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될까? 함께 한 가족 여행
얘들아. 고맙다.
아빠는 혹시나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지막 휴가가 아닐까 하는 염려로 경주 여행을 취소하고 심향집(선산에 있는 집)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단다. 어쩌면 '오늘'이 부르는 날이 있겠지? 방화동 계곡을 찾을 때, 남원에서 구례를 넘어갈 때, 심향집에서 먼 산을 바라볼 때...
30대를 넘어서며 정말 빠르게 시간이 흘러갔단다. HJ를 만나고 대전에서 서울로, 다시 대전으로. 복수동에서 JW를 만났지. 그리고 하기동으로 이사를 했네. 먼 것 같지만, 가깝고... 가까운 것 같지만, 손가락을 접으며 세보면 두 번 남짓 확인하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야속하기도 한단다.
해넘이를 할아버지는 심향집 소파에 앉아서, 아빠는 너희들이 자던 방 창문으로 내다보았단다. 검디검은 산이 웅크리고 있었고, 해는 새빨간 숨을 몰아쉬며 사위어 갔단다. 할아버지는 산을 좋아하셨단다. 지금도 아빠가 운전하고 어디를 가면, 저 산은 무슨 산이고... 또 저 봉우리는 무슨 봉우리고. 그럴 때면 유년의 기억과 마주친단다. 할아버지를 따라 오르던 산. 어두워질녁 계곡 옆에 자리를 잡고 야영을 했던 밤, 새벽을 뚫고 정상에 오르던 순간, 푹푹 빠지던 하얀 눈을 밟고 걸어갔던 겨울산. 온통 산을 오르던 기억이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런 산이 심향집을 마주 보고 웅크리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붉은 기운이 스며들었고, 편안한 분위기로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마 할아버지도 아빠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저 산이 왜 저기서 웅크리고 있을까?'
오늘은 고맙게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목월빵집을 가기 위해 나섰고, 문을 닫아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야 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다. 구례수목원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예상치 못한 행운이 우리에게 있을 줄 생각도 못 했단다. 매표소에서 입장료 계산을 하던 직원이 한 가족이냐며 묻고는, 특별히 무료로 입장하라고 선뜻 선의를 베풀어 주었단다. 이유는 아직도 모른단다.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색색의 수국이 맞아주었고, 잘 다듬어진 오솔길이 수목원의 정취를 더했단다. 전망대의 풍광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가족사진을 찍은 것이 훗날에도 선명하게 남을 것 같구나. 60분도 길다며 30분 코스로 가자던 엄마와 HJ가 90분을 훌쩍 넘기며 웃고 즐기던 모습이 좋았단다.
이런 모습을 할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너희들은 알까? 할아버지는 계속 사진을 찍고 계셨단다. 방화동에서도, 수목원에서도... 할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황혼에 웅크린 산과 아침에 생기있는 꽃은 그저 별개의 모습일 뿐일까? 해는 왜 빛을 뿌려 선명한 형형색색의 꽃을 만들고, 이내 어둠으로 거두워들일까? 자연은 에너지를 발산시켜 생명의 조화를 이루더니 형편없이 사라져버릴까? 그건 내가, 우리가 너무도 단순하여 복잡미묘한 진리를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애들아! 그렇더라도 우리 오늘은 기억하자. 분명 '오늘'을 부르는 날이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