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2

2021.09.03.

by 울타리
IMG_4030.jpg

누렇게 물든 나뭇잎이 말했다. "나를 기억해줘요"


매일 같은 풍경 속 자전거 출근길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직 녹음綠陰이 성한데 유독 벚나무에 낙엽이 걸렸다. 오랜 장마도 한 몫했겠지만 가을이 오기 때문일까? 맞바람이 더욱 시원해졌다.


가을이 온다.


벚나무에게 화답하듯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 이것을 기억하고 싶은 것은 내 마음일 것이다. 가을에 대한 추억. 무기력한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는 기대감. 수많은 장면 중 여기서 멈춰 선 것은 가을에 대한 오랜 경험도 있지만, '가을이 온다.'라는 기대가 훨씬 크다. 나는 내심 상황이 변화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나 보다.


군입대를 8월에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가장 피하고 싶은 계절이지만, 당시에는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지글거리는 아스팔트 연병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달 시간을 보내고 나니 가을이 찾아왔다. 잠시 나무 그늘에서 쉬는데 살랑바람이 코끝을 건드렸다. 청량감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8월은 군 내무반처럼 낯설고 잔인했다. 아버지의 항암치료가 시작된 8월 초부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큰 사건 없이 지나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순간이 지속되기를 바란 건 아니다. 극적인 희망만큼 절망의 늪에 빠질 수도 있었다. 희망도 절망도 없는 평범이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순간이지만, 보호자로서 희망마저 느낄 수 없는 무기력함이 모든 기저에 깔려 있었다.


나는 왜 무기력할까?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내 생각과 마음이 변했다. 의미가 없어졌다. 어느새 끝에 다다른 아버지를 지켜보며 무상함을 느낀 것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감정이 아닐까? 봄과 여름의 수고로움이 가을의 풍요를 불러온다는 이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수고로움은 황량한 겨울을 앞당긴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부단한 수고로움 역시 나를 멈추게 했다. 그런데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고자 하지 않음이 더욱 힘이 들 수도 있겠다. 고통뿐인 현재와 알 수 없는 미래에 스스로 무너지기보다는 하고자 하지 않음에 더욱 힘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무기력함이 오히려 겨울을 앞당기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겨울은 어느 계절보다 사람의 마음을 동화시킨다. 누군가는 넓은 들판을 보며 생동하는 봄을 상기한다지만 모든 것은 끝이 있다는 엄연한 진리 앞에 겨울, 그 자체는 적막하다. 겨울의 아름다움은 여기서 나온다. 추위가 모든 것을 빼앗아 갈 때, 나무는 옷을 벗고, 물은 흐름을 멈추며, 사람은 활동을 줄인다. 창밖의 정적 상황을 주시하다 보면, 외부 세계는 무채색이지만 내부 세계는 활짝 열린다. 나는 다시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 또 무엇이 삶을 이끌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인간이 컴퓨터처럼 생각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