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둘째 날

수술동의

by 울타리


하룻밤을 병원에서 잤다. 평소 어느 곳에서건 잘 자는 체질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인조가죽 소파의 촉감이 매우 낯설었다. 모로 누웠다가 다시 엎드렸다가 반드시 눕기를 반복하다 보니 잠은 오지 않고, 잡생각만 잔뜩 몰려왔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셨다. 새벽 4시에는 수술하기 전 샤워를 하고 싶다며 욕실로 가셨다. 근심이 밤을 지배했다. 눈을 감고 멍하니 일어날 일을 생각하니 어쩌면 가장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내려놓기로 하였으니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희망 또한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계속 빙글 도는 헛 수레바퀴에 몸을 맞긴 듯 했다.


5시 반이 지나니 여명이 떠올랐다. 답답한 마음에 감염예방을 위해 창문을 꼭 닫아달라는 경고에도 창문을 밀어젖혔다. 진공을 뚫듯 무거운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대도시 여름공기라 청량감이 없었다. 그래도 숨통이 트였다. 밤새 공조기 소리가 신경 쓰였다. 실내 온도는 적당하고, 공기도 순환되었지만 신선함은 없었다. 병원에 대한 선입견이 큰가 보다. 온통 바이러스가 묻어 있을 것만 같은... 오래 있으면 환자가 될 것 같은 분위기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경고도 무시하고 창문을 열게 했다. 코로나로 보호자 역시 외부 출입이 금지된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 외부와 연결되고 싶었나 보다.

옥상정원에서 바라 본 관악산 방향

6시에 옥상정원으로 나갔다. 9시부터 6시까지는 폐쇄된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는 사람이 많았다. 병원이라는 곳에서 겪는 감정과 이어지는 생각은 비슷하다. 희망으로 포장된 후회와 절망이 크다. 치료가 잘 되어도, 지난날의 후회는 남는다. 당연 치료가 잘되지 않으면 절망으로 빠진다. 이곳 사람들의 안식처가 옥상정원이다.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마천루가 이어지며 자동차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모두 '영원함'과 관계된 것들이다. 고통과 침묵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잔잔한 물결을 보면 편안해진다.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그런 의도적 장치가 옥상정원에 숨겨 있는 듯하다.


어제 늦은 시각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한 게 다른 가족에게도 행복이라고. 돈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 또한 공교육에서 요구하는 잣대에 맞추기 위해 닦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전해왔다. 고마웠다.


행복은 욕구 충족에 있다. 안녕감이란 적절하게 욕구가 채워진 상태를 말한다. 돌이켜보면 이상하게 하고 싶은 것은 끊임없이 생기는데, 만족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결혼 전 일주일에 두 번씩 다니던 산도 가지 않게 되었다. 운동도 즐거워야 계속 할 수 있는데, 비싼 돈을 들여 산 자전거도 한두 번 타더니 여러 핑계로 방치하고 있다. 이동수단으로써는 최적의 조건이었지만, 속도를 측정하고 쉼 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은 운동이었다. 등산은 다르게, 멈춰 설 수 있고,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보다 호젓한 길의 여유로움이 더 좋았나 보다. 내 몸과 기억은 끊임없이 지난날로 회귀하고 있었다. 여행의 순간, 명상의 기쁨, 자연에 대한 동경, 모험의 추억 등 떠나야만 충족할 수 있는 희열을 경제적 이유으로 가두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경제적 활동도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돈을 묻어두고 확인하는 데 열중하였다.

세 아이의 생활비와 교육비, 또 결혼자금이 필요했고, 우리 부부의 은퇴 후 생활자금과 의료비 등 목돈이 있어야 했다. 나하고만 관계된다면 완급조절이 가능했을 텐데, 아버지의 의무로서 최선을 다하도록 교육받았고 실제 책임을 다하였다. 그러는 사이 점점 과거에서 멀어지듯 나를 잃어버렸고, 내 존재감이 떨어지자 아이들을 포용할 수 없었다.


나 또한 공교육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주체적 인간 육성'을 목표로 가르치는 나도 표준화된 삶을 살며, 일률적인 태도를 강요하며 지식과 기술을 전달한다. 개별화된 교육을 지향하는 미래교육조차 기존 테두리 안에서 조직된다면 그 허물을 벗을 수 없을 터인데, 크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을 정도니... 이렇게 된 데에는 공교육의 사회적 기능이 완전히 무너진 데 이유가 있다. 공통교육과정이 시작되는 유치원부터 고1까지 이어지는 15년간 단 하나,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든다면 그것만으로 교육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개인의 역량이다. 그러나 현재 공교육은 경쟁을 강조하고 획일화된 가치를 부여하며 사람보다 성과를 우선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시스템의 일부가 별도로 분리되어 대안을 찾는다거나 조직 전체를 움직이는 것은 어렵다. 이런 조직화된 체계에서 개별화된 교육을 지향한다는 것은 모순이 된다. 또한 대안을 찾는 것 역시 개인의 몫이 된다.


9시가 넘어서 수술동의를 받으러 담당의가 왔다. 30분간 수술 절차 및 합병증을 설명하였고 질문에 대해 답해주었다. 정답은 없었다. 수술이 먼저인지? 항암이 먼저인지? 개복으로 할 것인지? 복강경으로 할 것인지? 표준화된 처치가 있다고 했다. 수술이 가능하다면 수술이 먼저라고 했다. 아버지 상황이 좋아 수술 후 빠른 회복이 기대된다고 하였고, 마찬가지 이유로 복강경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수술 과정에서 전이가 심각하여 다시 닫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CT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어, 수술 후에나 조직 검사하여 기수나 종양의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또한 표준 치료는 있지만 정답이 없어 개별화된 환자 상태와 맞아떨어지는 운과 신의 가호를 바랄 뿐이었다. 대안을 준비했지만, 표준 치료를 따르기로 한 것이다.


수술 과정과 합병증을 들으며 마음이 심란했다. 누군가에게 생명을 온전히 맡겨야 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신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겪어야만 하고 이겨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다잡았다. 삶이 흘러가는 것이 개인의 의지와 시스템의 기능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조화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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