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몰려올 때
아산병원에 내렸더니 후끈하다. 서울 최고기온이 34℃이다. 아스팔트 열기와 대기 차량의 배기가스가 더해 숨조차 쉬기 힘들다. 보통 종착지에 도착하면 안도감이 드는데, 이곳은 다르다. 입구부터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면 다급해질 만도 한데, 발걸음이 무겁다.
지난 10일, 아버지는 담도암 판정을 받고 수술 예약을 한 후 댁에 계셨다. 오늘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입원하는 길이다. 검사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부터 감출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너무도 갑작스러웠고, 예후가 좋지 않은 부위여서 절망했다. 암은 공포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을 증발시켜 형체만 남겨놓는 질병. 어머니를 데려간 병도 암이었으니,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곳이 있다면 정말 소리치고 싶었다.
말로만 들었던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날로 무기력해지더니 불안감과 공포가 가슴을 억눌렀다. 잠도 오지 않을 정도로 답답했고, 현기증이 났다. '이러다가 무너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즈음 지났을까 멍했던 머릿속이 점차 맑아졌다. 슬픔의 무게가 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슬픔을 감춰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털어놓았다. 짐작만 하고 있던 아내가 위로해 주었다. 슬픔은 거짓말같이 반쪽이 되었다. 아이들은 의젓했다. 아직 어려서인지 말 표현을 삼갔지만, 나에게 떼쓰는 것을 멈추었다. 이렇게 가족의 응원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예전에 들어서 알고 있던 책 한 권을 사서 읽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는 건, 그리고 물론 당신도 잘 알겠지만, 당신의 삶이 이제 막, 아니, 이미 변했다는 겁니다. 앞으로 기나긴 싸움이 될 거예요. 남편분도 잘 들으세요. 서로를 위해 자기 자리를 잘 지켜줘야겠지만 필요할 때는 꼭 충분히 쉬어야 합니다. 이런 큰 병을 만나면 가족은 하나로 똘똘 뭉치거나 분열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죠.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서로를 위해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해요. 아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침대 곁에서 밤을 새우거나 하루 종일 병원에 있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
삶에 대한 자세다. 생로병사. 삶은 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숭고한 사실을 잊고 지낸다. 그러다 맞닥뜨린 병과 죽음 앞에서 신체적 죽음 전에 정서적 자살을 선택한다. 외로운 싸움이기 때문에 그도 그럴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다는 것은 쉬이 피로하게 한다. 그러다 도망치고 싶을 때 즈음 추격의 고삐를 더욱 조인다. 도망치려 해도 피할 수 없다. 정면승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삶의 의지를 놓칠 때 죽음은 노크한다. 노와 병과 사에도 삶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정면승부이고 삶에 대한 자세라는 것이다. 그건 죽음과의 거리가 가깝거나 먼 것과는 상관이 없다. 다만, 변화된 삶에 적응하고 이어나가는 것이 병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라는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다. 물론 폴은 통찰뿐만 아니라 후에 얻게 되는 병마와의 싸움을 의연하게 대처한다. 지행합일의 경지를 실제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그의 자세는 나를 감동시키고 변화시켰다. 변화를 인정하려 한 것이다. 40대를 40Km로 달리던 내가 브레이크를 서슴없이 밟았다. 진동에 몸서리쳐졌지만, 한시라도 빨리 멈추어야 했다. 그리고 방향을 틀었다.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간병을 시작했다. 입원과 수술, 수술 후 치료와 항암.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아버지의 삶으로 돌리고 나는 기록자가 되기로 했다. 기록의 이유는 내 슬픔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누르는 행위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것이다. 서로 다른 내가 조우한 곳에서 슬픔이 이해되길 바랄 뿐이다. 한 자 한 자 입력할 때마다 진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것인가... 나도 무척 궁금하다. 억지로 쓰지는 않을 것이다. 또 토해내 듯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슬픔이 순화되고, 병과 사가 삶이 되고, 기록이 기억이 되는 글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