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7

통증이 시작될 것 같아요...

by 울타리

어렵게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글은 무엇인가를 정리해야만 써지나 봅니다. 머릿속은 정신과 감정의 격전장이 되어 무엇하나 정하지 못하고 애써 키보드만 두드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슬픈 소식을 듣고서도 일을 해야만 하고, 본능적으로 먹어야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기도 해야 합니다. 인간의 운명이 이렇게 슬플 수가 있을까요?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삶을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니... 시지프스가 그리 된 것이 그의 잘못 때문이라 여겼던 지난 세월이 미워집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을... 연민의 정을 넘어 숭고함마저 칭송을 들어야 할 판에 놀림을 당한 것입니다.

큰 돌을 짊어지고 있는 온몸의 근육에 경탄하면서도 곧 무릎을 꿇을까 아슬해 보이기도 합니다. 불안한 마음은 제 심정과 공명합니다. 아마도 언젠가는 힘들어 모든 것을 놓고 싶을 때가 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속히 마무리하고자 하는 파괴적 감정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겠죠.정말 무섭습니다. 인간의 간악한 마음이, 정신이, 존재가.


어쩔 수 없이 정면으로 맞서 이겨내야 함을 직감합니다. 피할 수도, 무너질 수도 없는 외길이 앞에 있습니다. 누구나 겪지만, 누구도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삶이 막다른 골목에 섰습니다. 그리고 저는 CCTV를 들여다보듯 관람자가 됩니다. 이 모든 고통을 겪고서도 인류는 어떻게 행복이라는 관념에 빠져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을까요? 인생이 진정 희극이라 말하는 것은 비극을 너무 소홀히 대접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키기 까지 하는 문화적 발상은 모두를 마취시키려는 음모같이 느껴집니다. 이런 진실한 비극의 기록이 오히려 사람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늦은 6시쯤 아버지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12월 27일에 만기 되는 운전자 보험 연장을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담당의사는 큰형에게 이제 곧 간에 전이된 암 때문에 통증이 시작될 것이라 얘기했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암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고통이 극에 달할 때, 생과 사를 넘나들을 때, 무척이나 수척해진 나 아닌 나를 보게 될 때. 20여 년 전, 어머니를 보낼 때도 그랬습니다. 초자연적인 힘을 빌리기 위해 신 앞에 넙죽 엎드렸다가도, 결국은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고통의 양은 바다를 채우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련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야 할 때 아버지는 태평하게 내년도 자동차 보험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담당의는 아버지에게는 그 어떤 결과도, 예측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우죠. 아픔 끝에 죽음에 이르렀다는 최후 선고는 미룰수록 좋습니다. 이렇게 최대한 예우를 해준다 해도 환자는 불평입니다. 아버지는 의사가 회진을 와서도 별말 없이 급히 자리를 떠버린다며 불평이셨습니다. 여럿 있는 병실에서, 그것도 회진 때 할 이야기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환자라도 아픔과 죽음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죠.


거대한 자연의 흐름 앞에서 인위적 제도는 아무런 도움이 못됩니다. 결국 파도가 모래성을 덮치듯 모든 것을 가져갈 테니까요. 보험이 보탬이 될 수 없다면, 누군가 희망을 주고 통증을 줄여줘야 하겠지요. 어리석게도 다시 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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