓고 그루터기를 지키며 다시 토끼를 기다렸다. 토끼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는 송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옛 방법을 고집하는 것은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더 근본적인 비판도 있었다. 덕치가 가능하려면 군주가 성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성인은 극히 드물다.
“중등의 군주를 위한 통치술이 필요하다. 요순 같은 성인이 나오면 법이 없어도 천하가 다스려진다. 걸주 같은 폭군이 나오면 법이 있어도 천하가 어지러워진다. 그러나 요순도 걸주도 아닌 중등의 군주가 대부분이다. 법치는 이 중등의 군주를 위한 것이다.”
시스템이 개인의 덕성을 대체한다. 현대 정치학에서 말하는 제도주의의 원형이다.
기원전 234년, 진왕 정은 한비자의 글을 읽고 감탄했다. “과인이 이 사람과 사귀어 함께 논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진왕은 한나라를 압박하여 한비자를 보내게 했다. 한비자가 진나라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린 것은 영예가 아니라 죽음이었다. 이사가 진왕에게 참소했다.
“한비자는 한나라 공자입니다. 지금 왕께서 천하를 병합하려 하시는데, 한비자는 결국 한나라를 위할 것입니다. 그를 쓰지 않고 오래 머물게 했다가 돌려보내면 후환이 될 것입니다.”
이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한비자 자신이 가르친 논리였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신하의 충성을 믿지 말라. 이사는 한비자의 이론을 한비자에게 적용한 것이다.
진왕은 한비자를 옥에 가두었다. 이사는 독약을 보냈다. 한비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독약을 마셨다. 기원전 233년의 일이다. 훗날 진왕 정은 후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한비자는 죽었지만, 그의 사상은 살아남았다.
진시황은 법가 사상을 바탕으로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했다. 기원전 221년, 육국을 멸망시키고 황제를 칭했다. 도량형 통일, 문자 통일, 군현제 시행.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확립했다. 한비자가 꿈꾸던 시스템이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법가의 실험은 오래가지 않았다. 진나라는 통일 후 15년 만에 멸망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가혹한 법률. 사소한 죄에도 혹독한 형벌이 가해졌다. 코를 베고, 발을 자르고, 허리를 자르는 형벌이 일상적이었다. 강제 노역. 만리장성과 아방궁 건설에 수십만 명이 동원되었다. 분서갱유. 법가 이외의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생매장했다. 460여 명의 유학자가 땅에 묻혔다.
한비자는 상과 벌의 균형을 말했다. 그러나 진나라는 벌만 있고 상은 부족했다. 공포로만 다스렸다. 한비자 자신도 경고했다. “형벌이 너무 가혹하면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죽을 각오를 한 백성은 반란을 일으킨다.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이를 증명했다. 기원전 209년, 징집되어 끌려가던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장마 때문에 이미 늦었고, 늦으면 처형당할 운명이었다. “반란을 일으켜도 죽고, 늦어도 죽는다면, 어차피 죽을 바에야 이름이라도 남기자.” 공포가 극에 달하면 더 이상 억제력이 없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 1,700년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두 사상가.
둘 다 혼란의 시대를 살았다. 한비자는 전국시대의 끊임없는 전쟁을,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분열과 외세 침략을 목격했다. 둘 다 인간 본성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한비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을, 마키아벨리는 은혜를 잊고 배신하는 성향을 강조했다.
둘 다 도덕과 정치를 분리했다. 한비자는 덕치를 환상이라 했고,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필요하다면 선하지 않은 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둘 다 권력의 테크닉에 집중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다.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을 이상으로 삼았다. 『군주론』보다 『로마사 논고』에서 그의 진심을 더 볼 수 있다. 그는 군주제가 필요악일 수 있지만, 시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화정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한비자에게 이런 공화주의적 요소는 없다. 그는 전제 군주를 위한 조언만 남겼다.
또 하나의 차이.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개인적 역량, 비르투(virtù)를 강조했다. 운명에 맞서는 개인의 에너지와 결단력. 한비자는 개인보다 시스템을 강조했다. 군주의 덕성에 의존하지 말고, 법과 술과 세라는 구조에 의존하라. 현대적 용어로 바꾸면, 마키아벨리는 리더십 이론에 가깝고, 한비자는 제도주의에 가깝다.
오늘날 한비자는 재평가되고 있다. 특히 경영학에서 그의 통찰을 주목한다.
현대 경영학의 “대리인 이론”을 보라. 주주와 경영자 사이에는 이해 충돌이 있다. 경영자는 회사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그래서 성과급, 스톡옵션, 감사 시스템이 필요하다. 한비자의 형명참동, 말과 실적의 대조다.
넷플릭스의 “자유와 책임” 문화를 보라. 두꺼운 규정집 대신 원칙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원칙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을 묻는다. 고성과자에게는 최고의 보상을, 저성과자에게는 퇴직 패키지를. 한비자의 상벌 원칙과 맥이 닿는다.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 중 “Bias for Action”이 있다.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라. 그리고 결과에 책임지라. 제프 베조스는 말한다. “좋은 의도는 무의미하다.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 시스템을 믿어라. 선의를 믿지 마라. 한비자의 언어다.
그러나 현대 경영학은 한비자의 한계도 알고 있다. 공포만으로는 창의성이 나오지 않는다. 자발적 헌신 없이는 혁신이 불가능하다. 구글은 “심리적 안전감”을 강조한다. 실패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도전한다. 이것은 한비자가 상상하지 못한 세계다.
Part 1에서 우리는 뇌의 네 가지 취약점을 배웠다. 한비자의 통치술은 이 취약점들을 정확히 겨냥한다.
휴리스틱의 이용. 복잡한 상황에서 인간은 단순한 규칙에 의존한다. 한비자의 상벌 시스템은 이 점을 활용한다. “공을 세우면 상, 죄를 지으면 벌.” 단순명료하다. 뇌의 시스템 1이 좋아하는 방식이다.
도파민 시스템의 설계. 상은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한비자는 상을 반드시 주라고 강조한다. 그래야 다음에도 공을 세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슐츠의 보상 예측 오류 이론을 떠올려보라. 예상된 상이 예상대로 올 때, 행동이 강화된다.
손실 회피의 활용. 벌에 대한 공포도 동기를 부여한다. 카너먼이 발견했듯, 얻는 것의 기쁨보다 잃는 것의 고통이 약 두 배 더 크다. 한비자는 이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보다 벌을 더 강조했다.
사회적 증거의 통제. 한비자는 군주가 좋아하고 싫어함을 보이지 말라고 했다. 왜? 신하들이 군주의 반응을 보고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거울 뉴런이 작동한다. 군주의 무표정은 이 모방 본능을 차단한다.
인지 부조화의 활용. 일단 시스템에 복종하면, 사람들은 그 복종을 합리화한다. 자신의 복종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스템을 긍정하게 된다. 한비자의 법치는 이 심리적 기제를 활용한다.
한비자를 읽는 것은 불편한 경험이다. 그의 분석은 너무나 날카롭다.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것들—우정, 충성, 헌신—을 이익 계산으로 환원한다.
권모술수를 아는 것은 필요하다. 세상에는 한비자가 묘사한 인간들이 있다. 그들의 전략을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다. Part 1에서 배운 뇌의 취약점을 악용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들을 알아보려면 그들의 논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한비자의 세계관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모든 인간을 계산적 존재로 보기 시작하면, 정말로 그런 세상을 만들게 된다. 신뢰가 사라지고, 협력이 불가능해진다. 게임 이론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가 현실이 된다. 모두가 배신을 선택하면 모두가 손해를 본다.
한비자 자신의 최후가 이를 증명한다. 그는 인간의 이기심을 냉정히 분석했다. 그러나 자신이 그 이기심의 희생양이 될 줄은 몰랐다. 이론은 완벽했으나, 이론가는 살아남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큰 교훈일지 모른다. 권모술수를 연구하는 것과 그 안에서 살아남는 것은 다르다.
다음 장에서는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설득과 조작의 경계는 어디인가? 언제 영향력은 정당하고, 언제 부당한가? 윤리학의 렌즈로 조작의 문제를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