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8

퇴원을 못했습니다.

by 울타리

아버지는 결국 퇴원을 못했습니다. "우두커니 있으면 뭐하냐? 나가고 싶다."라며 몇 번을 말씀하셨는데, 미열이 있다면서 기다려 보자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나가고 싶었을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탈출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이전에 계셨던 요양병원의 사정은 좋지 않았습니다. 누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였나요? 개똥밭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인간의 존엄은 스스로 지키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고 여겼을 때, 인간의 길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거동이 불편하여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 대소변을 가리기 어려울 때, 인지능력... 특히 사람을 구별하거나 상대방의 표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 때, 내려놓게 됩니다.

암 선고를 받을 때부터 줄 곧 결정의 기준은 삶의 의미와 가치였습니다. 어떤 것이 좀 더 나은 삶을 보장할 것이가, 삶의 질이 높은 것은 어느 쪽인가. 수술을 권유 받았을 때는 선항암보다 수술이었고, 항암을 해야한다고 했는 때는 자연치유보다 항암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술과 항암을 포기한 지금은 그 어떤 의료처치도 아버지의 존엄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물론 본인이 더 강하게 거부를 하고 있구요.


며칠만에 손자와 영상통화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웃으며 활기차게 말하셨습니다. 그렇게 좋을까요? 아마 진통제 덕일수도 있겠죠. 막내 손자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을 맺었습니다. 평상 시였으면 으레 하는 말이겠구나 넘겼을 거에요. 통화를 끝내는 인사정도로요. 하지만 달랐습니다. 마치 그대로 꽁꽁 얼려 놓은 듯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자식들에게는 따뜻한 인삿말조차 아끼셨던 분이 '사랑'이라는 말을 어찌 쉽게 꺼낼 수 있었을까요? 아마 내가 아는... 우리가 익히 들어 온 '사랑'은 아닐 것입니다. 풍성한 감성의 언어가 아닌 존재의 사유가 응축된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본인의 숙명을 가문의 파수꾼이라 여기며 밑거름이 되겠다고 결심 한 듯 하나, 둘 정리 해왔습니다. 유산이든, 유지든 모든 것이 자자손손, 천대, 만대 이어지길 소원하고 당부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신 듯, 세상의 이치를 순리대로 따르려는 듯, 그렇게 말씀하시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202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